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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Nov 24. 2021

Order of Magnitude

수학적 방법론의 정밀성과 센스 양립의 중요성

이공계 학생들이 전공을 공부함에 있어, 수학적 방법론을 공부하는 것은 전공 공부 그 이상의 중요도를 갖는다. 내 개인적으로도 과거 학생 시절, 화학공학, 기계공학, 물리학, 재료공학의 주요 전공과목을 2개 이상 수강해 보고 느낀 것이지만, 이러한 다양한 이공계통 전공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과정에 수학적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렇지만 수학적 기초를 다지는 것과 더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수학적 감을 갖는 것이다. 수학적 기초를 튼튼히 만드는 것은 기본적인 방법론과 이론, 문제풀이 기술, 그리고 반복된 연습이겠지만, 수학적 감을 갖추는 것은 누가 가르친다고 쉽게 체득되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과에서는 공대처럼 유효 숫자 한 자리까지 따져가며 엄밀한 계산을 잘하지는 않는데 (물론 실험물리학에서는 그렇게 한다), '대충' order만 맞으면 맞는 것으로 본다. 즉, 3이든 2든 1의 스케일이라고 보는 것이고, 30은 5보다 대충 10배 크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은 당연히 정밀한 장치나 측정에 대해 적용하는 방식은 아니고, 대략적인 솔루션의 위치나 규모, 혹은 특성에 대해 미리 추정할 때 아주 좋은 가이드가 된다. 지배 방정식을 만든 후, 이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케이스에 대해 세세한 답을 구할 필요 없이, 몇몇 극단적인 상황 (limiting cases solution or asymptote solution)에서 추정되는 솔루션의 특성을 살펴보면, 다른 방법이나 실험에서 얻은 값들과 대략적인 비교가 되는데, order로 따졌을 때 1 이하로 차이가 난다면 그 지배 방정식을 제대로 만든 것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만약 2나 3, 혹은 아예 order가 말도 못 할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난다면 기존의 답이 잘못되었거나 내가 만든 방정식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거나 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order of magnitude analysis 방법론은 이공계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수학적 감을 익히는 주요 통로가 될 수 있다. 비단 물리학뿐만 아니라, 공학에서도 매우 유용한 통로이자 툴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계공학이나 화학공학에서 매우 힘들게 배우는 유체역학의 경우, 학생들의 골치를 아프게 만드는 몇몇 문제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경계층 (boundary layer) 문제다. 유체가 그냥 제한 조건 없이 흘러가면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 유체가 뭔가 장애물을 만나서 내부의 에너지와 모멘텀 균형에 지장이 생길 경우, 이러한 경계층이 형성될 수 있다. 온도가 일정한 유체라면 Re (Reynolds number)가 꽤 클 경우 (대략 40 이상)이 되면 평판 고체 위에 흘러가는 유체의 경계층 형성이 꽤 중요한 문제가 되고, 온도가 일정하지 않은 유체라면 (예를 들어 뜨거운 쇳덩어리 공이 차가운 액체 속에 담겨서 가라앉는 상황), 유체역학의 Re에 대응하는 무차원 수인 Pe (Peclet number)가 꽤 큰 상황에서 이러한 경계층 형성이 문제가 된다.


경계층 문제가 왜 학생들의 골머리를 아프게 할까? 그것은 유체를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눠서 분석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냥 유체 전체에 대해 Navier-Stokes equation 적용해서 적절한 경계 조건을 적용하여 적절한 eigenfunction으로 해를 구하면 좋을 것 같은데, 경계에 가까운 유체와 그렇지 않은 유체의 특성이 달라서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경계에 가까운 유체와 그렇지 않은 유체는 칼로 나뉘듯 나뉠 수는 없고, 이들은 연속체로서의 정체성 (continuity)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또 문제다. 이러다 보니 경계에 가까운 유체와 그렇지 않은 유체를 같은 프레임웤에 놓고 같은 방정식과 좌표계를 도입하여 문제를 풀 수는 없고, 좌표 설정부터 따로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order of magnitude analysis다. 예를 들어 충분히 작은 크기의 뜨거운 쇠공이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Pe 가 충분히 크다고 가정한다면, 이 흐름을 creeping flow라고 가정할 때 원래는 conduction에 의한 에너지 전달항은 무시되어야 한다. 왜냐면 Pe가 클 경우에는 Convection이 전체 에너지 전달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답을 구해보면 쇠공은 전혀 에너지를 잃어버리지 않고 온도를 보존한 채 마치 진공 속을 움직인다는 것처럼 답이 나오는데, 이는 현실과 괴리가 너무 큰 답이다. 이렇게 괴리가 생기는 까닭은 쇠공과 물이 만나는 경계의 효과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얇은 경계층은 워낙 얇기 때문에, 이제는 convection만큼이나 그 안에서의 conduction이 중요해진다. 쇠공의 경우, spherical coord를 도입하면 되는데, 사실 spherical symmetry를 생각하면, 쇠공의 표면으로부터 바깥 방향으로 아주 약간만 더 멀어지는 수준의 공간을 생각하면 되므로, 반지름 방향으로 (radial direction) 새로 좌표계를 설정해주면 편하다. 이 경계층 안에서 convection과 conduction이 같은 가중치를 가지며 physics를 이루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실 NS eqn에서 이들의 governing term들의 order가 같게 하면 된다. 그렇게 만들면 이들의 order를 맞추기 위해 경계층 안에서의 좌표계 중, radial 방향으로의 좌표를 어떻게 더 늘려야만 physics가 성립될 수 있을지 자연스럽게 factor를 추출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철조망 장애물을 기어서 통과하는 군인과 장애물이 없는 지역을 기어서 통과하는 군인을 생각해 보자. 두 군인이 동시에 출발했을 때 같은 시간에 훈련을 마치려면 장애물이 있는 지역의 길이와 없는 지역의 길이를 같게 놓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애물이 있는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군인에게는 너무나 불공정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물이 있는 구간의 길이를 짧게 만들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 비율은 평균적 군인이 각각의 구간을 통과하는 속도에 반비례하여 만들면 될 것이다. 유체역학이나 이동현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계층 안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의 전달에 관여하는 두 process가 같은 스케일 안에서 밸런스가 맞게 만들려면 한 process에 대해 비율을 맞춰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서의 좌표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그 설정 비율은 바로 이러한 order of magnitude analysis로부터 나온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흥미롭게도, 유체역학의 BL든, 에너지 전달이나 물질 전달에서의 BL든, 이러한 stretching factor는 Re나 Pe의 power law dependence를 갖게 되고, 이로 인해 모멘텀, 물질, 열의 전달에 관여하는 governing factor가 물체나 표면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를 방정식을 풀기도 전에 미리 유추할 수 있다. 물론 order를 맞추는 것만으로는 수학적 엄밀성에 대한 확인이 끝나지 않으므로, 이렇게 조정된 좌표계에서 구한 답을 경계 조건과 맞혀봐야 한다. 그리고 그 경계조건은 물체 표면에서의 경계 조건뿐만 아니라, 경계층 바깥의 유체의 특성과 맞춰야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되면 경계층과 경계층 바깥의 층 모두를 만족하는 continuity도 완성되고, 다소 근사된 해이나마, 꽤 정확한 솔루션을 구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면, 아무리 수학적 툴을 갖추고 있고, 연습문제를 많이 풀어봤다고 해도 '왜 이러한 조정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다. 유체역학의 Blasius equation이나 Falkner-Skan equation을 유도하고 그것의 답을 수치해석으로 풀어내더라도, 애초에 왜 이러한 경계층을 왜 이렇게 조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상황에서의 유사한 동역학적 프로세스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없다.


비단 화학공학이나 기계공학뿐만 아니라, 재료공학에서도 이러한 order or magnitude analysis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재료공학에서도 상분리나 상변태 등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열역학뿐만 아니라, 재료의 kinetics를 공부한다. 그런데 재료는 주로 고체 결정 재료를 다루다 보니, 결정 특성 (symmetry, lattice constant)등이 다른 multi-component  소재가 온도나 압력에 따라 grain boundary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때 이 소재의 물리적 특성이 grain 안쪽에서 생성되는 physics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이들이 이루는 boundary를 따라 만들어지는 physics에 의한 것인지가 꽤 중요하다. 전자라면 classical transport model로 유추할 수 있지만, 후자라면 grain boundary에 줄 서있는 다양한 defect들의 양자역학적 특성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도 전자가 지배적 일지 후자가 지배적 일지, order of magnitude analysis를 하면 매우 편리하다. 사실 이러한 방법론을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으면, 요즘 재료공학 분야에서 핫한 2차원 반도체 소재들의 전달 특성 (carrier mobility, phonon vibration, polaron transport 등)에 대한 수학적 모형을 조금 더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 소재의 unit cell을 모두 고려하여 이들 내부에서의 파동 방정식을 수치해석으로 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너무 시간과 계산 비용이 비싸다. 아주 정확한 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적절한 order of magnitude analysis를 통해 대략적인 상한 값과 하한 값을 추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어떤 부분에 더 집중해야 할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계산 시간과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사실 다른 공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방법론은 꽤 유용하다. 몇 년 전 구글 입사 문제로 유명했던 페르미 문제 (Fermi problem: How many pinao tuners are there in Chicago?) 역시 이러한 order of magnitude analysis의 연장선 상에 있는 문제들이다. 정확한 값으로 가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를 가장 먼저 판별할 수 있는 장치 역할을 하므로 이러한 방법론을 충분히 다뤄볼 수 있는 시간과 훈련 과정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화학공학이나 기계공학에서 다루는 각종 전달 현상, 유체역학에서는 이른바 무차원 수 (dimensionless number)가 수십 종류나 나온다. 그렇지만 이러한 무차원 수의 종류가 많다 하더라도, 결국 그 핵심을 관통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종류 이상의 프로세스들의 경쟁과 규모 비교를 위한 장치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채, 숫자에 대한 공식만 외우면 정작 이 숫자가 주어졌을 때 엔지니어는 감을 잡기 힘들다. 관성력보다 점성 소산이 더 제어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떤 공정 엔지니어가 어떤 부분에 더 제어 장치를 많이 두어야 할 것인지 고민한다면, 사실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다루는 유체의 레이놀즈 수를 계산해 보면 되기 때문이다. 어떤 항공 공학자가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자신이 설계한 항공기의 날개 단면이 경계층에서 생기는 소용돌이 (eddy)에 대해 안정할 것인지 알아보고 싶으면, 사실 복잡한 CFD를 돌리기 전에, 자신이 설계한 날개 뒤쪽에 eddy가 생길 수 있는 조건이 성립되는지를 미리 order of magnitude 계산을 해 보면 될 일이다.


이공계 학생들의 수학적 훈련 과정에서 수학적 툴과 이론만 호스로 물들어 배 채우듯 채울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적어도 order만이라도 음미할 수 있는 과정이 병행되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음미하게 된 감각은 평생 잊어버리지 않게 되고, 다양한 순간순간, 많은 엔지니어들, 과학자들의 field에서 아주 중요한 힌트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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