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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Apr 27. 2022

누구나 학자가 될 수 있다.

그 학문을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지가 중요

19세기 독일의 수학자 Karl Weierstrass

독일의 수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Karl Weierstrass)는 해석학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익숙한 사람이다. 그는 최초로 모든 구간에서 연속이나 동시에 미분 불가능한 함수 (바이어슈트라스 함수 (Weierstrass function))를 고안했는데, 이 함수는 신기하게도 (아마 고안한 당시에는 바이어슈트라스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자기닮음꼴을 주요 특징으로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프랙탈 (fractal)이기도 하다. 즉, 함수의 특정 도메인을 계속 확대하고 또 확대해도, 원래의 함수와 똑같은 모양이 반복되는 (이러한 특성을 scale invariance라고 한다)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이어슈트라스 함수는

f(x) = sigma_n(a^n*cos(b^n*pi*x), 0 < a < 1, b = 2k -1, where k= positive integer, ab = 1 + (3*pi/2)


같은 형태를 갖는데, 이 함수는 굉장히 단순한 삼각함수의 멱함수 선형 결합처럼 보이지만, n이 조금만 늘어나도 미분불가능한 점의 개수가 증가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특징을 이용하여 바이어슈트라스 함수의 전구간 미분 불가능성을 비교적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바이어슈트라스 함수 같이 겉으로는 별 이상이 없어 보일 것 같은 함수인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특이한 괴물같은 성질을 갖는 함수들을 통틀어 병리적 함수 (pathological function)라고도 부른다. 어떻게 보면 이런 함수들이 도대체 뭐에 쓸모가 있는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자기유사성 (self-similarity)을 갖는, 혹은 그에 준하는 특징을 갖는 벡터 형태의 시계열 데이터의 특징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꽤 강력한 툴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바이어슈트라스 함수의 프랙탈 차원 (하우스도르프 차원)의 상한은 D = 2 + (log(a)/log(b))임이 알려져 있으며, 아마도 이 상한이 실제 프랙탈 차원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지만 실제로 증명된 적은 없다.


바이어슈트라스 함수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이 함수를 만든 수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첨부 사진1) 가 원래는 수학 교사 출신의 수학자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이어슈트라스는 뮌스터 대학 졸업 후 대략 7년 정도 프러시아의 김나지움 (지금의 중-고등학교) 몇 군데에서 수학 교사로 일했다 (더불어 물리와 체육 교사도 겸임). 수학 교사로 일하면서도 타원 함수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논문을 썼으며, 30대 시절, 본격적으로 해석학 분야의 연구 업적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고등학교 수학 교사에서 베를린대학 수학 교수로 이직했다. 대학으로 이직한 후에도 바이어슈트라스의 연구는 지속되었고, 그의 업적은 해석학 분야 (그 유명한 엡실론-델타 (epsilon-delta) 논법의 창시자이기도 하며, 그래서 해석학의 아버지라도 불릴 정도)는 물론 치환적분, 균등수렴, 타원함수 등의 분야를 망라한다.


바이어슈트라스는 김나지움에서 대략 5-6년 간 수학 교사로 근무한 것으로 보이는데, 교사로 근무하면서도 근처 대학의 수업을 수강하거나 수학 교수들과의 교류를 통해 본인의 연구를 꾸준히 진행했고, 그래서 30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업적으로 본격적으로 대학에 자리를 잡은 부분은 이번에 칸-칼라이 추측 (Kahn-Kalai conjecture)을 증명한 (물론 최종 퍼블리쉬되어야 확정되겠지만 거의 기정사실로 보임) 스탠포드 대학교의 박진영 교수님을 연상케하는 부분이다. 박진영 교수님 역시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후, 중-고등학교에서 대략 7년 정도 수학교사로 근무하다가 2010년대에 미국 럿거스 대학으로 유학 나와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수학 교사로 근무하면서 수학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예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오로지 수학에 대한 열정으로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박사 공부를 시작한 것은 드문 일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박교수님은 그러한 경로를 흔쾌히 택하셨고, 이렇게 좋은 업적을 만들어내기까지 하셨으니 큰 성취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내 언론이 최근에 이 증명에 대한 뉴스를 앞다퉈 보도하면서 다소 의아한 뉘앙스의 논조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수학교사 출신 수학자가 난제를 해결했다' 라는 류의 제목이 달린 기사를 가만히 살펴 보면, 수학 교사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 '재주를 잘 부려' 일을 잘 했네? 그런데 그 사람이 또 한국인이네? 클릭 좀 되겠네? 이런 뉘앙스가 읽히는 것이다. 수학 교사는 수학 연구 하기에 좀 실력이 딸리고, 교사와 교수 사이에는 넘사벽의 실력 차가 존재하고, 수학 교사가 하는 수학은 중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정도 아니냐 라는 차별적 시선이 읽히는 것 같아서 좀 많이 이상했다. 위에 언급한 바이어슈트라스 같은 위대한 수학자도 김나지움에서 수학교사로 근무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만들어 갔고, 아인슈타인도 처음부터 물리학자로 근무한 것이 아니라, 특허청 공무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미드 브레이킹 배드에 나오는 월터 화이트도 고등학교 화학 교사로서 순도 99%의 매스암페타...위대한 업적..(아..이건 아닙니다)을 쌓지 않았는가.


국내 뉴스에서 박진영 교수의 업적에 대한 보도를 할 때, 왜 '중학교 교사 출신', '용강중학교 교사' 등의 수식어가 필요한지 모르겠고, 그것을 통해 또 어떤 저의를 깔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박진영 교수는 그냥 수학자이고, 커리어 중에 수학 교사가 포함되었을 뿐이다 (박교수님의 CV를 보면 그 경력이 자세히 적혀 있긴 하다). 그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중학교 교사 출신이 이런 일을?' 같은 뉘앙스가 읽히게 기사를 쓰는 것은 좀 곤란하다. 뉴스 기사 해설에 '박교수는 한 때 수학교사로 일한 적이 있었고, 수학 연구에 집중하고자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수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정도의 언급만 있으면 충분한 일이다. 어린이집 교사 출신의 어떤 물리학자가 위대한 실험적 결과를 얻었다면 '어린이집 교사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제목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클릭에 목매는 황색 언론이 아니라면?


19세기 말-20세기 초 헝가리에는 위대한 수학자/물리학자가 참 많이 배출되었다. 한 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천재들이 비교적 작은, 그리고 상대적으로 변방에 속한 나라에서 배출될 수 있었는지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헝가리의 수학 교육 문화가 아주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 워낙에 뛰어난 학생들이 있었겠지만, 그 학생들이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게 했던 헝가리 특유의 수학교육 문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헝가리의 수학 교사가 라즐로 라츠 (László Rátz)라는 분인데, 이 분이 지도한 유명한 제자 중에 무려 폰 노이만과 유진 위그너가 있을 정도다. 만약 라즐로 라츠 같은 수학 교사가 단순히 수학 교사로만 머물고, 천재성이 있는 학생들의 재능을 꽃피우게 지도할 정도의 수학적 지식이 없었다면 헝가리에서는 그렇게 많은 천재들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수학 교사는 그 자체로도 정말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지만, 또한 수학 자체에 대해 기여할 수 있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그러니 '중학교 수학 교사 출신' 이라는 수식어 속에 애써 수학 교사의 실력을 폄하하거나 교수-교사 사이의 차별성을 내포하려는 것은 불필요하기도 하려니와, 적절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수학을 잘 못 했던 내가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 수 있었던 이유는 고1 때 나를 가르치신 수학 선생님 덕분이었다. 그 선생님은 그냥 공식만 외우게 들들 볶는 방식이 아닌, 대화식으로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수학 접근성을 도와 주셨다. 늘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시고, 엉뚱한 답을 하는 학생들을 나무라지 않으셨으며,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풀어보는 것을 권장하셨다. 잘 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가져다 주셨으며, 조금 더 잘 하는 학생들은 따로 불러 경시대회 출전을 권유하시고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챙겨주시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시절 몇몇 경시대회에 나갈 수 있었고 작지만 상을 몇 번 받기도 했다. 그런 상과 별개로, 수학의 재미를 느끼고 수학을 나도 한 번 열심히 해볼 수 있겠구나 라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더 큰 소득이었다. 물론 나 스스로 추상적인 수학을 잘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지만, 그러한 수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응용하여) 더 재미있는 실제 문제를 풀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러한 생각이 이어져 지금의 직업을 가지게, 지금의 연구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수학 교사 한 분의 지도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진영 교수님의 업적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 세상의 수많은 수학 교사, 과학 교사 분들의 노력에 감사드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학생들을 이끌며 그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이 수학과 과학을 포기하지 않게 같이 고생하시는 교사분들이 없다면 대학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각 필드에서 일할 수 있는 과학자들이 나올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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