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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Feb 21. 2023

플레쳐 선생이 보여주는 지옥의 이면

위플래시를 다시 감상하며

(이하 영화 '위플래시 (whiflash, 2014)'스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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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개봉했을 때 감상했던 포인트를 다시 즐기는 맛도 있었지만, 다른 장면도 좀 되새길 면이 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Shaffer 음악원의 신입생 재즈 드러머 앤드류와 음악원의 철혈의 지배자이자 재즈 스튜디오 밴드 지휘자인 플레쳐다. 선역/악역을 나누기 애매하지만, 어쨌든 둘 다 지독하리만치 완벽주의자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며 물불을 안 가리는 스타일이라 결국 정면충돌하게 된다. 그래서 앤드류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플레쳐 선생도 여러 사건이 얽혀 학교에서 잘리게 된다. 앤드류는 학교를 그만둔 후 알바를 전전하며 재즈 드럼을 잊고 살아가고, 플레쳐 선생은 프리랜서 음악가로 바에서 재즈를 하며 살아간다. 이 상황에서 앤드류는 플레쳐가 연주하는 재즈바에서 우연히 플레쳐의 연주 장면을 보고, 플레쳐는 앤드류를 확인하며 잠깐 재즈바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Fletcher: Truth is, I don't think people... understood what it was I was doing at Shaffer. I wasn't there to conduct. Any fucking moron can wave his arms and keep people in tempo. I was there to push people beyond what's expected of them. I believe that is an absolute necessity. Otherwise, we are depriving the world of the next Louis Armstrong, the next Charlie Parker. I told you that story about how Charlie Parker became Charlie Parker, right?


Andrew: Jo Jones threw a cymbal at his head.


Terence Fletcher: Exactly. Parker's a young kid, pretty good on the sax, gets up to play at a cutting session, and he fucks it up. And Jones nearly decapitates him for it. And he's laughed off stage. But the next morning, what does he do? He practices. And he practices, and he practices with one goal in mind: Never too be laughed at again. And a year later he goes back to the Reno and he steps up on that stage and he plays the best motherfucking solo the world has ever heard. So imagine if Jones just said "Well, that's okay Charlie. That was alright. Good job." Then Charlie thinks to himself "Well, shit. I did do a pretty good job." End of story. No Bird. That, to me, is an absolute tragedy. But that's just what the world wants now. People wonder why jazz is dying. I'll tell you, man - and every Starbucks "jazz" album just proves my point, really - there are no two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


Andrew: But is there a line? You know, maybe you go too far and you discourage the next Charlie Parker from ever becoming Charlie Parker?


Terence Fletcher: No, man, no. Because the next Charlie Parker would never be discouraged.


Andrew: Yeah.


Terence Fletcher: The truth is, Andrew, I never really had a Charlie Parker. But I tried. I actually fucking tried, and that's more than most people ever do. And I will never apologize for how I tried. 


이 장면 이후, 결말 부분에서의 클라이맥스 (서로를 엿먹이지만 결국 완벽한 연주를 만들어내는 장면)로 이어지면서, 이 장면에서의 대화는 결국 플레쳐의 연기였음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장면에서 플레쳐가 독백을 내뱉듯 이어간 이야기들에는 플레쳐의 진심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위의 대화에서 보듯, 플레쳐는 완벽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아직 껍질을 못 깨고 나온 병아리들을 압박하고 또 압박하고, 피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플레쳐가 원한 것은 그저 그런 수준의 음악인들의 양산이 아닌, 찰리 파커나 루이 암스트롱 수준의 음악인을 만드는 것이다. 플레쳐의 완벽주의로 인해 많은 학생들은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학교를 그만두고 심지어 자살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는 대화에서 이야기하듯, 자신의 '노력'을 후회하지 않으며 사과할 생각도 없다고 한다.


앤드류는 이야기한다. 너무 압박하면 제2의 찰리 파커가 오히려 그것을 못 이겨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 따진다. 그렇지만 플레쳐는 단호하다. 진짜 제2의 찰리 파커였다면 그 정도의 압박으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플레쳐의 대사 속에 계속에 마음에 남는 것은 이것이었다.


[So imagine if Jones just said "Well, that's okay Charlie. That was alright. Good job." Then Charlie thinks to himself "Well, shit. I did do a pretty good job." End of story. No Bird. That, to me, is an absolute tragedy. But that's just what the world wants now. People wonder why jazz is dying. I'll tell you, man - and every Starbucks "jazz" album just proves my point, really - there are no two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


[자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만약 조 존스가 피터 파커 연주를 듣고 '오. 잘하고 있어 찰리. 괜찮네. 잘했어'라고 이야기했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러면 찰리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런가? 나 쫌 굉장히 잘 하긴 한 듯.' 이랬겠지?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그 피터 파커는 안 나왔을 거야. 만약 정말 그랬다면 나로서는 엄청 슬펐을 거라고. 그런데 이놈의 세상은 '잘했어'라고 말해주는 것을 더 원해. 사람들은 재즈가 왜 죽어가는지 궁금해하곤 하는데, 내가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스타벅스 재즈 컴필레이션 앨범이 바로 이 엿같은 세상이 원한 것이다라는 것이 내 결론이야. 정말 그렇다고. 정말 세상에서 제일 안 좋은 말이 있다면 이거야. '잘했어. 괜찮았어']


비단 재즈 음악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 특히 고도의 전문성과 고품질이 필요한 영역에서 많은 학생이 좌절하고, 많은 현업자들이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낙심하곤 한다. 이공계 연구라고 다르겠는가? 실험은 계속 실패하고 열심히 계산한 결과는 현실과 compatible 하지 않아 그냥 쓰레기 데이터가 되는 것이 일상이다. 고생하며 데이터를 모아 논문을 썼지만 쓰고 나니 누군가 10년 전에 한 일과 거의 비슷해서 그냥 연습이 되어 버린 것도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이러한 특성과는 별개로, 수많은 논문들은 그저 good job이라는 소리를 들으려는 수준에 불과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모든 논문은 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연구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읽을 수 있는 페이퍼의 숫자는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로 인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주옥같은 논문만 모아놓은 컴필레이션이나 마찬가지인 교과서를 독파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런 컴필레이션을 수십, 수백 권을 매주마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불운하게도 signal에 비해, noise의 빈도는 어째 더 높아지고 있고, 논문을 위한 논문은 더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noise 성 논문에 대해서도 'good job'을 외쳐주는 문화다. 그 정도면 잘했어요. 그 정도도 충분해요. 거기서 멈춰도 돼요.라는 말은 참 듣기 좋다. 달콤하다.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된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다. 그것이 reward로 작동한다면 그 이상으로 더 나아갈 수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연구가 플레쳐가 하듯, 닦달하고 압박하고 쥐어짜는 과정을 통해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그렇지만 평범성에 대해 그것을 good job으로 칭하는 것에 만족하고 위안의 comfort zone에 머문다면 그냥 noise를 더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


페북이나 웹 커뮤니티에서 서로를 따뜻하게 격려하고 듣기 좋고 자기 계발에 적합한 이야기는 늘 환영을 받는다. 좋아요가 수집되고 공유도 많이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환영을 받은 이후, 그 위로가 그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더 높은 수준으로 가기 위한, 더 이상에 가까운 방향으로 가기 위한 원동력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그런 류의  위로는 힐링이라는 명목 하에 너무나 많고, 여전히 굿잡을 외쳐주는 자기 계발의 달인들도 많은데, 과연 그 힐링과 달인들의 언어들이 signal로 이어지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학생이 실험을 열심히 해서 잔뜩 데이터를 만들어 왔는데, 사실 그 데이터는 대부분 의미 없는 데이터라고 치자. 그런데 선생이 '잘했어. 이만하면 되었어'라고 위로해 주면 그 학생은 그 데이터가 의미가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심해지면 그 데이터로 말도 안 되는 논문을 써오는데, 선생은 여전히 '잘했어. 그만하면 되었어. 여기서 멈춰도 돼'라고 한다면 그 학생은 연구자로서는 망하는 길로 접어들게 된다. 진짜 선생이라면 그러한 상황에서 플레쳐에 빙의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데이터는 안 만드는 것보다도 더 안 좋아. 이렇게 계속 의미 없는 데이터를 만들 것이라면 실험을 하지 마. 의미 있는 데이터를 만들 때까지 다시 노력해'라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이 그것에 상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두려워서 혹은 마음이 약하고 착한 이 코스프레에 빠져서 쓴소리를 안 아낀다면 학생을 망치는, 적어도 학생을 그저 평범한 수준에 겨우 도달할까 말까 한 사람으로 가게 만드는 일이 된다.


더 높은 수준, 더 개선된 품질, 더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쓴소리만 있어도 안 되겠지만, 적어도 굿잡으로 점철된 피드백만 있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굿잡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지만, 그 속에 진짜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받은 일이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것은 나 스스로를 좀 더 돌아봐야 할 일일 수도 있다. 그만큼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하는 일이 아직도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칭찬의 에코챔버에 빠져 느슨해지는 것을 스스로도 경계하고, 나와 같이 일하는 분들께도 과한 칭찬이나 긍정적인 피드백만 주는 것도 가급적 삼가야 할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의 신뢰는 칭찬과 더불어, 진심 어린 비판과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을 서로 감내하는 것에서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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