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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26. 2021

쿼드가 계획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함의 1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의 재편의 의도는 무엇인가?

9월 19일 자 Nikkei Asia에는 미국-일본-호주-인도로 이어지는 이른바 'QUAD'가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을 개편한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미국-일본-호주-인도로 이어지는 이른바 'QUAD'가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을 개편한다는 Nikkei asia 발 기사: https://asia.nikkei.com/.../Quad-leaders-to-call-for...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QUAD가 단순히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치적 협의체를 넘어, 글로벌 산업의 지도를 개편하는 동맹으로서의 성격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신호탄으로 볼 수도 있는 소식이다. 그러나 이미 전세게 반도체 산업에서 bottleneck이 된 대만과 한국을 제외하고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을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일본에는 이제 글로벌 레벨에서의 종합 반도체 회사가 없다시피 하고, 인도나 호주 역시 반도체 산업에서는 주요 소비국가일 뿐이며, 그렇다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수입 비중이 크지도 않다. 이러한 조치들이 중국에 대한 견제 차원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정작 글로벌 반도체 수입액 기준 1위 국가는 중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애초에 중국 시장, 중국의 반도체 산업 점유율 등을 고려하지 않은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 개편 전략은 반쪽짜리 밖에 안 된다. 


그와 별개로, 사실 quad라는 탈만 썼지, 원래도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은 미국이 주도하던 시스템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중반 이전에는 전공정, 후공정, 팹리스, 파운드리 모두 미국이 석권하다시피 했지만, 90-00년대 초반 일본, 그리고 90년대 후반 이후의 대만과 한국으로 산업이 분화되면서 미국 주도의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은 글로벌 스케일로 확장되어 완성되었다. 이미 미국이 주도하던 질서 체계에 이제는 반도체 산업에는 한물간 일본, 딱히 대표적인 반도체 소부장 산업이 없는 호주나 인도가 추가된다고 해서 글로벌 반도체 서플라이 체인에 뭔가가 더 바뀔만한 모멘텀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이 오히려 이러한 움직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그것은 미국의 장기적 전략이다. 미국은 이미 트럼프 정부 시절 이전부터 러시아가 아닌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 대중국 전략을 다방면에서 세워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산업 규모가 급성장하고, 바야흐로 경제적으로는 G2에 등극한 후, 이제는 미국의 GDP 1위 아성을 위협하는 위치에 올라오자, 미국은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는 물론 경제 산업 면에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다양한 견제책 중에 미국이 먼저 꺼낸 카드는 첨단 하이테크 분야에 대한 기술과 무역 제재다. 특히 차세대 반도체 산업은 이미 미국이 선행 기술에 대한 IP를 전방위로 펼쳐 놨기 때문에 당분간 중국은 이에 대항하기 어렵다. 한국 입장에서는 더더욱 이런 면을 고려하더라도 대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을 지나치게 높게 가져가지 않도록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또한 이런 맥락에서 한 단계 더 생각해 볼 것은 향후 20-30년 안으로 반도체 산업의 전장이 조금씩 양자 ICT 분야로 옮겨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거의 한결같은 산업 지배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그것은 제조업에 대한 원천기술 표준 선점 및 시장 지배력 보존이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석유화학, 기계공업, 플랜트 산업, 제철산업, 그리고 반도체 산업 같은 전통적인 산업에서 그래 왔듯, 미국은 앞으로 차세대 반도체 산업이나 양자 ICT 분야에서도 길목길목마다 반드시 지나치지 않을 수 없는 IP를 깔아 두는 것을 국가적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주요 기술에 대한 표준을 선점하려 하며, 특히 동맹국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거대한 서플라이 체인을 미리 구축해 두려 한다. 따라서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 ICT 분야에서도 한국은 기술 표준 council에 꾸준히 참여하여 지분을 높여갈 필요가 있다.


B2C로는 제품을 잘 안 만들뿐더러, B2B도 어떤 서비스를 하는지 잘 안 알려져 있는 특징 때문에 사람들이 반도체 기업이라고 하면 잘 납득을 못하는 미국의 회사 중에 하나가 바로 IBM다. 이 회사가 딱히 B2C 제품을 많이 만들지 않더라도 여전히 연간 800억 달러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주된 이유 (그리고 매출이 꾸준히 성장세인 이유)는 수십 년짜리부터 수개월짜리 까지 다양한 주기의 선행 기술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쌓아둔 원천기술 특허들 때문이다. 대부분이 반도체 소자나 공정, 소재, 툴 등에 맞춰져 있어서 곳곳에서 알박기 노릇을 톡톡히 해 주고 있다. IBM는 미국 정부가 차세대 산업 전략을 세울 때에도 항상 참여하는 대표적인 키플레이어인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러한 거미줄 같은 선행 기술 IP들 때문이다. 장판파 같은 IP가 쌓이면 결국 그 기술이 그 업계의 표준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구글 역시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당장 돈이 안 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서 선행 기술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것이 무엇을 노리는 것인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개편은 대중국 견제 전술로 따진다면 성동격서 정도의 조치일 것이다. 눈앞의 반도체 수급뿐만 아니라, 기술 격차를 줄여 가려던 이러한 조치를 만나면 가용한 자원이 한정된 중국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호흡이나 차세대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여력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된다. 전선이 두 개 생기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은 어차피 중국 반도체 산업을 완전히 죽일 생각은 전혀 없다. 적당하게 시차를 두고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고, 가능하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 질서에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 최상의 결과일 것이다. 중국이 주동작위를 내세워 설사 그렇게 안 하려고 항전을 한다고 해도, 미국 입장에서는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신호를 보내면서 시간을 벌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또 미리미리 차세대 첨단 테크 분야의 포석을 깔아 둘 수 있으니 전술적으로도 아주 유효한 방법일 것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이러한 국면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는 이제 명약관화하다. 첨단 산업의 기술적 bottleneck이 될 수 있는 요소기술에 대한 후보군 발굴을 더 다양하고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 특히 기초연구개발이 집중된 정출연이나 대학에서의 관련 분야 연구가 단순히 논문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폭발할 수 있는 특허가 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기술사업화 조직을 대폭 강화하고 대학들은 기술지주회사를 더더욱 전문화하여 본격적인 산업화 키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정출연에서의 첨단 기술 연구는 대학보다 훨씬 더 장기적인 호흡으로 해야 하며, 이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장이 바뀔 때마다 끊기는 경향을 타파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들은 기술 표준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컨소시엄을 이뤄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예상컨대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 정책은 중국이 현재의 노선을 고수하는 한,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점점 실질적인 차원으로 좁혀져 올 것이다. 그 첨병은 첨단 기술에 대한 것이 될 것이고, 이는 글로벌 R&D 투자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인 한국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고민의 고비를 맞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계속 밀어붙여야 하는 것은 기술 혁신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며 그것의 무게감을 높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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