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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준 Seok Joon Kwon Sep 12. 2021

제2의양자역학 혁명은 일어날 수 있을까?

양자 텔레포테이션의가능성에 대해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이 그 유명한 맥스웰 방정식 (Maxwell equation)을 발표한 것이 1861년이다. (확실하게 정리하여 발표한 것은 1865년이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4개의 미분 혹은 적분형 방정식은 아니었다. 이를 벡터 해석학을 이용하여 수학적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올리버 헤비사이드다) 하지만 맥스웰 방정식은 발표된 직후, 대륙 유럽, 특히 독일어권 학계에서는 수학적 개념 이상의 실체를 가진 것으로 쉬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맥스웰 방정식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대칭을 이루며 수학적으로는 파동 방정식 (wave equation)으로 수렴하는데, 이 방정식이 예견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전자기파의 존재였다. 그리고 그 결론은 빛 역시 전자기파의 일종이므로, 진공에서 전자기파가 진행하는 속도가 다름 아닌 빛의 속도라는 사실이었다. 유럽 대륙 쪽, 특히 독일어권 학계에서는 과연 이 전자기파라는 개념이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은 대상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실험적인 증거가 없었으므로 대부분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맥스웰 방정식이 세상에 발표된 지 26년이 흐른 1887년, 결자해지 하듯 독일의 실험물리학자이자 전기공학자였던 하인리히 헤르츠가 결정적인 실험적 증거를 보였다. 그는 놋쇠 공 두 개를 이용하여 공에 전압을 걸어, 공기 중에서 전하를 만들낸 후, 생성된 전자기파를 고리형 전선으로 통과시켜, 전선에서 전류를 유도하여 전선 양끝에서 불꽃 방전이 생기는 것을 보임으로써 전자기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확실하게 증명했다. 헤르츠는 전자기파를 실험적으로 검지한 것뿐만 아니라, 다소 개량된 실험 장치를 이용하여 아예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헤르츠가 실험적으로 증명한 전자기파의 존재는 당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나아가 어떤 이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는데, 여기서 가장 먼저 기술의 신기원이 열릴 것이라는 냄새를 맡은 사람은 이탈리아의 전기공학자 마르코니였다.


이미 당시에 전보를 이용한 모스 신호 기반의 장거리 통신이 가능했던 시절이라, 마르코니는 당연히 전자기파를 이용하여 모스 신호를 먼 거리에서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특히 전자기파가 전선 같은 매체 없이도 공기 중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에 주목하여, 전자기파의 세기가 충분히 강하다면 훨씬 더 먼 거리까지 신호 전송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1895년, 마르코니는 일단 마을 혹은 도시 단위의 중단거리 무선 통신이 가능함을 기술적으로 시연했다. 다음 차례는 국가 혹은 대륙 단위의 통신이 가능한지 여부였다. 5년 넘는 시행착오 끝에, 영국의 전기 엔지니어 존 플레밍 (페니실린 개발자 알렉산더 플레밍과 다른 인물임.)의 도움을 받아 고출력 전자기파 발생장치 (원리적으로는 헤르츠가 처음 만든 실험 장비를 더 거대하고 강력하게 확장한 것에 가깝다.)를 영국 서부 콘월 지방 끄트머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 폴두에 설치했다. 그리고 마르코니의 조수들은 증기선을 타고 3,500 km의 대서양을 가로질러 캐나다 동부 뉴펀들랜드 주 동쪽 해안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마을 세인트존스에 도착하여, 그곳에 수신기 안테나를 세웠다. 하필 영국의 콘월과 캐나다의 세인트존스가 대륙간 전자기파 송수신 테스트 대상으로 선택된 것은 대서양을 직선으로 가로지를 때 최단거리를 만들 수 있는 지역적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벽두인 1901년, 콘월에서 마르코니는 모스 부호 SSS를 캐나다 쪽으로 송신했고, 잠시 후 캐나다 측에서는 이를 수신하는 데 성공했다. 바야흐로 대륙 간 무선 통신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맥스웰 방정식, 그리고 전자기파의 예견이 세상에 공개된 지 딱 40년 만이었다. 인류의 문명사 곳곳을 살펴보면 (더 정확히는 과학사), 이렇게 수학적 개념이 결국 시차를 두고 일반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문명 기기로 바뀐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렇지만 수학적 개념이 물리학적 이론으로 정리되고, 그것을 30년도 안 되어 실험적으로 검증하고, 다시 20년도 안 되어 실 생활에 응용 가능한 기술로 발전시킨, 그야말로 질풍 같은 속도의 [개념-이론-예측-기술]의 전환 단계를 보여 준 사례는 맥스웰 방정식-전자기파 실증-무선 통신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 (물론 당연히 맥스웰 방정식은 무선 통신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는 19세기의 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참 놀랄만한 성취이기도 하다.


2020년 2월, MIT Tech Review에는 도시 간 스케일의 양자 얽힘 (quantum entanglement)에 의한 보안성이 거의 완벽한 초고속 광통신 기술이 원리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담은 기사가 실렸다. (https://www.technologyreview.com/2020/02/12/844830/quantum-entanglement-over-30-miles-of-fiber-has-brought-super-secure-internet-closer/#Echobox=1582304800) 사실 양자 얽힘은 20세기 초 양자역학이 처음 탄생할 때부터 예견된 현상은 아니었다. 양자역학은 그 수학적 정합성과는 별개로, 실제 물리적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더 정확히는 그 현상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물리학이다. 20세기 초 물리학 혁명을 양분한 다른 한쪽인 상대성이론의 창시자 아인슈타인은 이 양자역학의 의미 부여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193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보리스 포돌스키, 네이선 로젠과 함께 Physical Review에 양자역학에 관한 사고 실험 페이퍼 한 편을 게재했다.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개념에 상당히 거부감을 보이던 아인슈타인은 이 페이퍼에서 공저자들과 함께 양자역학의 주력 해석 중 하나였던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세 사람은 페이퍼에서 이른바 EPR (세 사람의 머릿글자) 역설 (EPR paradox)이라고 불리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이 사고 실험은 얽혀 있는 두 상태가 물리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경우에 대한 것이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외부 관찰자의 계에 대한 '측정'이 얽혀 있는 상태 중 하나에 영향을 미치면 (즉, 한 상태의 상태 함수 (state function)를 결정하면), 나머지 한 상태의 함수도 자동적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결정은 두 상태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만약 두 상태의 얽힘에 회전 대칭성이 있다면, 측정하는 측에서 어떤 대칭축으로 특정 상태를 측정하는지의 의도(!)에 따라 나머지 상태의 함수도 그 대칭축을 정한 의도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인 양, 해당 대칭축의 방향으로 상태가 자동적으로(!) 결정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세상에는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상대성이론을 위반하는 것 이상으로, 철학적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 EPR 역설 사고 실험의 주요 골자였다.


EPR 역설이 공개된 이후, 학계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큰 고민에 빠졌다. EPR 논문이 세상에 나온 지 약 30년 후, 존 벨은 EPR 역설에 대해 '벨의 부등식'이라는 유명한 검증 장치를 제안한다. 이른바 '숨겨진 변수 (hidden variable)' 이론으로 대표되는 고전 통계물리학의 확률 이론에서는 어떤 상태든, 중첩된 그렇지만 독립된 상태라면, 이들의 확률 분포는 고전 물리학에서 허용하는 선형 합의 한계를 넘으면 안 된다. 이것이 벨의 부등식이다. 만약 양자역학에서 예견하는 중첩된 상태가 벨의 부등식을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양자역학이 고전역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학임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적어도 스핀 (spin)이라는 물리량은 고전 역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임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벨이 증명한 것은 고전역학적인 확률분포 체계에서는 양자역학의 스핀 분포 확률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학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벨의 논문이 출판된 이후 학자들은 과연 양자역학이 이야기하는 스핀의 중첩 확률 분포가 실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뜨겁게 이어갔다. 놀랍게도 양자역학이 정말로 벨의 부등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수십 년 간 반복된 실험 결과로 밝혀졌고, 이제 양자역학은 (그 전에도 이미 전자공학의 핵심 원리로 작용하기 시작했지만), 수학적 이론에서 태동하여, 물리적 의미 부여의 실체를 가진 후, 그 실체는 물론, 실체가 내포하는 의미의 해석이 실험적으로 검증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양자역학의 물리적 해석에 반기를 들기 위해 만들어진 EPR 역설에서 제안한 사고 실험이 오히려 아이러니컬하게도 양자역학의 물리적 실체를 확정하는 실험으로 이어지는 배경을 제공해 준 셈이다. 헤르츠가 전자기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한 순간, 그것에서 영감을 얻어 놀라운 기술로 만드려던 마르코니가 있었던 것처럼, 양자역학의 양자 얽힘, 그리고 상태의 중첩에 대한 물리적 실체가 드러나자, 이제는 이를 신 기술에 응용하려던 움직임은 당연히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현재 양자 얽힘이 기술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응용되고 있는 분야는 양자통신 분야다. 송신기에서 수신기로 전자기파를 보내는 것처럼, 신호를 직접적으로 보낸다는 의미에서의 전통적 개념의 통신과는 궤가 좀 다르다. 대신 중첩된 상태를 한쪽은 송신 측에, 나머지 한쪽은 수신 측에 배치하여, 송신 측에서 상태 한쪽을 건드리면 (즉, 상태를 여러 가능성 있는 후보 중 한 가지 후보의 상태로 붕괴시키면), 수신 측의 짝은 자동적으로, 그리고 순간적으로 상태가 결정되는 양자 얽힘 원리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에 대하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었지만,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은 수백 km 거리 떨어져 있는 육상 기지국 간의 양자 얽힘에 의한 통신이 가능함을 증명했으며, 2017년에는 저궤도 위성과 육상 기지국 사이의 양자 얽힘에 의한 통신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여전히 신호 전송의 효율이나 정밀도 문제가 남아있지만, 이제 양자 얽힘을 이용한 원거리 통신 혹은 정보의 이동은 기술적으로 전혀 불가능하지 않음은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


하지만 헤르츠의 실험에서 영감을 받은 마르코니가 무선 통신을 대중화시킨 것처럼, 양자 얽힘에 의한 양자통신도 본격적으로 대중화 시대에 접어들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기술적으로는 스케일업 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마르코니의 무선 통신 케이스에 비해, 기술 시현을 위해 투입되어야 할 인력과 자본과 시간이 너무 막대하다. 마르코니의 무선 통신 사업은 사업 투자만 잘 받으면 수익성이 보장된 발명이었기 때문에, 대중화되는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당시의 기술적 수준으로 충분히 표준화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부품의 수급이 가능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양자 얽힘에 기반한 새로운 통신 기술은 투입되어야 할 자본과 기반 시설과 피해가야 할 특허 장벽이 어마어마하다. 따라서 당분간은 상업화 단계로 퍼지기는 요원할 것이고, 아마도 일부 FAANG이나, IBM 혹은 삼성 같은 초 IT 대기업이나 일부 기술 선진국의 정부 연구소에서만 시도할 수 있는 양자암호통신, 그리고 on-chip 양자 컴퓨터 혹은 광 컴퓨터의 핵심 모듈로서의 가능성 테스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록 맥스웰 방정식-헤르츠의 전자기파-마르코니의 무선 통신으로 이어지는 숨 가빴던 40년의 경주를 21세기에 그 속도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현재의 수준에서는 맥스웰 방정식-헤르츠의 전자기파-그리고 마르코니의 초기 실험까지는 와 있는 상태인 것 같다. 


수학, 물리학, 그리고 공학은 딱히 명확히 학문 간 경계를 철조망 세우듯 세워서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수학은 명확한 증거와 기가 막힌 방법론, 엄밀한 증명과 창의적인 사고 관점을 제시하여, 물리학으로 하여금 자연현상을 규격화하고 체계화하여 근본적인 이해를 하는데 도움을 준다. 물리학은 체계화된 이론과 검증 방법을 제시하여 실험 물리학자들이 개념을 실증하고, 실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실험 물리학자들의 데이터는 누적되어 공학자들이 그것을 조금 더 넓은 스케일, 더 접근이 쉬운 스케일로 바꾸는데 밑거름을 제공한다. 물론 이렇게 학문적 영향의 흐름은 top-down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며, 각 단계마다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면서 각 분야에 자극을 주고, 교학상장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우리가 살아생전 양자통신으로 화성이나 에우로파에 정착한 이주민들과 거의 실시간으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는 상상의 영역,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라, 실제로 마음만 먹으면 될 수 있다는 시간문제라는 것으로까지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 것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큰 행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양자 얽힘에 기반한 새로운 개념의 통신이 과연 인류에게 어떤 문명의 수단을 하나 더 안겨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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