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절 연애실패 연대기의 시작
내가 다녔던 목동의 신도시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그 시절 남녀공학이 으레 그러하듯 우리 고등학교 역시 합반이 아니고 남자 반 여자 반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보통은 아예 층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가끔 끝번 남자 반 한, 두 개는 죽 늘어선 여자 반 끝에 붙어 있곤 했다. 그 시절 남자 기준으로 여자 반 복도를 가로질러 가는 건 완전 금기시 되었었는데, 그건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서로를 경계하고 그랬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장난으로 여자 반 복도에 친구 하나를 밀쳐놓고 우와~ 하고 도망가면, 엉겁결에 금단의 여자 반 복도에 들어와 버린 남학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자기 반으로 천천히 돌아오거나, 완전히 얼어버린 어떤 녀석들은 울먹울먹 하며 전속력으로 달려서 그 미지의 공간을 빠져나오곤 했었다.
반대로 여학생의 경우에는 급한 선생님의 요청을 전달하러 남자 반에 올 경우가 있었는데, 대개의 경우는 안경 쓴 이미지의 똑소리 나는 여자반 반장이거나 해서 남자애들의 휘익~ 하는 환호성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전달 사항만 전달하고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자기 반으로 돌아갔었더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여자애도 꽤나 떨렸을 텐데 그걸 굳이 그렇게 시킨 담임선생님도 진짜 짓궂었네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강하게 인지하지만 마치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듯 서로를 모른 체 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던 우리들이 일주일에 한 번 유일하게 마주 보며 말을 섞을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장려했던 각종 동아리 활동이었는데, 특히 유명한 건 과학반이었다.
뭐랄까, 과학반은 동아리 중에서 이미지가 좋은 편이라 남학생 여학생들이 사적으로 따로 모임을 가져도 선생님들의 인정을 받는 느낌이었다. 선남선녀들이 모인다는 소문이 있어 또 은근히 경쟁이 심한 동아리였는데, 운이라고는 전혀 없는 내가 또 운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몇 번의 가위바위보를 모두 이기면서 겨우 겨우 과학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과학반 동아리 첫 모임에서 운명의 Y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힘겨운 고등학교의 수험생활을 버티게 해 준, 큰 눈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인상적이었던 그녀. 당당하게 대학에 합격하여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버텼던 나날들이 아직도 아련히 기억난다. 일주일에 한 번, 과학반 여자 반장으로서 활달하게 모든 남자들에게 말을 거는 그녀와 한 마디라도 대화를 나누는 날에는 데이트를 승낙받고 그녀와 거리를 걷는 상상으로 온옴에 전율이 일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한심하고 불쌍한 여드름 투성이의 고등학생에게 너무나도 큰 연민을 느끼지만, 지금의 나라고 뭐가 딱히 달라진 게 있을까.
남자라는 동물은 갖고 싶은 여자를 위해 그렇게 무한의 동력을 자가발전 시킬 수 있는 미련한 존재일 뿐인 것을.
시간은 흐르고 흘러 긴긴 수험생활의 마침표가 찍혔고 다행히 나는 원하는 대학의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인천의 한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의 짝사랑 속앓이를 알고 있었던 친구의 강요였나, 어색하게 그녀와 찍은 사진은 아직도 졸업앨범 한편에 고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나와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도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그녀에게 내가 무슨 용기를 냈는지 너에게 줄 편지가 있다고 말을 꺼내버리고 말았다.
그 편지는 정말 힘든 수험 생활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던 어느 날 내가 너와의 만남을 꿈꾸며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상상했는지, 니가 과학반 동아리 모임 중에 나에게 실험이 잘 끝났을 때 잘하네~ 하고 어깨를 쳐주던 날, 그 행동이 나에게 얼마나 용기와 희망을 주었는지 고3 시절 내내 그 하루를 생각하며, 내가 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나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에 대한 절절한 독백이 주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소를 적고 편지를 부친 후에, 후회와 자책으로 어쩔 줄 몰라하던 며칠이 지나, 아무 소식이 없는 그녀에게 그럼 그렇지 나라도 연락 안 주겠다라고 슬퍼하던 마음도 새 학기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나날들에 점점 옅어져 갔었다. 마음 한켠에는 혹시 연락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연락이 없을 수 있냐는 분노도 있었다.
과학반은 모두의 연락처가 공유되었기 때문에 연락처를 몰라 연락할 수 없다는 핑계도 댈 수 없었다. 아니면 거절의 편지를 부쳐줄 수도 있었다. 나의 진심을 가볍게 무시하는 그녀에 대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던 날은 그녀 집에 찾아가서 왜 나에게 좋다 싫다 얘기를 해주지 않는지 강하게 따지고 싶은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아무 연락 없음에 지쳐가던, 조울증처럼 아픈 마음의 옅어짐과 그와 함께 격앙되던 분노가 교차하던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그 주 토요일 저녁 신촌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주었다. 나는 친누나들에게 동생의 아픈 사랑 얘기를 이미 전했던 터라, 이 소식을 들은 누나들의 엄청난 호들갑에 이은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 시절 유행했던 옷과 또 난생처음 해본 파마머리로 첫 데이트에 대한 중무장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약속의 토요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신촌의 약속장소에서 긴장에 숨도 못 쉬던 나를 과학반 모임의 여느 그날처럼 Y가 걸어오며 반겨주었다. 새로 산 구두가 너무 아프고, 내가 봐도 어색한 파마머리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벌게져 있던 나를 오랜 친구 보듯이 반기며 음식점으로 들어갔던 그녀. 그날 대부분의 대화는 그녀의 주도로 이어졌는데, 새로 시작된 대학 생활의 실망과 끝없이 쏟아지는 과제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이었다.
데이트의 승낙을 사귐에 대한 승낙과 동일하게 받아들였던 나는 그래?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듣기만 하는 입장이었지만 첫 데이트는 원래 이런 건가 싶어 하며 뭔가 이상한 이 상황을 적응해 보려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녀 주도의 일방적이고 어색한 대화가 2시간 정도 지속되었고 나는 이 어색함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점점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헤어짐의 끝에서 나에게 굉장히 두툼한 편지를 전해주었다.
돌아가는 도중에 읽지 말고 꼭 집에 가서 읽어보라고 했던 팬시한 디자인의 편지. 내용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꾹 참고 집으로 돌아와 설렘으로 열어서 읽어봤던 그 편지. 사실 굉장히 고민 많이 했다면서 시작된 그 편지에는 치기 어린 내 편지에 대한 굉장한 기분 나쁨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해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제는 오랜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내용은 내 기억에서 흩어졌지만, 그 와중에 절대 잊히지 않는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니가 나를 토대로 상상한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
너무나 화가 나고 속이 타들어갔다. 이 문장은 내가 고이 간직했던 내 고등학교 3년의 사랑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녀가 인용한 소설의 문장들이었는데, 뭔가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만 같은 그 소설의 문장들이 가진 힘에 압도되고 말았다. 온몸을 감싸는 분노와 함께 나도 바로 펜을 들어 그 내용을 반박을 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지만, 이미 각인된 유려한 편지의 소설 문장들에 의해 내가 쓰는 내용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글줄이 돼버렸고, 도저히 더 이상 편지를 쓸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화가 났다. 화가 나는 데 이를 풀 방법이 없었다. 억울하게 졌는데, 패배를 인정할 수가 없는 느낌.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완벽하게 한방 먹이고 내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생각하면 이미 그 시점에서 나는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화가 나지 않고 슬퍼야 했는데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유치함이라니……. 어쩌겠는가. 그때의 나는 너무나 어렸던 것을.
그리하여 그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적을 알아야 싸움을 이기는 거겠지 하면서 그 문장이 인용되었던 하루키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었다. 나도 내 심정을 설명할 만한 완벽한 문장을 소설 속에서 찾아내고 말 것이다. 그리고 편지의 완벽한 타이밍에 그 문장을 인용하여 나의 진심을 증명할 것이다.라는 욕구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다행히 대학교의 서가 일본소설 코너에 아직 누구도 빌려가지 않은 너덜너덜한 하루키의 소설이 몇 권 꽂혀있었다. 지금은 너무 짧은 시간 닥치는 대로 읽어서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하루키의 어떤 소설을 시작했는데, 몇 날 며칠 그 시대의 우리를 관통했던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편지의 분노는 다 잊어버리고 소설의 문체에 푹 빠져 버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문제를 풀기 위해 기계적으로 소설 구절을 읽고 주제를 외우던 내가, 순수하게 어떤 의지로 소설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던 그 나날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에 대한 분노는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중, 고등학교의 어느 시점에 이미 많은 소설들을 섭렵했던 그녀에게 유치함 가득한 나의 편지는 얼마나 가소러웠을까. 대적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깨끗한 패배감이랄까. 그런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고마운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나름대로 나에 대한 최선의 예의로 내가 그토록 바랬던 데이트를 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문제의 편지를 나에게 전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정성이 들어간 편지였던 건지 상상도 못 하겠다.
그 정성 때문이었던 건지 어떤 건지, 나는 그때 이후로 제대로 소설 읽기에 재미를 붙여 하루키 소설뿐만 아니라 윤대녕, 은희경, 성석제 등 독특한 한국 소설가들의 소설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학원 시절에 읽던 논문의 머신러닝 알고리즘 내용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던 날이면 몰래 대학원 내 자리를 빠져나와 중앙도서관 813번, 833번의 소설칸에 퍼질러져 앉아 하루 종일 한국, 일본의 소설을 읽었었다. 오래된 책냄새와 도서관 창문으로 들어보던 부우연 햇빛과, 내 첫 데이트를 기억하며 쓴웃음 짓던 젊은 날의 내가 지금은 너무나도 아련하고 사랑스럽다.
소설의 재미를 알게 해 준 그녀는 어디서 나를 기억이나 해줄까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그 옛날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이런 글을 쓰며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