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두뇌게임

가끔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글 쓰고 싶어서

by 원현민준
image.png




온 세상이 전쟁으로 시끄럽지만, 아직은 그 여파가 주식계좌 숫자 외에는 나에게 와닿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그게 가장 큰 거 아닐까. 솔직히 잘 적응은 되지 않는다. 내 몇십 년 간의 노동 혹은 무형적인 생산력의 가치가 어느 은행 서버의 디지털화된 비트일 뿐이고 그 숫자가 요 며칠 하염없이 녹아내렸다는 사실이.


저 비트자산의 신화 중에 가장 오래된 고전이 하나 있다. 금융계 IT종사자라면 선배들에게 들었을 법한 얘기이긴 한데, 그 분야 종사자는 아니라서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회사 가서도 이번 주는 멍하니 집중을 잘 못할 거기 때문에 출근하기 전에 썰이라도 풀어보자.


은행권에서는 낙전수입이라는 게 있다. 이자율이라는 게 몇 점 몇 퍼센트의 곱셈으로 계산이 되는 값이라서, 정확하게 몇십 원 이렇게 딱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나눗셈 연산은 비트단위의 계산을 하는 컴퓨터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인데 이걸 이진수와 십진수의 숫자체계로 설명하려 하면 아무도 이 글을 안 읽을 거기 때문에 생략하고, 이 미세한 숫자의 차이를 은행권에서는 본인들의 수입으로 잡아버린다고 대충 정리하기로 한다.


여기서 천재적인 한 친구가 아이디어를 낸다. 저 영점 영 몇 원을 은행이 먹는 게 아니라 내 계좌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 은행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저 정도 금액 차이는 신경도 안 쓰기 때문에 아무리 티끌 같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많은 사용자의 금액을 모으다 보면 어느 정도 돈이 쌓이지 않을까?


사실 이런 코딩은 교차검증 시스템이 정교하지 않던 초기 금융 IT 시절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고, 이 루틴을 프로덕션 코드에 박아놓은 그 친구는 얼마 뒤에 말도 안 되는 금액이 자기 계좌에 박혀있는 것을 보고 기함을 토하게 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도 스탠포드 대학시절이었나? 비슷한 로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미국 장거리 전화 시스템의 맹점을 발견한 건데, 미국 장거리 전화요금은 일단 거리가 얼마나 차이나는 지 초기에 결정되면 그 변수를 시간에 곱해서 장거리 전화요금이 책정이 된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거리차이를 송신하는 구조가 굉장히 단순하게 되어있는 걸 우연히 알게 되고, 이를 조작해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의 전화통화더라도 옆집에서 통화하는 거리라고 속이는 장치를 개발하고 이를 대학 친구들에게 비싼 값에 판매한다. 심지어 이 거리는 국제전화에서도 통용되어 바티칸에 '내가 헨리 키신저인데..'라는 장난 전화를 걸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잡스는 이때를 회상하며,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이때의 경험을 통해 애플이 탄생되었다 말했다고 한다.


닌텐도 게임 중에 '말랑말랑 두뇌학원'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게임이 있다. 벌레모양의 귀여운 박사모양 캐릭터가 나와서 두뇌를 말랑말랑하게 유지하셔야죠!라고 각종 게임을 소개하고 플레이를 유도하는데, 쉬워 보이지만 만만치 않은 퍼즐게임들이 잔뜩 있고, 풀 때마다 메달을 주고 점수 숫자를 표시해 줘서 점수를 높이고 싶은 마음에 계속 문제를 풀게 만든다.


확실히 우리 애들이 머리가 더 말랑말랑한지 도저히 애들이 만들어놓은 최고점수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열심히 시간 날 때마다 두뇌학원 게임을 하고 있다. 이 게임을 하다가 문득, 저 점수가 실제 화폐와 등가교환된다면?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기축통화나 금은 자체적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긴 한데, 저렇게 인간의 두뇌발전 수치를 화폐체계와 연동해 놓으면 AI에 대항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뻘상상이다.


속절없이 가상의 화폐가치에 내 인생을 걸고 일희일비하느니, 내 두뇌의 시냅스 연결 개수에 내 인생을 거는 게 훨씬 가치 있는 삶 아닐까. 사실 대부분의 공돌이는 착하게만 살고 있는데 몇몇 사업적인 능력이 번뜩이는 또 다른 영역의 두뇌가 발달한 천재가 세상을 바꿔놓긴 하니,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더 편리하고 모두가 행복한 방향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몇만 명이 어이없게 죽고 전쟁이 발생하는 현재의 모순된 세상에서 말이다.




뻘 상상 그만하고, 내 맘 속 기우제나 지내야겠다. 최근에 브런치에 글 쓰면서 '당장 1억 원을 주면 너의 글 쓰는 능력을 200퍼센트 높여주겠다'라고 하면 나는 아낌없이 그 돈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인데, 이상하게 최근에 주식으로 돈을 잃으면 잃을수록 글이 잘 써지는 묘한 경험 중이라 그냥 맘을 그렇게 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