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만 남은 김미자' 에세이 독후감
출근하는 차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우연히 알게 된 책이다. 104.9 Mhz 가 KBS 3 라디오인데, 내가 출근하는 시간대에 KBS오디오북이라고 정말 책 맛깔나게 읽어주는 전문 성우분들이 책을 읽어주는 코너를 한다. 작년에 윌라 구독하면서 '첫 여름, 완주'를 너무 재밌게 들었던(!) 터라, 익숙한 오디오북이 반가웠다.
그리고 KBS오디오북에서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익숙한 김중미 작가가 최근에 쓴 에세이인 '엄마만 남은 김미자'의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김중미작가는 첫째 딸인데, K장녀답게 힘들게 사는 다른 남매들에게 어떻게 꼭 시간을 내어 효도를 하자고 하고 결국 시간을 맞춰 부모님을 모시고 부산여행을 간다.
그런데 어떤 것도 신기해하고 밝은 모습을 보이던 엄마가 여행 자체에 시큰둥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한다. 작가는 엄마에게 약한 노인 우울증 증세가 있었던 때라 당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때 인지장애 그러니까 치매가 시작된 거가 거의 확실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아버지가 그 에세이 속 작가의 엄마와 무척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 대목을 라디오로 듣고 있는데, 이건 반드시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알라딘에 주문을 넣었었다. 하지만 책을 받고도 한동안 책의 첫 장을 열지 못했었다. 너무 무서워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서 방금 띄엄띄엄 읽다가 또 못 읽다가 한 책을 결국 다 읽었다. 제목만 보면 작가의 엄마에 대한 글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작가 아버지에 대한 글이 훨씬 많았다.
나도 약간 작가 아버지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흠칫하면서 읽었다. 아내의 치매를 끝까지 부정하고, 자신의 취미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내버려 두어서 작가 엄마의 치매가 급속도로 진행되는데 일조를 하셨단다. 그래도 먼저 돌아가신 사고뭉치 피터팬 아버지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는 대목에 약간의 위안을 받긴 했지만 말이다.
아내와 서로 둘 중에 누가 먼저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둘 다 이과에 극 T인 지라 쿨하게 요양원에 넣어놓고 F인척 울고 짜고 하지 않기라는 쉬운 결론을 냈었다. 책을 읽고 감정이 동해진 내가 책 내용을 요약해 주고 다시 아내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한마디 했다. '작가는 지 엄마한테 잘 못했으니까 그렇지'
와... 아내는 가끔 무심하게 툭 내뱉는 말이 세상의 진리를 관통할 때가 많다. 책 읽는 양으로 보면 내가 아내보다 몇 배는 더 많을 텐데 맨날 나보고 헛똑똑이라고 놀릴 때가 많은데, 진짜 인정이다. 책 읽는 내내 나는 그런 생각은 못했고, 작가가 처한 참 힘들어 보였던 환경에 안쓰러워하고 엄마를 걱정하는 자기 자신에게 취해있던 나르시시스트인 작가 아버지에 분노했었다.
가끔 의사가 쓴 에세이를 읽거나, 닥신티비 같은 의사 유튜버들의 내용을 들어도 일관되게 나오는 내용이, '장례식장에서 오열하는 자식이 사정 들어보면 가장 불효한 자식이더라'라는 관찰이었다. 정말 효녀 효자들은 부모님 가실 때 그전까지 근거리에서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모셨기 때문에 의외로 담담하단다.
그래도 작가가 용기를 내어 어찌 보면 부끄러울 수 있는 가정사를 책으로 풀어주었기 때문에, 덕분에 나는 나름대로 타인 가족의 간접경험을 통해 언젠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부모님을 대할 마음의 준비를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가가 마지막 작가의 글에 쓴 내용이 너무나 이해가 갔다. 작가는 소설의 뒤로 숨을 수 없어서 에세이를 쓰는 내내 몇 번이나 엎고 싶었다고 했다.
나도 처음에는 내 기억의 내용이 잘 안 맞는 거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소설이니깐 뭐 하면서, 거침없이 글을 썼었다. 그러다가 출장얘기를 목차로 정리하면서 이것저것 두서없이 썼던 글을 실수로 발행을 했고, 지금은 지웠지만 거기에 회사 내 부장님 실명이나, 우리 애들 이름을 다 노출해 버리고 말았다. 서둘러 잘못 발행된 글을 거두면서 한숨 돌렸지만 4시간 여 소설이 잠시 현실이 되어버렸다.
글 읽는 분들이 이거 뭐 소설같은 내용이겠지 하고 너무 몰입하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그래도 내가 살아냈던 인생인데 현실감 있게 몰입해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라는 감정 또한 갖고 있던 차에 이런 상황을 겪게 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중요한 사실은 내가 아직은 글 쓰는게 너무 재밌고 행복하다는 거 아닐까.
거기 지운 글 중에 '나도 나중에 치매 걸리면 여기 에피소드들을 우리 애들에게 또 얘기하고 또 얘기하겠지' 란 내용이 있었다. 작가의 에세이를 다 읽은 뒤, 치매 걸려 우리 애들에게 또 얘기하고 또 얘기해도 애들이 지루하지 않게, 에피소드들을 많이 많이 늘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꾸준히 브런치를 통해 소설화(!)되는 에피소드가 많아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