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나는 반가운 만남을 인생에서 기대하며
딸아이가 6개월 휴학을 했다. 대학교 3학년 올라가는 시기인데, 나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줄 수밖에 없었다. 추운 날 따듯한 옷을 못 입는 그런 시대는 아니건만, 요즘 시대 딸아이 나이의 젊은 친구들의 마음이 얼마나 추울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마침 딸아이가 내가 일하는 정부사이트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왔다고 하길래, 설레는 마음으로 퇴근시간에 맞춰서 딸아이를 태우러 약속장소로 향했다. 휴학 시작부터 더 바빠 보이는 딸아이를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실패로 점철되었던 내 대학원 6개월의 휴학기간을 답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약속장소 거리 끝에서 역시나 반짝반짝 빛나는 딸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차에 태우고, 느긋하게 집으로 향했다. 단 3개 남은 한정 판매의 굿즈를 못 살까 전전긍긍했는데, 자기가 마지막 굿즈 구매자였다고 요즘말로 초흥분 모드였다. 딸아이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말 걸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대화의 철문을 철컥 걸어 잠그기 때문에, 내심 다행이다 생각했다.
사이트에서 집까지는 차가 막히면 1시간도 더 걸린다. 오랜만에 딸아이와 얘기를 많이 하고 싶었건만, 야속하게 강변북로는 그날따라 막히는 것 없이 시원시원 차가 뚫렸다. 딸아이와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차를 몰고 가는데, 왼쪽으로 파란색 K5 차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흔치 않은 차라 설마 하고 번호판을 보는데 앞자리가 내가 좋아하는 선배형의 차였다.
형은 공대 한 학년 선배인데 기자로 일하고 있는 굉장히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내가 그렇게 동경해 마지하지 않는 문과 이과 머리를 모두 가지고 있는 분이다. 마침 저번 주말에 운동삼아 석촌호수를 같이 뛰게 되었는데, 매번 혼자 뛰던 석촌호수를 형하고 둘이 뛰게 되니 참 신기하게도 이제는 지겨운 석촌호수 길이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역시나 뜻하지 않던 반가운 만남 덕에 비록 차로 스쳐 지나가는 것 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지겨운 강변북로 퇴근길이 굉장히 재밌는 모험의 길이 되었다. 모험에는 이런 의외의 아이템이 수줍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내 바로 옆에는 피로 맺어진, 남은 인생의 모험을 평생 같이 할 너무나 사랑스러운 동료가 있다.
딸아이에게 슬쩍 운을 띄웠다. 아빠는 관상을 믿는 편인데, 눈썹이 짙은 사람은 주위에 사람이 끊이지 않고, 그렇지 않고 눈썹이 얇고 희미한 사람은 주위에 사람이 많이 없는 편 이래. 딸아이가 깜짝 놀랐다. 그 아이도 나와 비슷하게 눈썹이 짙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달리 딱 보기 좋게 잘 다듬어진 눈썹이 눈 주위를 감싸고 있다. 그럼 관상대로라면 아빠는 친구 많이 없는 거잖아. 딸아이가 되물었다.
딸아이는 너무나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뜻한 바가 있어 어렵게 실업계 고등학교에 시험 봐서 들어갔는데, 적응이 너무 어려워서 다시 동네 고등학교로 힘겹게 전학을 왔다. 다행히 중학교 때 알던 친구들이 따듯하게 받아주고 위로를 해주어서 힘을 내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은 완전 단짝이 되어 지금도 서로 응원하고 힘을 주고 그러고 있는데, 우리 집도 많이 놀러 와서 나도 익숙하고 많이 고맙다.
나는 다른데? 딸아이의 확신에 내가 엷게 웃었다. 그래서 나는 주위에 나와 이야기하고 나를 만나주는 사람들이 훨씬 더 소중하지. 전방을 주시하면서 흘리듯이 얘기했지만, 그건 내 진심이었다. 그리고 늘 딸아이에게 얘기해 주던 춘추전국시대에 꽃을 피운 동양철학은 수십만 명이 세상을 바꾸고, 죽고 다시 세상을 바꾸고 하던 시절의 처절한 통계학이라 관상, 사주 등은 한 번쯤은 봐볼 필요가 있다는 뻘소리로 얼른 주제를 옮겼다.
첫째 딸아이가 태어나던 날, 나는 중국 우한에 있었다. 얼마나 어리고 미숙했던지 비행기 티켓을 바꾼다는 생각도 못하고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대한항공편을 그대로 이용해 귀국해서 아이가 태어난 지 3일이 지나서야 겨우 첫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둘째 태어나던 날은 예정일 주위에 넓게 출장 금지령을 내리고, 세상을 마주한 둘째에게 바로 직접 안녕을 할 수 있었다.
그 작고 부서질 것 같던 아이가, 이렇게 어엿하게 커서 나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철없던 시절에 육아를 많이 도와주지 못했건만 이렇게 아이들을 잘 키워주고 있는 아내에게도 너무나도 감사하다. 희미한 눈썹 어딘가에 닿은 인연에 감사하며, 기자 선배형에게 차 지나가는 거 강변북로에서 봤다고 반갑게 연락드려야겠다.
기억에 관한 글을 쓸 때 첫 글을 대학동아리 단톡방에 먼저 공개했다고 썼지만 사실은 친한 회사 동료 두 분에게 가장 먼저 공개했었다. 밥 같이 먹고 수다 중에, 같은 목동 출신인 후배 동료와 한참 목동성당과 다니던 고등학교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첫 데이트의 추억이 떠올라 글을 적기 시작한 거다. 마음속으로는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두 분에게 가장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