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사내 메신저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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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울리는 사내 메신저 알람은 재앙에 가깝다. IT 쪽에서 운영업무 하시는 분들은 무슨 뜻인지 절절하게 이해하실 텐데, 방금 사내메신저가 실시간으로 울렸다. 어제 시스템 DB 설정변경 지시했더니 잘 안된다고 DB연결 실패상태로 그냥 퇴근한 신입사원들의 만행에 우쒸 우쒸 롤백하면서 그 분노를 중간리더 친구에게 메신저로 날렸는데, 새벽에 그 친구가 답한 건가 애써 좋게 생각하며 확인했다. 역시 그건 아니었다.


내가 몇 년 전 PM롤로 맡았던 자그마한 해외 프로젝트가 있다. 회사일 하면서 맨처음부터 하는 PM은 처음 해본 거였는데, 나와 사업관리 한 명, 개발자 4명 정도의 소규모 프로젝트였고 회사 솔루션 연계 때문에 솔루션 운영 파트장님과 긴밀하게 일해야 했다. 어떤 제약도 없이 내가 프로젝트를 직접 리딩하는 건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고, 주위에 나를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정말 많았다. 파트장님도 그중 한 분이셨다.


찬란한 봄빛과 같던 그 즐겁던 프로젝트 개발 시절도 푸른 잎새가 스산히 낙엽 되어 사라지듯이 조금씩 지나갔고, 개발자 몇은 퇴사를 하고, 사업관리 친구도 다른 프로젝트로 배치되고, 나조차도 다른 부서로 전배를 선택했다. 하지만 사람은 가도 프로젝트는 끈질기게 생명력을 가져, 묵묵히 머나먼 타지에서 시스템을 힘겹게 가동하고 있다. 지금 프로젝트에 관련된 사람은 나와, 영업대표와, 운영파트장님 뿐이다. 나를 브런치로 이끈 그 두 분이다.


프로젝트 시스템의 트랜잭션 미생성 알람이 새벽에 계속 와서 걱정이 된다는 그분의 메신저였다. 운영 시스템은 음식점(?)이 대박 쳐서 부하가 크게 가동되어도 걱정이지만, 파리 날리는 개점휴업도 걱정이다. 시스템이 멈춘 건지 진짜 손님이 안 오는 건지 파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정 기간 트랜잭션이라고 하는 손님의 방문이 없으면 알람이 울리게 되어있는데 그게 작동한 것이었다.


프로젝트는 지나가도 경험은 남아, 그동안 겪었던 무수한 현장 이슈의 경험을 머리로 빠르게 스캔해 보았다. 일단 빨간불 윙윙 울리는 공포의 알람은 없었다. 긴급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수단인, 고객 쪽 피엠 라인메신저까지는 안 던져도 될 거 같았다. 안도의 메신저를 교환하고 한숨 돌린 뒤에 이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개발자가 하나씩 프로젝트를 이탈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소스의 대부분을 이관받았다. 내가 그들을 잡을 방도는 없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다른 부서 혹은 다른 회사로 장대한 여행을 떠나는 그들에게 나는 가서도 잘할 거야 라는 진심이 담긴 배웅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스러져가는 마을을 지키는 촌장은 두 다리 굳건하게 서서 해가 뜨고 지는 하루하루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전설을 나눌 이야기 동료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 동료들은 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나와 비슷하게 이제 몇 안 남은 선배에게 치이고, 후배에게 마음 상해가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해 안 되는 소스코드를 어떻게든 이해해서 온몸으로 프로젝트의 안 보이는 구멍을 틀어막고 있다. 이해해 주는 사람 없으면 어떠냐 우리가 우리의 증명이다, 가끔 모이는 본사 앞의 치킨집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차디찬 맥주와 슬프지 말아야 할 슬픈 치킨조각을 입에 털어 넣었다.


파트장님과 맨날 언제까지 회사일 할까요 이런 얘기만 나누지만, 방금 메신저를 보면 이 분도 프로젝트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본인의 달콤한 새벽잠을 양보하고 나에게 연락을 돌리신 거다. 내 첫 PM롤의 프로젝트, 언젠간 놓아줄 수밖에 없는 애증이 가득한 프로젝트이지만, 나는 죄송한 마음이 먼저 앞섰다.


파트장님은 요즘 브런치에 글 쓰는 재미에 너무 빠져있다고 했더니, 틀니 금지 명령 마냥 브런치 글 쓰기 3일 금지를 농담아닌 거처럼 나에게 보내서 끝없는 'ㅋ'의 행렬을 유도하게 만든 위트가 넘치는 분이시다. 영업대표님은 무려 문헌정보학과 출신으로 자칭 우리나라의 웹소설계를 꽉잡고 있는 분인데, 오래된 프로젝트의 꼬일대로 꼬인 계약관계에도 불평한마디 없이 계약을 잘 마쳐주시고, 초기 글에 대한 에디터 롤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지금 정부 프로젝트도 이제 거의 끝을 향해가고 있다. 본사 복귀하면 가장 먼저 두 분에게 거하게 한턱 내려한다. 나 역시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지는 모르겠지만, 마음 맞는 회사분들 덕분에 이 여정이 힘들지 않다. 자,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내가 받았던 고마움만 생각하며, 이 고마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그렇게 다짐하며 출근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안타깝게 브런치 글 3일 금지는 못지킬거 같다 T-T 파트장님, 영업대표님, 제 글이 잼없어지는데 자기객관화가 안되고 있으면 얼렁 시스템 알람 울려주세요. 제가 딴건 몰라도 두분 알람은 칼같이 받아들이고 시스템 정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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