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조회수 괴물은 되기싫어요

아재 좀비가 되어버린 거도 감당이 안된다구요

by 원현민준



한때 유튜버를 꿈꿨었다. 사내강의 하면서 입이 제대로 털리는(?) 날이면 이거 임직원들이 재밌어한 부분만 그대로 다시 리바이벌해서 유튜브에 올리면 되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그때는 코로나 시절이라 나는 온라인으로 모니터 앞에서 얼굴도 모르는 직원들에게 신나게 썰을 푸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오른쪽 채팅창에 무수히 올라가는 ㅋㅋㅋ의 세례를 보면서 한껏 자신감을 가졌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처음에는 이렇게 좋은 웹 디자인의 환경에 내 글을 마음껏 올리고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조회수에 목을 매는 좋아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왜 이 글 조회수는 더 못썼다고 생각하는 저 글의 조회수를 따라가지 못할까. 다른 팔로워가 천명이 넘는 고인물 대가 작가들의 글 패턴이나 호흡도 분석해 보고, 통계 탭에 각인되는 그날그날 숫자들에 일희일비 하고 있다.


신참 브런치 작가 주제에 유명 유튜버들의 고뇌가 느껴지고 공감하고 있다고 하면 보는 사람들이 다 웃겠지만 지금 나는 딱 그 심정이다. 글 릴레이가 멈추면 조회수가 주는 것일까 걱정이다. 다행인 거는 노인네마냥 새벽 4시 전후로 눈이 딱 떠지는 초저녁 잠 전문가라 이렇게 주말이건 주중이건 할 것 없이, 사위 어둑하지만 해 뜰 새벽을 기다리는 거실 창문 풍경처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늘 소박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제 이전부서의 영업대표님 따님 결혼식에 갔다 왔다. 프로젝트 하느라고 5킬로 이상 찐 상태라 예전 양복은 당연히 맞지 않아서 최대한 캐주얼로 차려입었는데, 상의가 문제였다. 캐시미어 재질의 비싼 롱코트가 있긴 한데, 아직 날씨가 쌀쌀해서 입으면 될 거 같긴 하지만 유행 한참 지난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롱코트라 입으면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되어버린다.


쌍발 권총들고 이쑤시개 물고 혼주에게 축하를 드릴 수는 없어서 평소에 입고 다니던 후줄근한 캐주얼 코트를 입고 길을 나섰다. 사실 넥타이 안 매는 건 기본이긴 해서 결혼식 격식문화가 깨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해서 인사는 못 드리고 바로 식장에 들어갔지만 역시나 식장 안쪽에서도 파격적인 격식은 계속되고 있었다.


우선 주례가 없다. 신부 아버지인 영업대표님의 '우리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감정 최대한 삭였지만 사랑이 한껏 느껴지는 간단한 성혼선언문 섞인 송가가 끝나고, 더 엄격해 보이는 신랑 아버지의 자식 결혼 보고서가 이어졌는데 이 파트가 주례를 대신한다. 조금 늦게 들어가서 놓쳤지만 아마 신랑 신부도 동시입장 했을 거다.


같이 만난 부장님이 뭘 결혼식 증명 사진을 찍어. 다른 분들 벌써 내려가서 식사하고 계신다 라는 떼밀림에 계속되는 파격은 감상하지 못했지만, 연회장에서 다른 하객 분이 지나가면서 흘린 '축가 없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라는 얘기를 들어봐도 사람들 싫어하는 격식은 최대한 제거한 센스가 느껴졌다. 그리고 엄청나게 식사에 신경 쓴 느낌이었는데, 이건 뭐 웬만한 호텔 뷔페 저리 가라 정도의 퀄리티였다.


식사 테이블에 찾아오신, 과도한 염색과 화장으로 새신랑이 되어버린 영업대표님에게 한껏 축하를 드리면서 같은 딸 가진 아빠 입장에서 매의 눈으로 영업대표님 눈가를 살펴봤는데 눈물 흘린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와. 나는 딸아이 결혼시키면 눈물부터 펑펑 흘릴 거 같은데. 딱 봐도 애기애기한 신부였는데,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먼저 꺼내서 놀랬단다. 스물 일곱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 한참 부장님들 부모님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아서 장례식 러시가 이어졌는데, 조금 잠잠하더니 이제는 결혼식 러시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나는 이상하게 딸아이가 일찍 결혼할 것만 같아서 결혼식 갈 때마다 괜히 혼자 감정 이입되어서 울컥울컥 하곤 하는데, 내 작은 바람은 딸아이에게 보내는 페어웰 송사를 브런치에 쓰고, 그대로 멋들어지게 외우지 않고 라이브로 감동적으로 전해주는 것이다. 서양의 결혼식처럼 말이다.


정말 감사한 분들만 초대한 자유로운 분위기의 결혼식장에서 용기를 위해 약간의 알콜의 힘을 빌린 내가 발그레한 얼굴로 마이크를 잡는다. 친구같은 딸아이가 제가 올린 브런치 글의 삽화를 그려주기로 해놓고 하나도 그려주지 않아서 절교하려고 했어요. 라고 가볍게 시작하면 될까. 맨날 절교당하는 건 나였는데, 이렇게 소심하게 복수를 하게 된다며 즐겁게 시작하지만, 막판에는 청중의 눈물 펑펑 흘리게 하는 감동의 도가니를 만들어 버릴테다 라는 작가적 기대에 가득 차 있다.


이 얘기를 전해주었더니 아내는 파격의 끝은 소멸이지 라며 조만간 결혼식이라는 구시대적 소산이 없어질거라 답해서 내 기대에 찬물을 확 끼얹어 버렸다. 저번에도 썼지만 아내의 예언은 종종 무섭게 들어맞기 때문에 아 안되는데, 나 감동의 결혼축하 송사 해야하는데 라는 걱정이지만 어제 저녁에도 뒤늦게 '왕과 사는 남자' 영화 같이 봐 준 딸내미가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얘 어떻게 시집보내나 이런 생각이 들긴 했었다. 세상은 파격으로 변해가지만, 딸아이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결혼식장에서 만난 하나도 안 변한 부장님들에게, 제가 지금 비굴하게 부장님들과의 일화를 팔아서 브런치 조회수 굽신굽신 준비중이에요 라고 자가고백을 할까 하다가 쓰게 될 그 글마저 부끄러워서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몸에서 북슬북슬 보기 징그러운 비늘이 돋아나며 크앙~ 하고 영화 스크린을 위협하는 조회수 괴물이 아직은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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