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침대도 제공할 수 없는

가족이 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타지에서 바랬던 기억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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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지에서의 고단한 하루를 마치면 어서 빨리 숙소로 복귀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뜨거운 물 틀어놓고 샤워하는 순간은 하루에서 가장 마음이 편한 시간이다. 편한 숙소는 그래서 출장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국이나 인도가 호텔비가 비교적 싼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출장자들을 위해 좋은 호텔을 잡아주던 회사가 참 고맙다.


그렇게 수없이 출장을 다니고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했는데, 음식이나 다른 건 어떻게든 잘 적응했건만 가장 적응이 힘들었던 게 있다. 아무도 없는 숙소에 불을 켜고 들어가는 어색한 느낌이다. 호텔이나 출장지 숙소가 원래 그런 거지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는데, 특히 다른 동료 출장자들 없이 혼자 출장 가는 경우 이 느낌이 정말 말도 못 하게 커진다.


혼잣말도 늘게 되는데, 이럴 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캐스트 어웨이'의 톰행크스가 된 것만 같다. 윌슨 배구공은 못 챙겨갔기 때문에 그냥 또 다른 나 자신에게 대화를 건다. 아 회의에서 왜 그렇게 잘못얘기한 거야. 내일은 좀 잘하자 엉? 이렇게 얘기하다가, 그 적막한 공간에 나밖에 없는데 나 누구한테 얘기하는 거야 하고 어이없어하던 때가 많았다. 특히 하루종일 영어로 회의하면서 한국말 한번도 안하는 날들이 길어지면 이 증상이 심해진다. 해외생활 많이 해본 사람들은 정말 공감할거다.


그렇게 출장일이 길어지면 숙소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 가득해서 서둘러 왔건만, 호텔에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특히 숙소 방문을 열기가 싫어진다. 문을 열어도 아무도 없는 공간. 또 혼잣말을 해야 하는 공간. 침대는 최고급이라 누우면 중력을 잃은 것 마냥 한없이 푹 꺼지며 내 몸을 받아주고, 은은하고 고급스런 주황색 조명과 푹신푹신한 카펫에, 책상이나 세면대나 모든 게 고급진 그 공간이 꼭 감옥같이 느껴졌었다.


그럴 때는 항상 생각했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라서 내가 문을 열면 '아빠~' 하고 반겨주는 아이들과 아내가 있는 공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가족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서 걷잡을 수 없을까 봐 어느 정도까지만 상상하고 다시 맘 다잡고 에잇 하고 숙소 문을 열고 마는 일상이었지만, 그 환상은 출장을 갈 때마다 내 마음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에서 2년간 인도에 가족을 포함하는 장기파견자를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미 나는 마음에서부터 한 손을 하늘 끝까지 치켜들고 저요 저요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긍정기제를 머릿속으로 양산하고 와이프를 설득했다. 인도 국제학교에 보내면 아이들 영어는 자동 습득이야. 인도에서는 손끝하나 안 쓰고 메이드 쓰면서 여왕처럼 살 수 있대.


마침 격무에 시달리느라 약한 번아웃 상태였던 아내는, 남편의 장기 해외출장이라는 정당한 명분으로 휴직 후 복직이 가능한 상황이라 깊게 생각 못하고 달뜬 내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렇게 미칠듯한 더위에 인간이 살 수 있는 게 맞나 싶어 하며 힘들어하던 2년간의 인도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가끔 가족과 인도얘기 할 때 있는데 인도만 생각하면 다른 어떤것보다 힘들었던 더위만 생각난다고 한다.


다 잊혀졌다고 하지만 현실은 정말 열악했다. 가족이 길게 살 집이라고 1달 넘게 고르고 골라 마련한 빌라 집은 수시로 전기가 끊겨 발전기의 매캐한 매연을 맡으며 생활해야 했고, 나름 외국인 많이 사는 동부이촌동 같은 곳이라 델리에서 살기 제일 편하다는 곳이라고 했건만,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장사하는 음식점마냥 빨간색 가스통을 매달 주문해서 교체해야 했다. 물도 석회물이라 최고급 정수기를 들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이상한 맛이 났는데 그냥 다 포기하고 그 물 마시고 요리에 쓰면서 살았었다.


메이드라고 불리는 아야는, 이미 먼저 쓰던 다른 집에서 금품 절도 사건이 발생했던 지라 겁이 많은 아내는 쓸 생각도 하지 못하고 2년을 견뎠다. 아내가 동네 마켓에서 장을 볼 때 주인이 매번 의아하게 쳐다봤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내를 네팔리 아야로 착각했던 거였다. 네팔리 라고 동양계로 생겼지만 거의 불가촉천민급으로 여겨지는 아쌈지역출신 아야로 보이긴 하는데, 얼굴이 희고 옷을 잘 입고 있어서 정체가 뭔지 싶어했던거 같다.


가족들에게는 참 미안하고, 정말 잘 견뎌주어서 고맙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던 인도 생활이지만 나는 2년간 우리 집의 현관문을 열면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과 아내 덕에 너무나도 행복한 해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한을 풀어서 그런지, 인도에서 복귀해서 다시 다른 나라의 출장을 가도 숙소로 돌아가는 복귀 길이 무섭지 않았다.


어제 회식자리에서 경기도 권이긴 하지만 집이 너무 멀어서 회사 본사 근처에 자취를 한다는 신입사원의 얘기를 듣다가, 이런 얘기를 하며 자취방 문을 여는 순간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을 했었다. 원래 대학 때도 자취를 해서 그런 생각 가진 적 없는데요?라는 반문을 들으며 아 내가 쓸데없이 민감했던 건가 라는 생각이 들던 차에 이 얘기를 남겨보고 싶어서 브런치 3일 금지를 역시나 가볍게 깨고 몇 줄 또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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