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내가 존경하는 사수님에 대한 기억
보통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 전담해서 회사생활 전반과 일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선배를 '사수'라고 부른다. 나는 특이하게도 몇 개월 사수가 없었다. 부서가 한참 사업이 수주되어 바쁘게 돌아가던 탓도 있었지만, 당시 회사에서는 신입들의 인성을 파악하기 위해 내비두면 뭐 하고 노는 지를 관찰하던 관례가 있었다. 그렇게 신입사원을 방치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던 낭만 가득한 시절이었다.
나는 다른 신입사원들과 달리 컴공과를 나왔으니 코딩도 잘할 자신이 있었고 (생각해 보니 전공자가 아니어도 IT기업에 얼마든지 취업할 수 있었던 역시나 낭만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원래 가만히 있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라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가 첫 북경 출장이 잡혔는데, 그 첫 출장을 계기로 해서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이 된 분이 오늘 얘기할 J선배다.
첫 일에다가, 첫 해외 출장이라니 너무나 신났지만, J선배에 대해 당시 내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월급 받는 사원이라면, 무슨 출장인지 해야 하는 일이 뭔지부터 걱정해야 하는데 나는 그냥 J선배가 괴짜라는 소문만 무성한 상태라서 일은 제쳐두고 말도 몇 번 안 나눠본 J선배와 2박 3일 동안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 그것부터 걱정되었다. 그러면서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해외 출장이라니... 너무나도 설렜다.
무뚝뚝한 첫인상과 달리 J선배는 처음 해외출장을 가는 나를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챙겨주었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긴장되어서 말도 한마디 못하고 J선배만 쫓아다녔던 것 같다. 당시의 중국은 이제 막 사회주의를 벗고 외국의 자본이 들어오던 때라서 그 시절 문명의 충돌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하늘높이 솟아있는 만리장성 호텔 옆에 인민군 모자를 눌러쓰고 인력거 위에서 한가롭게 낮잠을 자는 농민공들이 있었다.
왕징의 북경 사무소에 출근해서 중국 법인 직원들과 앞으로 들어갈 중국 각 도시 지하철 역사의 메인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회의가 출장의 주된 업무였는데, 나는 들어도 하나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그저 회의 끝나고 펼쳐지는 맛있는 중국 본토 요리의 향연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때 너무 노는 거 같아서 반 의무로 화이트보드를 찍은 사진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사진 안에 시스템 하나하나 주요 기능과 다루는 정보를 모두 얘기할 수 있다. 어쨌거나 J선배는 대리임에도 북경사무소의 과장급 인력들과 시스템 전반을 토론할 수 있는 능력자였고, 그때 나는 그저 감탄하며 그분의 능력을 감상할 뿐이었다. 출장 때 많은 얘기는 나누지 못했는데, 그냥 나쁘지 않은 분이다 정도의 인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두 번째 출장도 빠른 시간에 잡혔다. 이번에는 중국 우한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그 우한 맞다. 북경에서 정신 아찔할 정도로 맛있었던 중국음식에 내심 다음 중국 출장을 기다렸기 때문에 역시나 이번에도 같이 가는 J선배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을 못했었다. 수요일, 일요일 일주일에 두 번 대한항공에서 우한 직행 비행기가 있었고 이걸 이용해서 첫 우한 출장을 갔다.
우한은 북경과는 너무나도 다른 도시였다. 내 첫인상의 우한은 끝없이 펼쳐지는 뿌연 공기의 회색의 풍경이었다. 공산주의 특유의 중공업 발전 때문인데, 검색해 보니 그 당시 소련의 기술 지원을 받아 우한강철(Wuhan Iron and Steel)이 설립되었고, 이는 도시 전체를 먹여 살리는 거대한 엔진이 되었단다.
우한 경전철 고객들과의 미팅을 마치고, 간단한 점검을 위해 납품된 장비들을 살펴보는데 긴급으로 펌웨어 수정을 해야 할 심각한 버그를 발견했던 거 같다. 펌웨어는 커스텀 보드를 작동시키는 특수한 소프트웨어를 지칭하는 말인데, 장비의 펌웨어 버그를 발견한다고 해도 전용 통신 모듈이 없으면 펌웨어 수정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 장비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다음번 출장 때 고치겠다고 말하고 그 기능에 대한 사용자제를 부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분은 우한 시내에 전자부품 단지가 있는지 물어보더니, 나와 동행해서 그 단지를 방문한 뒤에 그 단지에서, 인두, 땜납, 범용보드, 인터페이스 칩 등등을 구입해서 사이트로 복귀한 뒤에 바로 직접 통신모듈을 만드셨다. 왜 사람들이 J선배를 괴짜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감탄하거나 감동하는 걸 가감 없이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편이라 그날 저녁 그대로 말씀을 드렸다. 내 순수한 감탄과 존경의 칭찬 세례를 한껏 받은 J선배는, 본인이 정말 힘든 자기의 배경 속에서도 야간 대학을 나오고, 이렇게 로우코드 엔지니어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제야 끝마디가 하나 없는 선배의 검지 손가락이 눈에 띄었다.
내가 너무 놀래서 시선을 떼지 못하자,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기계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머쓱하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강원도 시골 출신인 그 선배는 가난한 집이 너무 싫어서 중학교 때 무작정 집을 나와 중국집 배달부로 밑바닥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 배움의 갈망이 너무 커서 전자부품 회사 시다로 들어가 이 악물고 기술을 배우고 야간대학을 나와, 이렇게 번듯한 IT기업까지 오신 거였다.
그런 그는 보통의 4년제 대학을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괴짜'일 뿐이었을 거다. 하지만 엔지니어로써 어떻게든 현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도 잘 안 통하는 사이트에서 고군분투했던 그는 초짜 엔지니어의 눈에는 그저 너무나도 멋있는 선배였다. 우한 전자단지 구석에서 호환 인터페이스 스펙의 통신칩을 발견하고 됐다! 라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던 J선배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뒤로 나는 J선배를 내 사수라고 동네방네 선언하고, 그 선배의 껌딱지가 되어 출장도 참 많이 같이 다녔다. 선배가 중국출장만 가면 밥을 그렇게 잘 사줘서 그런 것도 있는 거 같다. 회사에서는 이런저런 눈치 보다가 출장지에서는 그런 게 없어서 그런 건지 어떤 건지, 아니면 당시 중국 풍경이 배곯던 선배 시절을 생각나게 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사심 없이 밥 잘 사주는 사람에게 무한충성은 회사생활의 진리가 맞으니까.
지금은 퇴사하고 또 다른 새 도전을 찾아 캐나다 이민을 가셨는데, 상도덕이 없는 인도 엔지니어 친구들 때문에 힘들다고 우스개로 그쪽 통신을 전달하셨다. 멀리서도 별 탈 없이 그 땅에서 한국출신의 행복한 엔지니어로 삶을 계속 유지하셨으면 좋겠다.
아까 새벽에 '글 목차 정리' 라는 글이 올라갔는데, 목차 정리하면서 썼던 글이 실수로 발행이 되어버렸습니다. 막 출장 에피소드 목차 정리하면서 이거저거 썼던 글인데 벌써 읽으신 분들에게 정말정말 죄송한 마음입니다. 굉장히 당황하면서 발행취소 버튼이 어디있는지도 못찾아서 급하게 삭제했는데, 좋아요 눌러주신 분들께서는 그냥 앞으로 쓸 글들 예고편이라고 너그러이 봐주시길 바랍니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