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제목인데, 하루키 에세이 제목을 오마주 한 거밖에 없어요
소설가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데 (우리 때 책 읽어본 사람 중에 이 소설가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늘 같은 시간 새벽 5시에 출근하기 전에 잠깐 시간 내서 글 쓰는 시간이면 하루키 생각이 많이 난다. 그는 출근하듯이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아무리 글이 잘 써지는 순간에도 글쓰기 퇴근시간이 되면 딱 끊고 일과를 정리했다고 했다.
취미로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그가 했던 얘기에 더 공감이 갔다. 달리기를 제대로 해본 사람은 언젠가 마라톤을 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마라톤 완주야말로 꾸준한 반복의 끝판왕이다. 하루키의 에세이 중에 마라톤 전문 선수를 다룬 글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막상 공식 시합에 출전해 마라톤을 달리는 것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수개월 혹은 수년간 했던 성과를 단순히 보여주는 것뿐이다. 쉽게 말해 스타트라인에 서기 전까지에 모든 승부가 결정되어있다는 뜻이다.
마라톤 러너들은 그 순간을 위해 무수히 반복되는 자신의 루틴에서 몸을 만들고 전략을 짜고 자신이 달릴 때의 강점을 극대화한다. 하루키의 예를 들면, 그는 오르막 달리기에 굉장히 자신이 있는 편이라 오르막 구간이 나타나면 아 이제 기어를 갈아 끼면 되겠구나 하고, 맘속으로 철컥 자신의 몸의 기어를 갈아 낀 다음 천천히 앞의 주자들을 제치기 시작한단다.
보스턴 마라톤이었던가. 큰 대회를 준비하는 일본 러너들에 대한 인터뷰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방금 검색했는데, 그 유명한 책이 맞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혹시 안 읽어본 분 있으면 완전 강추하는 책이다. 책소개를 잠깐 붙이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인생과 창작의 근간이 된 ‘달리기’를 주제로 쓴 회고록이다. 2009년 문학사상에서 임홍빈의 번역으로 출간되었으며, 원제는 走ることについて語るときに僕の語ること (영문 제목: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이다. 꾸준한 달리기를 통해 얻은 통찰로 작가로서의 집중력과 지속력을 성찰한다.
이 책은 달리기를 취미로 하지 않을 때 읽었었고, 그냥 역시 하루키는 뭘 써도 재밌구나 정도로 넘어갔던 책인데 제대로 달리기 시작하고 나서 검색을 하다가 다시 저 인터뷰 내용을 다시 읽고 너무나 구구절절이 와닿았어서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비판하거나 깊게 얘기하기 전에 직접 체험해 보는 게 최선이라고 믿는 편이다. ('남의 신발 신어보고 뛰어보자 풀쩍' 글이 그 부분 다룬 내용이다. 또 깨알 홍보한다 후후)
글 쓰는 것도 일견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거의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올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쓰려던 해외출장 추억 글은 못 쓰고 이런 신변잡기 류의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이게 너무 재밌으니 그냥 쓰고 있다. 사실 새벽 3~4시에 일어난 지 몇 년 되어서 아침 시간에는 주로 긴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이 시간을 글쓰기로 대체하다 보니 글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얘기에 개점축하를 위해 방문하신 몇몇 지인이 놀라는 포인트가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세요? 였는데, 나는 이게 왜 놀라는 포인트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그분들은 회사에서나 어떤 다른 이유로 글을 굉장히 힘들게 시간 내서 쓰던 기억이 있어서 그러신 것 같다. 글쓰기를 일상의 루틴에 넣으면 이렇게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다고 설명을 드려봐야 아마 이해를 못 하실 것 같아서 그저 어쩌다가 보니 계속 글 쓰네요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또 극한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거나, 내안의 순수함이 사라지고 글을 쓰기 위한 글을 쓰게 되면 잠깐 글 쓰기를 멈출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검색하다 찾은 책의 문장이다. 여자 마라토너로 일본에서 유명한 세코 도시히코(瀬古利彦) 선수에게 하루키가 질문한다.
"오늘 같은 날은 쉬고 싶다거나, 달리기 싫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까?"라고 묻자, 세코 선수는 "당연하죠, 매일 아침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전문 마라토너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달리는 게 즐겁고, 전문 작가가 되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글 쓰는 게 너무너무 즐겁다. 다만 글을 잘 쓰시는 분들, 짧지만 영혼을 울리는 글을 쓰시는 분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존경한다. 내가 글을 써봤기 때문에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다. 제대로 뛰어봤기 때문에 전문 러너를 존경하고, 하루키를 존경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즐거운 습관의 끝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이렇게 글 하나를 쓰기 시작했고 또 출근시간 되기 전에 어떻게든 잘 마무리했다. 감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부디 이 즐거운 시간이 오래오래 계속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