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도서관 주차장 길 단상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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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의 봄날 햇살은 백만 불짜리 선물이다. 정독도서관을 올라가는 주차장 기다리는 길에 차로 50여 분을 서 있었지만, 그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차창을 열고 따듯한 햇빛을 즐기면서 도서관 오르막길 올라가는 사람들을 천천히 관찰했다. 노년의 부부에서부터, 가족단위의 방문객, 아니면 절친 중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까지. 그들은 느끼지 못했겠지만 행복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강아지가 그들을 쫄쫄쫄 앙증맞게 쫓아가는 게 느껴졌다.


애매한 시간에 주차를 기다리는 상황이라 차가 하도 안 빠지니까, 주차를 담당하시는 분 께서 주차공간이 아닌 곳을 개방해 주셨다. 덕분에 주차를 제시간에 할 수 있었다. 그게 운영방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마저도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종로구의 어떤 곳들은 꼭 낡지만 세련된 기와집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느리고 여유 있는 모습에서 시간이 비껴서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정독도서관의 풍경이 꼭 그러했다.


주차의 목적은 서울공예박물관 방문이었다. 하지만, 딱히 큰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요일 주말시간이 그대로 흐르는 게 아까워서 방문할 곳을 찾는 중에 아내가 추천한 곳이었다. 물론 아내는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나와 함께하지는 못하였다. 대신에 근처에서 남자친구와 데이트가 있는 딸냄이 정독도서관 주차장까지는 같이 가주기로 했다.


이십 년 넘게 주말은 꼭 쉬면서 일하는 나와, 이십 년 넘게 너무나 성실하게 주말까지 일하는 아내는 결국 공동의 취미를 찾지 못한 채, 서로의 취미를 존중해 주는 사이로 발전했다. 학창 시절에 한 달의 겨울방학 기간에 집 밖에 나가지 않아 본 적 있는 아내와, 하루만 집안에 갇혀있어도 집과의 분리불안 역증세를 보이는 내가 신기하게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일요일 오후의 따듯한 공기가 도서관 바깥의 너른 잔디밭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 뛰어노는 아이들과, 바깥의 햇볕을 한껏 쬐면서 독서에 빠져있는 어르신과, 유모차를 끌고 도서관을 찾아온 젊은 부부까지. 선량한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냥 나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 목적이 그게 아니니 걸음을 옮겨보자 하고 천천히 도서관 바깥으로 나왔다.


도서관 바깥은 나른한 공기가 조금씩 옅어지고 조금 더 도회적이지만, 알길 없이 들뜨는 분위기가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외국 사람도 많았는데, 게 중에는 한복을 입고 상기된 얼굴로 발걸음을 옮기는 분들도 많았다. 바로 전 날 토요일에 BTS의 광화문 콘서트가 있었는데, 그 영향 때문인 것 같기도 했지만 유독 외국분들이 많기는 했다.


정독도서관에서 서울공예박물관 까지는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다. 가는 길에 아기자기한 공예샵이나 카페 같은 것도 많아서 가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조금 과장을 덧붙이면 교토 청수사 가는 거리를 걷는 느낌? 한복 차림의 관광객이 많아서 그렇게 느껴진 것도 있는 것 같다. 서울공예박물관에 거의 다다를 즈음 거리의 악사가 색소폰으로 우리나라 발라드 가요를 감미롭게 연주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외국인들 귀에도 감미롭게 들리겠지? 괜한 마음을 느끼며 박물관에 입장했다.


내부는 금속공예 특별전의 마지막날이라 사람이 무척 많았다. 처음 와 본 거라 평상시보다 많은 인파인지 아닌지 가늠이 되지는 않았지만, 어찌 보면 굉장히 불쾌할 수도 있었는데 관람객들이 나름 질서 정연하게 관람을 잘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잼민이들도 많았는데, 뛰어다니거나 핸드폰을 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숙제 때문에 온 것인지 작은 메모지에 연신 무언가를 적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영화관의 그녀석들이 떠올라 맘속으로 풋 하고 웃음이 났다.


드레스로 펼쳐지는 금속의 조형미도 볼만하고 좋았지만, 나는 상설전에 소박하게 전시되어 있는 조선시대의 복식이나 가구들에 훨씬 마음이 갔다. 그때도 나 같은 공돌이 엔지니어나 길거리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가구를 만들고 옷장식을 만들었을 거다.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지만, 전날보다 조금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던 사람들이 전시된 작품들 속에서 느껴졌다.


혼자만의 관람이었기 때문에 길게 길게 관람을 하지는 않고 다시 천천히 덕성여고 옆길로 돌아서 정독도서관으로 돌아왔다. 정독 도서관 돌아가는 길에 있는 서울교육박물관까지 야무지게 감상했다. 아이들을 위한 레고블록까지 준비되어 있는 역시나 작고 소박한 공간이었는데, 외국사람들로 보이는 동양계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뱃지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즐겁게 얘기 나누는 모습이 신기했다. 한자문화권이 가지는 익숙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목적했던 일과가 다 끝났기 때문에 다시 천천히 차를 빼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한강의 남쪽에 살고 있지만, 옛 서울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한강의 북쪽은 정말 다채로운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남대교를 넘어 익숙한 올림픽대교의 정체를 느끼며, 아 혼자만의 여행이 오늘도 끝났구나, 일요일 오후의 반짝이는 시간이 지나갔구나 느꼈다. 그만큼 행복했으면 됐지. 마음을 다잡으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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