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제 제목하고 내용하고 같은 글이 써진다
중독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쓰면서 뭐 하나 더 있는데... 라고 찜찜했는데, 방금 생각났다. '러너스 하이' 류의 중독, 인간이 극한의 고통에서 고통을 잊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신경전달 체계였다. 지금까지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봤던 엔돌핀이라는 물질만이 러너스 하이 일 때 나오는 천연신경물질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엔돌핀은 통증억제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이유인 엔도카나비노이드 이론도 나오고 있단다.
우리가 의학논문 쓸 건 아니라서 신경전달물질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고, 중독 중에 잘 다루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중독이 있다는 사실을 좀 더 깊게 파보면 좋을 것 같다. 러닝 할 때 나오는 기분 좋은 느낌도 일종의 몸이 중독 물질에 반응하고 길들여지는 상태인데, 다행히도 이 중독은 잘만 다루면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중독이다.
갖고 있던 체력으로 농구하던 나이도 지나버린 몇 년 전에, 동호회 농구에서 젊은 친구에게 수비하러 돌아오지 않는다고 저 아재랑은 농구 못하겠다고 면박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정말 숨이 턱끝까지 차서 힘들어서 수비라인으로 못 돌아온 건데,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 녀석은 시합하다 말고 씩씩대면서 시합을 중지시키고 코트 밖으로 나가더니 짐을 싸들고 체육관 밖으로 나가버렸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박살난 분위기에 시합이 흐지부지 종료되어 버렸고, 나는 동호회에 나온 모든 분들에게 너무나도 참담하고 죄송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체력이 천년만년 영원하지 않은 거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에 다짐을 했다. 러닝을 시작하기로. 기안84가 나혼자 산다 예능을 통해서 러닝 붐을 일으키기 바로 전이었다.
딸냄에게 '런데이' 라는 앱을 추천받아 러닝을 시작했다. 정작 같이 러닝을 시작했던 딸냄은 한 달 뛰고 러닝을 접었는데, 런데이 앱이 부지런히 알람을 울려주는 바람에 나는 8주 30분 달리기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었다. 1분 달리고 2분 쉬고, 2분 달리고 1분 쉬고... 뭐 이렇게 느슨하게 하다가 7주 차 때 15분 쉬고 3분 쉬고 15분 뛰는 걸 시키더니 8주 차 때는 30분을 안 쉬고 달리게 시킨다.
처음에는 어떻게 인간이 30분을 안 쉬고 달릴 수 있나 걱정했는데, 신기하게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게 되었다. 그 성취감이 어마어마했다. 그 뒤로 달리기에 푹 빠져서 한강 다리도 건너보고, 10킬로 이상도 달려보고 했었다. 그리고 러너스 하이를 딱 한번 15킬로 이상 달리던 어느 날 제대로 마주하고 말었다.
내가 제대로 다른 분들의 러너스 하이를 조사해 보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기존에 느꼈던 러닝의 기분 좋음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몸이 힘들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구간 즈음이었는데, 난데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냥 막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고 세상 모든 것들에 감사가 절로 나오는 느낌?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이렇게 살아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나도 처음 느껴보는 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당황했는데, 서서히 그 감정이 가라앉으면서 다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실 애초에 제대로 코칭받지 않고 과체중 상태로 달리기를 시작한 상태라 몸에 무리가 많이 가고 있었고, 몸이 마지막 경고를 내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러너스하이를 겪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무릎과 종아리에 견딜 수 없는 급성 통증이 와서 몇 달을 달리기를 쉴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중독의 부작용이긴 했다.
그 뒤로는 철저하게 달리면서 폼을 체크하고, 평생 할 너무 좋은 취미인데 속도에 연연할 필요 없다는 마인드셋으로 정말 천천히 뛰고 있다. 지금은 러닝 열풍으로 주변에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나는 두쫀쿠 마냥 열풍이 지나가건 말건 계속 뛸 거라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체육관에서 참기 힘든 면박을 줬던 그 젊은 친구에게 이렇게 좋은 취미를 갖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나만 이렇게 좋은 취미를 당할 수는 없으니까 체력약한 아재에게 면박도 계속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