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가훈입니다.
요즘 남자 화장실 가면 볼일 보는 와중에 윗선반에 폰을 놓고 쇼츠를 보는 친구들이 가끔 보인다. 그 모습 볼 때마다 또 한 번 느낀다. 절대 쇼츠나 릴스는 보면 안 된다. 내가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지론이기도 하다. 쇼츠를 보면 뇌가 녹는다. 그러다 무심코 내가 쇼츠를 보고 있으면 '아빠 뇌 녹는다!' 이러면서 장난치는 분위기라서 우리 집은 쇼츠에서 안전하다.
한때 인간의 모든 중독에 심취해서 열심히 분석하고 파본 적이 있다. 나 자신이 중독에 취약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뭔가 중독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인생에서 플러스가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중독의 원리는 보통 두 가지인데, 마약처럼 뇌의 보상체계에 직접 작용해서 체계를 망가뜨리는 방법과, 도박처럼 사고회로의 백도어를 건드리는 방법이다.
마약은 잘 알려진 대로 도파민을 닮은 오피오이드 수용체가 뇌막을 통과해서 뇌의 신경중추를 건드리는 원리이다. 그렇게 되면 보통 도파민 수용의 역치가 높아져서 몸이 더 많은 도파민을 원하게 된다. 마약의 무서움을 쉽게 설명하는 글 중에, 평생 천천히 느껴야 행복을 순간적으로 모두 끌어서 경험시킨다 라는 표현이 있다. 힘들게 마약을 끊어도, 나머지 인생이 너무 불행해지는 것이다. 위장수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단 한번 마약을 했던 형사님이 지금까지 끊지 못해 힘들어하는 영상도 충격적이었다. 절대절대 하면 안 된다고 느꼈다.
도박 중독도 도파민 수용의 역치가 높아지는 기전은 비슷한데, 뇌가 극적으로 나에게 행운이 온 순간을 각인하여 천연 도파민을 뿜어내게 하는 차이가 있다. 원시시대의 인류가 포식자의 위협을 극적으로 피하는 운 좋았던 순간에 그 행동패턴을 각인시키기 위해 그렇게 뇌가 진화한 건데, 포식자는 샥 없애고 운 좋은 상황만 느끼도록 만들어놓은 곳이 카지노 도박장이다.
그래서 마약은 누구든 중독되지만, 도박은 진화가 된 상태(?)에 따라 쉽게 중독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것도 재밌는 지점이긴 하다. 보통 승부를 즐기고 위험을 감수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사람들이 도박중독에도 잘 걸린다. 그래서 기업 CEO나 운동선수, 연예인들이 도박에 빠지기 쉬운 거다. 하지만 포식자를 피해야 하는 근본적인 편도체 알람과 도파민 보상체계는 모든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에, 자주 노출되면 결국은 중독이 된다. 그리고 쇼츠가 그 원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쇼츠중독은 도박과 비슷하다. 짧은 영상을 보다가 굉장히 재밌는 영상을 보게 되면 와 재밌다, 보다 보니 운 좋게 재밌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 운이 계속되려나? 하고 계속해서 영상을 넘겨보게 된다. 그리고 뇌가 보상을 받거나 극한의 피로를 느낄 때까지 무한히 영상 넘기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서서히 도파민 역치가 높아져서 뇌는 계속 쇼츠를 보라고 명령한다. 게임중독도 비슷하다. 극강 아이템을 찾는 행운의 순간을 위해 끊임 없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아이템을 얻는데 확률시스템을 도입한 중독을 제대로 이해해버린 기가막힌 게임회사도 있고 말이다.
왜 이렇게 길게 길게 중독을 설명했냐면, 어제 기대하고 기대했던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를 보고 와서 너무 화가 났기 때문이다. 딸냄이 남친이랑 데이트 간다고 상콤하게 나를 제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시간 대에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의 작은 화면 상영관을 잡아서 설레는 맘으로 영화관을 갔는데, 오른쪽에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있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잼민이 둘이 앉아있었다.
약간 쎄 했는데 역시나 영화가 2시간 반짜리이고 중력과 에너지 등 정말 기초적인 과학적 이해가 필요한 영화이다 보니까 애들이 집중 못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핸드폰을 꺼내서 뭔가 하기 시작했다. 이 경외감 가득한 영상을 좀 더 기다려서 큰 화면 상영관에서 감상할 걸 하는 후회를 하던 와중에 오른쪽에서 핸드폰 화면이 번쩍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옆에서 계속 뭐라 뭐라 떠들길래, 좀 조용히 해줄래요? 라고 낮고 강하게 얘기했는데 어 아재 뭐래? 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핸드폰 화면에 빠져드는데, 얼핏 둘이 영어나 중국어를 쓰는 거 같긴 했다. 정말 뭔 소린지 몰라서 뭐래? 라는 표정이었던 걸 수도 있지만, 영어나 중국어로 말해도 말을 들을 애들로 보이지는 않아서 더 이상 얘기 못하고 억지로 영화를 감상했다.
핸드폰 중독 아이들 덕분에 영화는 감동적이었는데, 그 감동을 100% 누리지는 못했다. 아니 그럴 거면 그냥 중간에 나가던지. 거기에 더해 핸드폰 통화를 하고 오는 건지 중간에 영화관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고 아주 힘들었다. 이게 다 쇼츠가 뇌를 녹여서 그런 거다. 끝나고 애들에게 단단히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잼민이들은 영화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쟤네들의 녹지 않은 싱싱한 무릎은 부럽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