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마워요. 딸이 같이 봐줘요.
방금 김창옥쇼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추천된 유튜브 영상 보다가 엄청난 표현을 알게 되었다.
'학습된 무기력'
브런치에서 우연히 읽은 나르시스트 엄마 때문에 삶이 파괴되었던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34년'으로 검색하면 나오시는 분인데, 본인의 아픈 경험, 그리고 그에 대한 처절한 극복을 훌륭한 글로 남겨주셔서 감사했다.
사실 김창옥쇼 남자 방청객 질문에 대한 답변 주제는 결혼에 대한 평범한 연애상담이었다. 뭔가 수동적인 남자의 태도에 엄청 답답해하다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하면서 비유를 들면서 나온 얘기였다. 보통의 남자들은 맘에 드는 여자를 만났을 때 (당연하지만) 두 가지 태도를 보이는데 거절당해도 좋으니까 하고 무모하게 말을 걸어보거나, '당연히 저런 예쁜 여자는 남자친구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지레 포기해 버린단다.
학습된 무기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후자의 케이스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혹시 질문자가 그렇지 않은 거 걱정되어서 물어보는 거였다. 보통 학습된 무기력은 안 좋은 가정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가 이혼을 한다거나 안 좋은 경제문제로 온 가족이 힘들다거나 해서 힘든 가정환경에 오래 노출된 사람에게 자주 보인다고 했다.
이런 태도에 길들여지면 삶이라는 녀석에게 도전을 하지 못한단다. 너무나 마음 아픈 얘기였다. 그래서 연애도 사자의 심장, 김창옥의 표현을 빌면 '사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설명도 너무나도 탁월했다. 젊어서 남자를 많이 만나 본 여자가 결혼해서도 잘 산다고. 본인이 많은 시행착오도 겪고 실수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자신의 남자에게도 관대하단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설명도 너무 좋은 통찰이었다. 보통의 여자는 남편이 실수하고, 아이가 실수하면 너는 어쩜 그렇게 똑같냐며 실수를 확대해석하고 원망하는데, 남자를 많이 만나 본 여자는 실수할 수도 있지, 그만큼 너의 경험의 영토가 늘어나는 거야. 멀리 갔다 와도 돼. 나는 여기서 너를 사랑하는 마음 변치않고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얘기한단다.
영상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는데, 그런 엄마는 애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이렇게 한마디 할 거란다. 엄마 담배 피우고 들어갈 거니까 기다리지 마. 그리고 담배 꼬나물고 먼산을 응시하며 남편과 아이에 대한 회한을 곱씹으며 담배 한 대 맛있게 태울거란다. 경험 많은 여자의 몸짓으로 담배 피우는 마임을 하는데 왜 이 아저씨가 대중 강연의 대가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내와 처음 사귀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연애에 대한 비교 대상이 없다. 다른 여자를 만나볼 걸 하는 후회를 감히 가질 수 없는 이유를 '나의 연애실패 연대기' 브런치북에 구구절절하게 남겼다. 안 좋은 가정사로 인한 학습된 무기력은 없었지만, 학습된 연애 실패로 인해 아내를 만나기 전 까지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기는 했다.
나중에 결혼해서 들었는데, 아내도 나를 만났던 그때 연애가 무척 해보고 싶었던 상태였고, 사실 영화 보는 것도, 밤새 통화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는데 그놈의(?) 결혼이라는 거 한번 해보려고 꾹 참고 나와 연애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 얘기를 전해 듣고 나는 유주얼 서스펙트 급의 충격을 받았었다. 그 시절 나 혼자 헤벌레 했던 거구나.
그래도 다행히 결혼을 할 수 있었고 이렇게 이십 년 넘게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 어느편이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는 편인 나는 지금 정부프로젝트의 과장님처럼 능력도 출중하고 성격도 좋고 외모도 나쁘지 않은데 지금 까지 결혼 못하고 있는 여자분들이 왜 결혼을 안 하는지 순수하게 궁금했었다.
사실 한 때 연애가 궁금하지 않았더라면, 아내도 결혼 안 하고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자아사랑 만렙의 성격이긴 하다. 그런데 내가 이런 분과 이십 년 살아봐서 그런 분들의 성격이나 특징을 정확하게 알고, 느낄 수 있는데 성격이나 특징이 그렇지 않은 결혼하지 않은 여자분들의 심리가 궁금했던 차에 정말 이건 복합적이고 (학습된 무기력 포함) 내가 함부로 결론 낼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내가 카톡 메신저로 비슷한 얘기를 꺼냈더니, 기자형이 동의하며 본인의 회사나 학교 동기 중에서 결혼 안 하고 있는 훌륭한 여자들이 많아서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형의 '근데 뭐 결혼한다고 행복하냐 하면 그건 다른 문제 이긴 하지만' 메신저 한마디에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고 후회할래 안 하고 후회할래라고 물어보면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싶다. 결혼은 마약, 도박 이런 건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