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벼리님 브런치를 열심히 탐독하며
현재까지 내게 있어서는 브런치가 새로운 오픈월드 게임세상 같다. 맨날 하던 게임만 하던 나인데, 작년 가을에 회사 후배가 빌려준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 닌텐도 스위치2 게임으로 오픈월드 게임을 처음 접했다. 후배가 게임칩을 빌려주면서, 스타일이 안 맞는 사람도 있으니 꾹 참고 일주일 해보고 다시 돌려주시던가 업그레이드 팩을 사세요 라고 했는데, 그게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아무 설명도 없이 자꾸 눈을 뜨라고 한다. (우리 웹소설 매니아 영업대표 후배는, 이 느끼하고 간드러지는 눈뜨세요~ 일본어에 더 이상 진행을 못하고 젤다를 접었다고 했다.) 그리고 홀딱 벗은 링크가 동굴 같은 데서 깨어난다. 녹색옷을 입은 쟤가 젤다야? 밈은 알고는 있었지만 젤다 아닌 링크가 노출증 환자인 줄은 몰랐다. 사람은 무조건 갇힌 데서 탈출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생각 없이 뭔가 동굴에서 기본도구를 챙기고 밖으로 나가서 길을 쭉 달리다 보면 와... 너르고 너른 하이랄 평원이 내 눈앞에 쫙 펼쳐지는데 입이 딱 벌어진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게임 초반에는 아무 설명도 조작법도 나와있지 않다. 링크는 그냥 천조각 좀 몸에 두른 채로 나뭇가지 하나 들고 하염없이 초원을 뛰어다녀야 한다. 후배가 말한 안 맞는 스타일이란 게 이거였다.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런데 내가 처음 젤다의 전설 게임하면서 느꼈던 막막함과 지금 브런치를 경험하며 느끼는 심정이 생각해 보니까 무척 비슷하다.
처음에는 젤다의 전설 처음 했을 때처럼 무작정 브런치에 글을 썼다. 이미 '나의 연애실패 연대기'로 열 편 이상 써놓은 글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전체 글을 발행했다. 사실 작가 신청의 목적은 브런치의 예쁜 편집화면으로 내 글을 아는 분들에게 공유하기였기 때문에, 소원을 이룬 셈이었다. 그런데 슬쩍 다른 사람들 글 보니까 무슨 책 같은 형식으로 글이 쏟아지는 방법이 있었다.
브런치북이라는 형식이 있다는 것도 그거 보고 알았다. 아 온라인 책을 내는 컨셉이네. 신기하다 하면서 얼렁 발행한 글들을 '나의 연애실패 연대기' 라는 브런치 북으로 묶어서 저장했다. 그리고 맘에 안 드는 목차가 영원히 박제가 되었다. 아차 싶었는데, 뭐 어쩌겠냐. 그리고 큰맘 먹고 십여만 원 주고 산 무접점 키보드의 보글보글한 키감을 마음껏 느끼면서 다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젤다의 전설 게임 초반에 그렇게 열심히 하이랄 평원을 뛰어다니다 보면 한가롭게 모닥불을 쬐고 있는 수수께끼의 노인을 만나게 된다. 드디어 가이드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할아버지가 대충 링크의 서사를 설명해 주고 다음 미션을 주는데, 엄청 중요한 인물임을 대놓고 느끼게 해 준다. 포스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최근에 드디어 브런치에서 수수께끼의 노인... 인지 어떤 분 일지 모르겠지만 위대한 가이드를 만났다. 온벼리 작가님이다.
'슬기로운 브런치 생활' 이라는 브런치북을 보라고 어디선가 계속 공지 비슷하게 있었던 거 같은데, 브런치 오픈월드를 만끽하느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브런치가 이런 곳이었구나. 조회수 괴물이 되기 싫다고 쓴 글이 있지만, 새로 올린 글에 좋아요를 받는 기쁨을 이미 알아버린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궁금증이 '어서 와 뉴비야. 브런치는 처음이지?' 라며 슬브생에서 어느 정도 설명되어 있었다.
슬브생을 보니 다행히 지금까지는 별 문제 없이 뉴비 스텝을 잘 밟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하나 딱 걸렸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작가명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처음에 글 올릴 때는 잘 모르고 귀찮아서 작가명을 내 이름의 영문 이니셜 SJ로 지정했었다. 당장 가족회의에 돌입했다. 아빠가 나중에 위대한 작가(?)가 될지도 모르는데, 작가명을 뭐라고 바꿔야 할까? 짧은 회의 끝에 우리 가족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짓기로 했다. 그렇게 나온 작가명이 '원현민준'이다.
어떻게 보면 흘러간 옛 아이돌 이름 같기도 한데, 신기하게 우리 가족 한 글자에 모두 'ㄴ'이 들어가서 읽는 느낌이 리듬감 있고 좋다. 아내와 나의 이름 한 글자 사이에 아이들 이름 한 글자씩 들어가 있는 것도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품고 있는 느낌이라 좋다. 원래 호수의 연꽃 혹은 넓은 인연 이런 식으로 해서 호련 아니면 호연 이런 거로 하려고 했는데, 그거보다 훨씬 좋은 느낌이다.
자 이제 아이템을 장착했으니, 주말에 느긋하게 브런치 평원을 달려봐야겠다. 좋아요 눌러주시는 작가분들이 많아지다 보니 일단 한 두 개 글 읽어보고 아 이건 읽어봐야겠다 라고 브런치북에 체크한 책들이 벌써 수십 권이다. 젤다는 일주일도 못 참고 스위치2 확장팩을 산 뒤에 몇 달간 100시간 넘는 게임시간을 찍으며 완전 빠져서 게임을 했었다. 브런치도 그렇게 되려나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은 작가님들 글 덕분에 행복한 주말이 될 것은 확실하다.
슬브생 가이드 대로 내 글에 꾸준히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올려주시는 글에서 삘이 통하는 작가 분들에게 팔로우를 신청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직전에 올린 글의 조회수가 폭발했다. 브런치 고인물 온벼리님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저도 이제 헬스장 고인물의 도움을 받아 브런치 PT장 헬창이 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