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진짜 나는 내가 하는 일 좋아해요
평온한 주말을 보냈다. 밀렸던 브런치 글도 읽었고, 생일 축하로 누나들과 모이는 전체 가족모임도 즐겁게 끝났다. 뭔가 일상에서 쓸 글이 없으면 출장이야기나 써야지 하고 있는데, 일요일 저녁에 우연히 보게 된 웹툰이 또 너무나 재미져서 소개를 안 할 수가 없다. '오늘도 퇴근'이라는 제목의 네이버 웹툰인데, 내용을 읽어보면 '오늘도 칼퇴근'이 더 맞는 제목 같다. 회사에서 늘 꿈꾸는, 일 확실하게 하고 정각에 퇴근하는 팀장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댓글의 감상평들이 이 웹툰을 제대로 설명했다.
'웬만한 판타지보더 더 판타지스러운, 현실에서는 없을 팀장 이야기'
'칼퇴를 권장하면서 능력까지 있는 팀장이라니'
회귀물과 먼치킨주인공 물이 범람하는 요즘 웹툰 시장에서는 이런 정공법 스토리가 오히려 흡인력을 가지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얘기하면 스포가 되기도 하고, 나도 아직 많이 본건 아니라서 모티브만 따서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 주인공은 ESG분야 팀장이다. ESG분야가 보안, 안전 이런 느낌이라 일이 지저분하게 늘어지지 않고 컨설팅 레벨에서 끝나기 때문에 능력 있는 팀장 혼자서 일하기 딱 적당한 분야이다.
임원급이 아무리 급해서 전화를 해도 절대 저녁 6시 퇴근시간 이후에는 전화를 안 받는 주인공은 (물론 보고서가 완벽하기 때문에 전화 안 받아도 별 문제없다.) 서울 전망이 끝내주는 자신의 옥탑방에서 셰프급으로 정성스레 저녁을 차려서 소주 한잔 곁들여 마시며 하루를 정리한다. 이때는 또 웹툰이 맛깔나게 요리 소개하는 만화로 변신한다.
그렇게 평온하게 일상을 사는 주인공만 서술하면 스토리가 진행되지는 않으니 밑에 그룹에서 버림받은 후계자 언냐도 붙고, 모든 일에 시니컬한 대리와 실수투성이인 주임도 들어오는데 주인공 입장에서는 아직 칼퇴근하기에는 문제없는 여유 있는 버퍼로 세팅된다. 그래서 판타지이다. 뭔 일이 생겨도 주인공의 소중한 칼퇴근을 방해할 수는 없다.
나는 지독한 아침형 인간이다. 저녁 6시가 넘어가면 뇌가 정지하는 느낌이라서 저녁시간에는 회사에 앉아있어도 전혀 효율이 나지 않는다. 오랜 회사생활을 하면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이거 해결해 보려고 야근을 해봐도 별로 좋았던 적은 없었다. 미련 접고 깔끔하게 퇴근해서 회사일은 잊고 집에서 잠을 푹 잔 뒤에,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웹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너무 급한 회사상사나 동료들이 주인공의 옥탑방을 직접 찾아온다. 어찌 보면 무례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같이 저녁이나 먹죠 하면서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해서 당황한 회사 사람들을 자신의 옥탑방으로 불러들여서 여유 있게 있는 재료로 한 상을 더 요리하고 차린다. 그리고 소주 한잔씩 하면서 일얘기는 못 꺼내게 하고 말없이 저녁을 먹는다.
그다음 장면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요리가 너무 맛있고 술이 달아서 당장의 일을 잊게 만든다. 그 앞에는 언제나 여유로운 주인공 팀장이 빙글빙글 웃으며 앉아있다. 극 중에 굉장히 야비하고 다른 사람을 짓밟으며 올라온 것으로 설정되어 있던 본부장인데 이렇게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으면, 그냥 그 사람도 너무 사연이 많았던 우리네 중년 아저씨로 비춰질 뿐이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직 완전 웹툰 초반이라 ㅎㅎ)
회사일은 회사일이고, 우리의 삶은 우리의 삶이다. 이 둘이 섞여버리면 일에 마음이 다치게 된다. 특히 나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모든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사람은 정말 이 상황을 유의해야 한다. 주말 내내 근무하는 개발 리더와 일해본 적이 있는데, 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옆에서 보는 게 안쓰러운 정도였다. 프로젝트 코드를 리뷰해 봐도 주말에 진행된 성과의 효율이 너무 낮았다. 차라리 피엠에게 들이받고 일의 양을 줄였어야 했는데 그런 프로젝트일수록 피엠이 더 심한 워커홀릭이다. 너무 안타까웠다.
회사생활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 해외에서 시스템을 납품하며, 내가 납품한 시스템이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많은 편의를 제공해 준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IT업의 본질은 별반 다르지 않아서, 꼭 해외프로젝트 아니어도 기술로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는 이 일이 참 좋았다. 그렇다고 일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일이 잘 안 되는 날이면, 언젠간 해결되겠지 하고 낙관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일이 되는 방향으로 한걸음 한걸음 스텝을 옮겼다. 그거면 된다. 회사생활 하면서 마음을 다치면 안 된다.
어제도 괜히 웹툰 팀장에게 빙의해서 칼퇴근했다가 피엠님의 급한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한 일이 문제 생긴 건가 식겁 해서 확인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판타지는 판타지인데, 왜 괜히 주인공 흉내를 냈는지 메신저 보면서 콩닥콩닥했던 나 자신에 너무 웃음이 난다. 언제쯤 나는 완벽한 보고서를 쓰고 하루를 마감하고 당당하게 칼퇴근할 수 있을까.
자주 언급되는 PM은 프로젝트 매니저(Project Manager)를 뜻하는데, 프로젝트의 수장이라고 보면 된다. 모든 권한이 있지만 그에 따른 프로젝트 성패의 책임도 모두 피엠이 지게 된다. 고객과 가장 많은 소통을 하고, 프로젝트 진행 조율을 한다. 다른 분야에서는 피엠이 프로덕트 매니저 (Product Manager)로 쓰이기도 한다. 포지션은 비슷한데, 결과물이 제품인 차이가 있다. 제조업 회사나 솔루션 회사에서는 저렇게 불린다. 더 위의 상무급 관리자는 CPM(Chief Project Manager) 혹은 GM(General Manage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