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좋은 책 내주어서 감사합니다.

by 원현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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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제에 어쩌자고 요즘 부쩍 마음이 여려진다. 특히 드라마 볼 때 여실히 느낀다. 이제는 드라마 보다가 일시정지가 가능해서 주인공의 아름다운 시간이 끝나고 행복 끝, 불행 시작~ 하는 신호가 감지되면 여지없이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버리고 다시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맴맴 속을 태운다. 그러다가 결국 끝까지 다 보지 못한 드라마가 한 트럭이다.


온벼리 작가님의 '다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책이 어젯밤에 도착했다. 역시 새벽형 인간인 나는, 일어나서 택배 도착 메시지를 보자마자 씐나서 현관문을 열고 택배봉투를 뜯으며 서둘러 책을 맞이했다. 그런데 목차를 읽어보다가 덜컥 겁이 났다. 여름으로 시작하는 목차는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에서 끝이 나는 구성이었다. 읽다가 가을에서 겨울이 되기도 전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를까 봐 겁이 났다.


대학교 때 절친했던 과친구가 어느 날 몇몇 맘에 맞는 친구들과 만났던 자리에서 힘겹게 운을 뗐었다. 너희한테 처음 얘기하는 건데, 첫째가 마음이 많이 아파. 나을 수가 없는 병이라서 그동안 내가 많이 힘들었다. 원래 굉장히 낙천적인 녀석이었는데, 사회에 나와서 부쩍 말 수가 없어졌길래 회사생활이 힘든가 보다 하고 있었다. 친구는 대학원 선후배 커플이었고, 마침 옆 방 연구실이라서 나는 그 친구 아내까지 아는 사이였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담담하게 그 친구가 말을 이었다. 우리 힘든 거도 힘든 건데 앞으로 우리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 남겨질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참 어렵다고. 대학시절 바보처럼 놀고, 감당 안되던 미팅의 흑역사도 공유하고, 내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맨날 얘기하던 녀석이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과목을 A를 놓치지 않던 미워할 수 없는 친구였다.


그러던 그 녀석이 갑자기 어른으로 보였다. 도대체 어떤 세월의 나뭇결을 쌓으면 뭔가 너무나 감당하기 힘들었을 경험을 저렇게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걸까. 감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일하는 곳이 나는 서울이고 그 친구는 대전이어서 자주 만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가끔 이어지는 만남에서 굳이 그 친구가 얘기를 꺼내면 힘내라고 술 한잔 같이 해줄 수밖에 없었다.


따끈하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책을 잠깐 바라보다가 숨 한번 쉬고 작은 두려움과, 큰 호기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역시나 빠르게 위기가 왔다.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의 응급실행에서 이미 나는 마음의 일시정지 버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서평을 쓰겠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다면 아마 바로 멈췄다가 며칠은 지나서 다시 시작했을 거다. 짧은 맘의 준비를 하고 계속 책을 읽었다.


어찌 불행은 이리 계속 오는지, 수많은 작가의 아픔을 같이 따라가면서 빨리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거실의 유리창에 새벽의 어스름이 오듯이 결국 봄이 왔다. 나 같은 여린 독자를 위해서 작가님이 감당할 만큼의 아픔, 그리고 고마움으로 조절을 잘해주신 느낌이었다. 오히려 그런 표현의 담담함이 어찌 보면 더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 딱 한 번 절규하는 모습을 서술해 주시는데 오히려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작가님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힌트가 있어서 헤아려보니 나와 같은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친구였다. 결혼한 시기도, 아이가 태어난 해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분에 대한 서술이 나에게는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부분은 책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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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례식장에서 남편이 품고 있었던 슬픔을 나는 뒤늦게서야 보게 되었다. 남편이 어머니가 아프실 때부터 슬퍼하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자신을 탓하며 사정없이 불살랐던 이유도, 매 순간이 가슴 아픈 이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보다 먼저 울었고, 오래 슬퍼하느라 눈물이 마른 것이다.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던 그 마지막 순간을 술로 버틴 것이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남편은 어머니를 떠올리며 힘들어하지만, 그 슬픔을 가슴 깊숙이 찔러 넣고 내보이지 않으려고 한다. 나이 50이 다 되어가서야 알았다. 남편과 나는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마저 다르다는 것을.


장영희 작가의 <내 생애 단 한 번>이라는 에세이의 '좋은 마음으로 좋은 말만 하며 살아도 아까운 세월인데, 우리는 타고난 재주로 이리저리 시간을 포개어 미워할 시간, 시기할 시간 불신할 시간, 아픔 줄 시간을 따로 마련하면서 신다."라는 구절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저려온다.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으며 허비하는 것은 아닐까.
이 글귀는 그때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지만, 동시에 시간 이 흘러 지금 우리가 붙들어야 할 삶의 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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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의 세월을 남편분과 아이들과 잘 버텨주어서 내가 다 작가님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이런 소중한 경험을 나누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마침 며칠 전에 대전에서 서울 출장을 온 과친구와 내가 프로젝트로 파견 나와 있는 정부 사이트 근처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술 한잔을 했다. 별 얘기 안 하는 모습에 안도했다. 술마시면서 내가 브런치 작가로 데뷔했다는 얘기를 처음 꺼냈다. 그리고 내 브런치 북 '화이트데이의 추억' 에서 사탕공장 돌리던 나머지 한 녀석이 혹시 너였나고 물어봤는데, 글을 핸드폰으로 다 읽더니 한참 웃으면서 자기 맞다고 했다.


그 녀석의 해맑고 순수했던 기억을 공유하게 해 주어서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친구의 인생의 여정에 부담없는 작은 쉼이 되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이지만 온벼리 작가님의 책을 선물해줘야 겠다. 나도 너처럼, 작가님처럼 다정한 어른이 되려고 노력중이라고 말해주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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