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작가들의 자막 센스가 웬만한 에세이보다 인상적이네
소이현과 인교진이 연예인 부부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돌싱포맨 예능에 나와서 본인들의 연애사 얘기해 주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최근에 유머 게시판에서 '승부욕 강한 태권소녀와 결혼한 썰'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4603095) 글을 재밌게 읽었는데, 이런 결혼의 현실버전 같은 느낌이랄까.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오빠 동생 사이였다고 했다.
브런치북 '첫 데이트의 추억' 때도 썼지만, 나는 남중 남고 같은 공학을 나와 공대를 들어온 데다가 어렸을 적 교회나 이런데도 안 다녀서 알고 지낸 여동생 같은 건 내 주위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2년 터울 친누나가 둘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누나들은 몇 명 있었는데, 나 때는 이런 연상연하 커플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시대를 조금 늦게 태어났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이 든다. 지금 의사하고 있는 그 큰누나 친구 누나를 좀 더... 아. 여보 사랑해요.
소이현, 인교진 부부는 서로가 연애를 하는 상황도 다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전남친 혹은 전여친과 헤어져서 힘들어할 때 서로 위로하고 그러던 동네 오빠동생 뭐 그런 포지션일까 싶은데, 이 둘이 사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두 사람이 마침 방영 중이던 일일드라마에서 연인 역할로 출연한 것이다. 드라마 종반의 키스신이 있었는데, 인교진이 영상 촬영 전에 연습(?)을 해야 한다고 대기실에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자기 딴에는 어떻게 촬영해야 소이현의 앵글이 더 예쁘게 나올까 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발뺌하는데, 남자라면 누구도 이 더없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을 거다. 촬영은 인교진의 영상을 위한 정성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쳤고 분위기도 무르익었지만, 드라마 종방 회식의 고깃집에서 술에 잔뜩 취한 인교진이 난데없이 타이밍 나쁘게 소이현에게 뜬금 고백을 해버리는 바람에 다 망쳐버리고 말았다. 열받은 소이현은 몇 달의 잠수를 타버리고 만다.
남자 입장에서는 다 이해가 되는 장면이다. 금방이라도 떠나버릴 거 같은 여동생을 붙잡아두기 위해 모든 사람 보는 앞에서 고백하고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겠지. 그런데 분위기나 무드가 중요한 여자들은 그런 장면이 최악이었을 거다. 몇 달의 잠수 뒤에, 결국 생각을 정리한 소이현이 그 문제의 고깃집에서 인교진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건가 살짝 기대에 차서 주춤주춤 하는 인교진에게, 오빠 우리 그냥 결혼하자라고 선언을 해버린다.
또 역시 남자 입장에서는 당황했을 인교진이 이해가 된다. 내가 남녀관계에 대해 '집샤'님 글에서 남자로서 어떤 통쾌함을 늘 느끼는데, 여기 이 장면은 여자로서 어떤 통쾌함을 느꼈을 것만 같다. 뭔가 욱한 남자 패널들이 '난 이 결혼 반댈세' 막 이러는데 '벌써 애가 있어', '아 애가 있어? 그럼 반대 취소해야지 뭐' 이런 농담을 치는데, 그게 정말 순수한 남자들의 반응 맞다.
유튜브 댓글도 재밌는데, "헤어진 몇 달 동안 인교진 아버지의 재산 파악 완료한 소이현"이라는 댓글도 너무 사회통찰 글 같아서 웃긴다. 촉촉한 내 갬성을 파괴한 부작용은 있지만 말이다. '문엘리스'님 연재글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결혼이라는 게 내가 부재한 무언가를 갖고 있는 이성에게 끌리고 그에 대한 막연한 채움욕구로 하게 되는 거라서 막상 보통 결혼하면 그 채움을 위한 '부재'가 평생 갖고 가야 할 '부채'로 작용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오래 만나 서로를 잘 아는 사이에서 하는 결혼이 그렇게 좋아보이나보다. 나도 2년을 연애하고 결혼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서로를 깊게 이해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오래 알고 지내고 만나서 결혼하는 연애는 다음 생에나 노려봐야겠다.
딸아이는 여중, 여고를 나와 미대를 갔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테크를 탈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대학 1학년 때 바로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둘째는 내가 그렇게 학원에서든 학교에서든 맘에 드는 여자애랑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하는데 엄마 닮아 연애는 관심이 없다. 참고로, 둘 다 아내의 농담반 진담반 니들은 결혼하지마 가스라이팅을 받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