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의 나라 말레이시아로 오세요
3개의 주제에 대해 고르게 쓰려는 게 나름 목표라서, 한동안 안 썼던 해외출장의 추억을 하나 꺼내려고 한다. 중국 프로젝트를 한참 하던 중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 커뮤터라인 수주 소식이 들려왔다. 새로운 나라를 가 보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라 나름 기대를 했었고, 역시나 내가 맡은 장비 중 하나가 납품에 들어갔기 때문에 출장 일정이 잡혔다.
설레는 맘으로 출장 준비를 했고 처음으로 말레이시아에 가보게 되었다. 중국에서도 그랬지만, 그 당시에는 현지의 대형 아파트를 빌리는 게 국룰이었다. 초반에 출장자들이 많이 가서 장비설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호텔비가 감당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말도 안 되는 출장 환경이었지만, 덕분에 부서 사람들이랑 많이 친해지는 계기도 되었다. 뭐랄까 대학 때도 경험해보지 못한 하숙집 선배형들과 같이 살며 친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지금도 생각나는 몽키아라 밸리의 고급 아파트단지가 우리 프로젝트 숙소였는데, 고급 봉고차인 도요타 알파드 렌터카까지 야무지게 준비하신 피엠님 덕분에 주말에는 그 차 타고 근교 놀러 가보기도 했었다. 자차 운전이 위험한 인도, 중국과는 달리 말레이시아는 도로환경도 좋고 운전이 편해서 나도 출장자가 나밖에 없었을 때는 직접 알파드를 운전해서 사이트까지 출퇴근했었다.
보통 장비는 우리가 개발을 하고, 관리자 화면 그러니까 고객들이 정산을 한다거나 시스템 관리를 한다거나 할 때 쓰이는 화면은 현지 업체가 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현지 언어가 더 많이 쓰여야 하는 부분이다 보니 우리가 개발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효율적이었다. 중국 같은 경우는 중국법인이 있어서 이 부분을 담당했는데, 말레이시아에서는 '호프텍(Hopetech)' 이라는 이름도 희망찬 현지 업체와 계약이 되어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나와 파트너가 된 호프텍 업체의 마크는 이름만 외국 이름이지, 중국인 이민 3세인가? 되는 친구였고 중국어, 광둥어, 영어, 말레이어를 모두 할 줄 아는 무척 똑똑한 개발자였다. 이 친구 덕분에 말레이시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싱가포르와 비슷하게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국가인데 말레이시아 본토인, 중국인, 인도인 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부분의 경제는 중국계가 돌리는 구조였다. 이 얘기는 주제가 달라져서 나중에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 한다.
어쨌거나 다행히 성격 좋고 개발 잘하는 친구와 파트너가 되어서 나도 출장이나 개발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좋았다. 마크는 대학 졸업하고 호프텍에 처음 입사해서 일을 시작한 상태였는데, 딱히 사수가 없어 보였다. 조금 이상한 느낌은 있었지만 말레이시아는 애들을 강하게 키우나 보다 하고 오히려 우리가 기술적으로 많이 가르쳐주고 해서 더 친해지고 그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음 개발 테스트 일정 때문에 출장을 와서 여느 날처럼 호프텍의 사이트오피스에 알파드를 대 놓고 출근을 했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거다. 나는 그런 광경은 드라마에서나 봤지 직접 맞닥뜨린 건 처음이었는데, 컴퓨터와 모니터가 가득해야 할 호프텍 사무실에 책상과 의자만 덩그러니 있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 바람에 서류종이만 날리는 드라마에서 보던 휑한 오피스 풍경에, 마크가 눈이 풀린 채로 혼자 의자에 앉아있었다.
호프텍 사장이 집기를 챙겨 야반도주를 한 거였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나 싶어서 마크에게 물어보는데 얘는 이미 횡설수설 단계였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월급도 떼인 거 같았다. 나도 어이가 없는 긴급상황이라 피엠님께 바로 연락을 돌리고 했는데 며칠 대기하다가 일단 한국 복귀를 했나 그랬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야반도주의 과정이 신박했다.
관련 공무원에게 뇌물을 먹인 호프텍 사장은, 자신의 회사의 신용도를 확 높여서 국제 프로젝트 수주자격을 딴다. 국가인정 기업인 회사이니 우리 같은 회사가 그들과 협력업체 계약을 진행하고 무난히 수주를 한다. 그리고 착수금을 받는데 국제계약에서는 보통 15~20퍼센트 정도 된다. 그리고 일을 하는 척하다가, 이 착수금만 받고 날라버리는 거다. 보통 계약이 1~2백억 원 정도 하니까 맥스 40억을 받고 야반도주를 하면 그 돈은 고스란히 그 사장 몫이 되는 것이다. 호프텍에 갓 입사한 마크 같은 친구만 불쌍한 희생자가 된다.
우리도 지난한 법적 분쟁이 시작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오랜 법적 다툼 끝에 투입된 원가만큼 원청이 보상하는 걸로 결론이 나서 (국제 계약의 위대함이란...) 손해는 안 보고 프로젝트는 종료되었지만, 첫 사회생활로 기대에 찼던 성격 좋은 마크의 그 초점 잃은 눈동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호프텍 사장은 몇 년 뒤에 회사 이름을 바꿔 또 다른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했다.
피엠님도 고생을 많이 했다. 이미 납품한 역사 장비들에 있던 부품들도 하도 훔쳐가서 남아나는 게 없다는 소식을 들은 피엠님은,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현지의 사설 경비업체까지 고용했지만 나중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했다고 들었다. 쨍하고 맑은 하늘과 너른 대지와 끝없이 펼쳐져있는 야자수나무, 시원시원하게 뻗은 도로가 좋은 첫인상이었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는, 나에게는 그 뒤에 도사린 말도 안 되는 비합리와 모순으로 기억되는 나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