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월세집 이야기

집 없는 설움이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더라

by 민이준


결혼했을 당시가 막 새천년이 되었을 즈음이었고, 대학원을 졸업한 나와는 날리 아내가 직장생활을 먼저 했었기 때문에 모은 돈과 대출로 집을 빨리 살 수 있었다. 서울의 몇몇 구 아파트는 평당 5백만 원도 안 하던 시절이었다. 결혼 빨리한 덕으로 집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 안 하고 살던 우리 가족이었는데, 징하게 월세집 라이프를 경험한 순간이 바로 인도 장기파견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델리에서 내가 살 집을 열심히 보던 두 달여가 지나고, 왠지 우리나라 아파트와 구조가 비슷해 보이는 디펜스 콜로니의 5층 빌라집을 구하게 되었다. 왜 이름이 디펜스 콜로니 (Defense Colony)냐면, 은퇴한 군장성들이 많이 사는 동네여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설 경비원들이 동네 전체를 돌고, 특정시간이 지나면 게이트가 내려가는 안전한 동네였다. 물론 다 월세에서 나가는 구조이긴 했지만 말이다.


델리 시내개발 제한 지역이라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가 올라가지 못한다. 델리 근처에 위성도시인 노이다나 그루가온에는 고도제한 없이 높고 고급진 아파트가 많아서 그쪽에 집을 구하는 주재원이나 장기파견자도 있었는데 나는 왠지 델리 시내가 정감 있고 좋았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란 막내딸이었는데 군장성(?)이었을 아버지가 딸에게 살던 가정집을 물려주었고, 이 집을 헐어서 5층 빌라를 짓고 나머지는 월세를 주는 상황이었다.


주인집 아주머니와 남편분의 교양 있는 모습과, 막 지어져서 반짝거리는 빌라에 한눈에 반한 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역시 초보답게 그런 집은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우선 사람이 살아보지 않은 집은 내가 모든 하자를 감당해야 한다. 우리 집은 창문 이음새가 정확하지 않아 겨울에는 외풍이 들어오고, 여름에는 아무리 에어컨을 켜도 금방 시원해지지 않는 단점이 있었는데 고쳐달라고 하기도 애매한 수준이어서 2년 내내 힘들게 살았다.


도시가스 없고, 일반 전기 끊어지면 기름발전기 돌려서 전기 쓰는 거야 다른 지역도 비슷하니까 그러려니 하긴 했는데, 전철역 가까워서 애써 이 쪽에 집을 구했건만 정작 전철 타고 다닌 날은 손에 꼽았다는 게 아이러니이긴 하다. 한국에서 중요한 역세권 같은 건 인도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역시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참 많다.


주차문제도 심각했는데, 이거야 뭐 운전기사 아자씨가 고생했던 일이니까 그러려니 했고 (2년간 우리 집 운전기사였던 타브레즈 이야기도 한바닥인데 이건 나중에 쓰기로 하고) 사실 가장 힘든 건 주인집 아주머니네 부부와 한 달에 한번 있었던 티타임이었다. 주인집은 빌라에서 가장 좋은 2층에 살고, 1층은 주차장이고 우리집은 3층집이었다. 4, 5층에도 세입자가 있었는데 다 같이 볼 일은 더워죽는 지라 월세 젤 쌌을 5층 세입자네 자녀 결혼식 딱 한 번밖에 없었다. (인도 현지 결혼식 참석 스토리도 한바닥이네.)


기본 월세는 상당 부분 회사에서 보조해 주었기 때문에 사실 주인 볼 일이 없는데, 기름발전기 돌리는 가격이나 경비비 같은 건 특히 현금으로 줘야 하기 때문에 꼭 월세날 주인집으로 찾아오라고 하셨다. 대충 사는 우리집과는 달리 각종 고급스런 가구와 식기류에, 메이드도 되게 교양 있는 모습이 흡사 영국 귀족을 알현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모습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월세 내는 날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를 마시고, 간단한 스몰토크를 하고, 마지막 가기 전에 흰 봉투에 든 공과금을 전해드리는, 인도에서 한 달이 또 지나갔구나 느끼는 날이었다. 가구 많은 집 특유의 무거운 공기와, 인도에서 이 정도면 진짜 좋은 빌라에서 사는 거라고 분위기로 얘기하는 무언의 압박 속에 (덕분에 소소한 집의 불만을 많이 얘기하지 못했다.) 별일 없냐고 물어보지만, 애기들 난리나는 통에 집에 무슨 문제 일으킨 거 없는지 물어보는 의심의 시간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무사히 2년을 잘 지내고, 가족 먼저 돌아가고 나는 게스트하우스로 가기로 해서 월세계약을 종료한다고 말씀드리는 마지막 티타임 자리에서 주인집 부부의 반전이 일어나고 말았다. 나름 월세 산다고 애들한테 집에 낙서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고, 조심조심 살았기 때문에 별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주인집 부부가 자기네들이 보기에 집이 너무 더러우니, 청소비 조로 20만 원? 정도를 더 내고 나가라고 얘기한 거다.


집이 더럽다는 근거가 베란다에 쌓인 먼지였다. 인도 델리는 세계 최고의 미세먼지를 자랑하는 공기 안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우리는 2년 동안 베란다에 나간 적이 없어서 당연히 먼지가 수북이 쌓였는데, 이거 청소를 안 했으니 안쪽도 더러울(?) 것이라고 그런 요구를 한 것이었다. 2년간의 교양이 말 그대로 가식으로 느껴졌다. 화가 난 나는 그 돈 못 드리겠고 안쪽은 직접 들어와서 확인하시고, 베란다는 직접 청소하겠다고 얘기해 버렸다.


그동안 참고 산 세월이 2년인데, 난데없는 설움이 폭발했다. 분노의 청소로 베란다는 깨끗해졌지만 상처 난 내 마음은 청소가 되질 않았다. 월세 한 번 밀린 적 없고 월세 낼 때마다 항상 부부의 자랑을 열심히 들어주었는데 고작 돌아오는 게 이런 거라니... 살짝 들었던 주인집 부부의 정이 똑 떨어져 나간 건 차라리 잘된 일이었을까. 그래도 나름 억지로 델리 상류층(?)의 얘기를 들으면서, 얘네들이 왜 영국화 되고 싶어서 안달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는 했다. 집 없는 설움에 대한 간접 경험도 충분히 쌓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설움도 추억속에 다 사라져버렸다. 주말만 되면 우리집 3층 창문에 찾아오던 똑똑한 앵무새와, 벽 한쪽에서 가만히 우리를 쳐다보던 새끼손가락 만한 귀여운 도마뱀과, 집 한 채만큼 커다랗게 가지를 뻗고 축복같은 그늘을 만들어주던 창문옆 이름 모를 아름드리나무가 아직 가끔 생각난다. 말도많고 탈도 많았던 델리의 월세집은 지금도 잘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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