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le of Heaven: an Imperial Sacrificial Altar in Beijing (유네스코 문화유산 #881)
1368년 홍무제(주원장)가 남경을 중심으로 명나라를 세운 이후, 3대 황제였던영락제(주원장 넷째 아들)는 수도를 북경으로 옮겼다. 이후, 재위 18년(1420년)에 천지단(天地壇)을 지어 하늘과 땅에 제사를 올렸다.
11대 황제인 가정제는 도교에 매우 심취했는데,재위 9년(1530년)에 하늘과 땅에 각각 별도의 제사를 올리기로 정하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원구단(圓丘壇)을 지었다.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는 ‘천지단’이라는 이름 또한 이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으로 바뀌었다. 북경북쪽에 '지단' 을 별도로 만들었다.
천단공원 전체를 보면 네모진 땅 위에 지어져 있는데, 땅의 남쪽 두 모서리는 직각이며 북쪽 모서리는 둥글다. 이러한 땅의 모양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고대 중국인들의 신앙을 상징한다.
천단공원은 크게 남쪽 제단인 원구단과 곡물 신을 위한 북쪽 제단인 기년전으로 나누어진다.
[원구단]
원구단은 천단의 중심으로, 하늘을 의미하는 중앙의 원형이 땅을 의미하는 울타리로 둘러쳐진 사각형 안에 놓여 있는 모습이다.
청나라 건륭제 재위 14년(1749년)에는 원구를 확장하여청색 유리였던 기와를 흰 대리석으로 바꾸고, 3개의 둥근 단으로 구성하였다.
이 단들은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지고, 각 단들은 흰 대리석 난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개의 입구들이 울타리로 둘러쳐진 사각형 공간으로 이어진다.난간에 있는 360개의 기둥은 고대 중국에서 사용했던 음력 1년인 360일을 의미한다.
[단폐교]
원구단에서 단폐교(丹階橋)라 불리는 360m 길이의 벽돌로 된 길을 올라가면 기년전으로 연결된다.단폐교에는 중앙에 황제가 걷는 어도(御道)가 있고, 어도는 널찍한 흰색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이 다니는 길과 구분이 되어 있다.
[기년전]
기년전은 풍요로운 수확을 비는 제단이다. 건륭제 16년(1751년)기존 중앙 건물이었던 '대향전(大享殿)' 을 보수하여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기년전(祈年殿)’이라 칭하였다.
3층으로 된 청색 유리 기와지붕 건물이 원형 제단 위에 얹혀 있다. 황제는 이곳에서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황제의 왕관은 정중앙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는데, 이는 하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하늘과 땅의 중재자인 황제의 역할을 상징하는 것이다.
[황궁우]
원구의 북쪽에 있는 황궁우(皇穹宇)는 황제가 ‘금욕의 궁’으로 불리는 제궁에 들어가기 전에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다.
하늘, 바람, 구름, 해, 달 등 자연신의 위패와 역대 8대 황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인데,사당 앞에는 삼음석(三音石)이라는 3개의 돌이 있고,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담은 회음벽(回音壁)으로 두 가지 모두 소리가 반사되어 울리는 과학이 숨겨져 있다.
[칠성석]
천단공원 동문 쪽에서 기년전으로 가는 중간에 자리 잡은 이 돌들은 북두칠성을 본떠 만든 돌들이 있다.
명나라 영락제가 하늘에 제사를 드릴 곳을 찾고 있었는데, 그곳에 일곱 개의 돌이 떨어져서 이 주변에 천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칠성석이라 7개 여야 하지만, 실제로는 8개의 돌이 있는데, 이것은 청나라 건륭제가 천단을 확장할 때 청나라 황실의 고향인 동북지방을 생각하며 돌을 하나 더 만들었다고 한다.
천단은 1918년 일반 공원으로 개방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천단공원의 넓이는 273헥타르에 이를 정도로 매우 크다. 황하문명의 발전에서 중요 역할을 한 우주생성론을 단순하면서도 생생하게 보여 주면서도, 오늘날에는 북경 시민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는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