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사진이야기
굶주린 소녀가 고꾸라질 듯 앉아있다. 일어날 기력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 아이 뒤로는 독수리 한 마리가 노려보고 있다. 곧 다가올 사냥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진 한 장, 바로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독수리와 소녀>다. 거센 비난이 일었다. 다급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보다 카메라부터 들이댔다는 것이다. 포토저널리스트라는 직업 특성에 대한 옹호도 없지 않았지만 맹렬한 비난에 묻혀 버렸다.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는 석 달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뱅뱅클럽>은 그의 라디오 인터뷰로부터 시작한다. 사진의 윤리적 논란에 관한 것이었다. 좋은 사진이란 어떤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머뭇거리고, 곧바로 화면은 야만의 현장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동한다. 때는 인종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로 인해 흑백 대립이 한창이던 1990년대. 백인의 지원을 받는 줄루족과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ANC정당 간 내전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케빈 카터'를 비롯, '그렉 마리노비치', '켄 오스터브룩', '주앙 실바' 등 네 명의 사진가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한다.
총소리 '빵! Bang'에서 이름을 따온 '뱅뱅클럽'은 전장을 붙어 다니는 그들 네 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은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실제로 '켄 오스터브룩'은 내전 현장 취재 중 총에 맞아 숨졌다. 넷 중 가장 먼저 퓰리처상을 받은 '그렉 마리노비치' 역시 여러 번 총상을 입었다. 하지만 빗발치는 총알 속을 뛰어다닐 정도로 배짱 두둑한 이들에게 신체적 위협은 고난도 아니었다. 정작 그들을 괴롭혔던 것은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직업의식과 윤리의식, 두 가치가 상충하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포토저널리즘은 철저한 객관성이 요구된다. 자신들이 사건에 개입할 경우 공정성을 잃게 되고 그것은 결국 보도사진으로써의 가치를 잃게 된다. 누구보다 현장에 가깝게 있지만 그걸 바라보는 시각은 오히려 한참 물러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눈 앞에서 사람의 생사가 결정되거나 반인륜적인 처참한 주검 앞에 서야 할 때, 또는 즉각적인 구호활동이 절실한 상황을 앞에 두고, 단지 '저널리즘적 사명'을 위해 카메라를 우선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독수리와 소녀>를 찍었던 '케빈' 역시 그런 갈등으로 인해 늘 힘들어했다. 불에 타는 남자가 칼로 내려쳐지는 잔인한 현장을 바로 앞에서 담았던 '그렉'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순간, 사진으로써 전 세계에 이들의 폭력성을 알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이 비극적인 상황을 어떻게든 정지시켜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자신들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직업적 윤리적 딜레마는 끊임없이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사실fact 기록을 위한 제삼자적 시각을 유지하는 것만이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라 믿었는데, 정작 그 이유 앞에 그들은 괴로웠던 것이다.
영화에서 '그렉'이 여자 친구와 말다툼하는 대목에서 그런 갈등은 단적으로 드러난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통렬한 슬픔을 앞에 두고 죽은 아이를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노출 확보를 위해 '그렉'을 도와 등불을 이리저리 비추던 여자 친구는 결국 흐느낀다. 피사체가 진짜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을 거라며 그녀는 좌절한다. 그러자 '그렉'은 폭발한다. "내가 저 사람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어. 사진 찍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할까. 나에게 뭘 바라는 거야!"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렉' 역시 확신할 수 없음을. 그 또한 불분명한 경계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이런 갈등은 사진만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일어난다. 누구도 윤리의식이 일에 우선돼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 수 없지만, 때로는 우리가 절대적이라 믿는 가치들이 서로 모호하게 맞서는 상황들이 있는 것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자신이 속한 조직 논리와 충돌하는 경우 역시 우리는 종종 겪는다. 현실세계는 선과 악, 흑과 백 같은 단순 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며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또 무엇일까.
'뱅뱅클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꼭 그들의 직업적 열정만은 아닐 것이다. 예술이냐 윤리냐, 그 숱한 논쟁을 다시금 들추자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그 누구도 정답을 내려주지 않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는 무슨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지, 어떻게 대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묻고 있다. 우리, 아니 나만의 가치관과 철학에 관한 질문 말이다. 그런 면에서 결국 '뱅뱅클럽'과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선택의 고민을 했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 고민들을 이어가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하긴, 어쩌면 삶 자체가 전쟁터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