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영화 <캐롤>

영화 속 사진이야기

by SJ

이혼 소송 중인 상류층 여성 캐롤. 사진가의 꿈을 가진 젊은 여점원 테레즈.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남자들의 이기적인 사랑법에 지쳐가고 있다는 점. 그에 대한 공허함 때문이었을까. 둘은 마치 영화 속 대사처럼 ‘어디선가 갑자기 날아들듯’ 첫눈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불륜과 동성애, 허락되기 어려운 사랑. 하지만 아름답다. 그리고 우아하다. 1950년대 미국의 겨울은 차갑고 닫혀있던 시기. 매카시즘의 경직된 흑백논리가 횡행하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따뜻하다. 실크처럼 부드럽고, 반대를 향해 열려있다. 관습적 가치판단을 잠시 유보하고 세상의 모든 금기를 관조하라 속삭이는 듯하다.

여기에는 영화에 쓰인 사진적 기법도 한몫을 한다. 스크린 전반에 흐르는 물 빠진 색감, 또 다른 프레임으로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 희뿌연 유리창에 비친 모호한 형태, 선명하지 않은 구도, 불현듯 등장하는 빨강과 노랑의 강렬한 포인트. 이는 각각 아련함, 은밀함과 불완전성, 실재하지만 잡을 수 없는 몽환적 현실, 규정할 수 없음,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자극의 메타포들로 내게 해석된다.

실제 이 영화는 1950년대 활동했던 사진가 솔 라이터(Saul Leiter)의 작품들을 그 시각적 효과의 밑바탕으로 사용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그는 원래 화가. 주로 추상화를 그렸다.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갔지만 사진으로 전향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들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회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효과를 위해 일부러 유통기한이 지난 필름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구도 역시 당시에 비하면 무척 파격적이고 세련됐다. 특히 사진 속에 또 다른 프레임을 걸치거나 유리창에 반사된 이미지의 왜곡을 좋아했는데, 빗방울이나 습기에 비친 창 밖 풍경은 그가 즐겨 담았던 피사체 중 하나다.

솔 라이터는 그만의 색감과 구도로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그것은 모호하고 정답이 없는 우리 삶의 단면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토드 헤인즈 감독은 솔 라이터의 사진들을 단지 기술적으로만 차용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우리의 인생에서 분명한 게 뭐가 있냐고, 우리의 관계에서 정해진 게 뭐가 있냐고, 어차피 우리 삶 자체가 불완전하고 모호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 영화 예고편: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01962&mid=29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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