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추수편
가을에 큰물이 나서 여러 강물이 황하로 흘러들었습니다.
그 흐름이 너무나 커서 강가 양쪽이나 모래톱에서 보면 소와 말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황하의 신 하백이 흐뭇해하며 자기가 세상의
훌륭함을 독차지했다고 기뻐했습니다. 하백이 물결을 타고 동쪽으로
내려가다가 북해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동쪽을 보니 물의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돌려 북해의 신, 약(若)을 보고 한숨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옛말에 도에 대해 백 번을 들으면 저보다 나은이가 없는 줄 안다"고 한 말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군요.
[해석]
책, 장자는 총 33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장자가 직접 쓴 것으로 인정받는 내편 7편, 후대에 제자와 학자들이 추가한 것으로
보이는 외편과 잡편이 각각 15편, 11편이다.
이중 추수편은 외편의 열 번째에 실려있는 글이다.
글을 시작하는 문장의 첫 두 글자가 추수(秋水)이므로 추수편이라고 한다.
하백은 황하를 관장하는 신이다.
그런데 가을에 홍수가 나서 강물이 불어나 강의 영역이 더 커지자 자신이 관장하는
세계가 넓어지게 되어 마치 자신이 온 세상의 지배자가 된 듯 기뻤다.
기쁜 마음으로 황하를 따라 둥실 둥실 떠서 내려가니 바다에 이르렀다.
바다라는 것을 처음 본 하백은 바다의 신 약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옛 말에 사람이 도에 대해 백번 듣고는 마치 자신이 세상 진리를 깨달은 듯 착각하여
자기가 제일 잘 난줄 안다더니, 바다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겨우 강을 다스리면서
세상의 주인인양 착각한 내가 부끄럽다."
하백은 자신의 무지를 이제야 깨달았으므로, 참된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굿라이프》의 저자 최인철의 강연에서 추수편과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한정식 집에 메뉴가 두 가지 있었다. 1만5천원 정식과 2만원 정식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이 집에 와서 두 메뉴를 주문할 때 마음은 이렇다.
‘점심 한끼 먹는데 굳이 2만원이나 쓸 필요가 있겠나. 1만5천원 정식도 먹을 만하다. 다음에 손님이 오거나 하면 2만원 정식을 먹어야지’
여기서 1만5천원 정식은 점심 한끼 먹기에 괜찮은 음식으로 정의되고 2만원은 손님이 왔을 때나 먹는 특별한 음식으로 정의되었다. 그런데 만약 이 집에 3만원 정식이 메뉴로 추가된다면 어떻게 될까?
‘메뉴가 세 가지인데 3만원은 점심으로 먹기에 좀 비싸보이고 1만5천원은 왠지 먹을 게 없을 것 같고 2만정도가 딱 적당할 것 같다. 3만원은 다음에 손님오면 한 번 먹으러 와야 겠다’
여기서 3만원 정식은 장자 추수편의 바다의 신 약과 같은 존재다.
약이 있기 전에 하백은 세상의 우두머리였다. 그런데 바다의 신, 약이 등장하자 우물안의 개구리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3만원 정식이 존재하기 전에 1만5천원 정식은 먹을만한 것이었고 2만원 정식은 손님이 왔을 때나 먹는 괜찮은 음식었다.
그런데 3만원 정식이 출현하자 1만5천원 정식은 먹을 게 없는 음식이 되고 2만원은 그저 적당한 음식이 되고 말았다.
바다의 신, 약과 3만원 정식이 존재함으로 다른 존재들은 그들의 정체성이 새롭게 정의되었던 것이다.
최인철은 이러한 존재를 지존이라 말한다. 내가 존재함으로 타인의 존재를 새롭게 규정하는 존재.
꿈을 꾸려면 지존이 되는 꿈을 꾸자. 그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말고 대가가 되는 꿈을 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