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 보니 우리 엄마마음이 느껴져요-
“엄만 왜 저딴 동생을 낳았어요? 축구하는 동생이나 낳지 ”
퇴근하자마자 아들이 볼멘소리로 한말이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서로 1시간씩 인형놀이, 축구 이렇게 번갈아 같이 놀기로 했는데 축구할 때 인형 데리고 나가서 중간중간 옷 갈아입히느라 축구도 안하고 지 하고싶은 대로해서 짜증 나요”
나는 아들의 귀여운 푸념에 둘이 하루종일 어떻게 놀았는지가 그려져서 웃음이 났다.
나는 늘 언니에 치여 서럽게 자랐다고 생각했다.
앨범을 보면 더 확실하다.
언니가 입었던 옷을 내가 입고 있는 사진은 너무 자연스럽고 흔하다.
옛날에는 아들을 바라던 때라 외할머니는 딸 낳고 또 딸이 반갑지는 않았을 거다.
더구나 내가 나오면서 엄마는 거의 사경을 헤매셨다고 한다.
안 그래도 반갑지도 않은데 당신의 딸마저 위험에 빠트린 내가 이쁘지 않으셨겠지만
(엄마가 수유도 할 수 없는 상태라) 나를 그냥 보자기에 싸서 죽든지 말든지 그냥 놔두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엄마가 간신히 깨어나서 그제야 외할머니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뭘 먹어보겠다고 쌓여있던 이불보를 얼마나 빨았는지 이불보가 축축할 정도였다고 한다. 미음죽을 떠먹였더니 얼마나 살겠다는 의지가 강한지 외할머니는 눈물로 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늘 눕혀두어서 뒤꼭대기가 납작해졌다.
미용실에 가서 전인화머리 해달라고 했다가 비웃움만 잔뜩 산적이 있다.
“손님은 뒷면이 평평한 편이라 아무리 해도 그런 머리 안 나와요”
나는 엄마가 되면 절대 둘째에게 이런 설움이 없게 하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우리 아이들은 참 순둥순둥했다. 입덧도 없고 오히려 갑자기 밥을 잘 먹으면 엄마는 나의 임신을 의심할 정도였다. 첫째로 아들을 낳고 둘째가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남편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아들밑에 딸이라 옷도 늘 똑같이 새 옷을 사 입혔다. 그래서 나는 둘째도 첫째만큼 서러움 없이 잘 키웠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딸이 어느 날 사진첩을 보더니 "엄마 이거 나야?"
아뿔싸 첫째 때는 일주일 간격으로 성장 과정을 사진을 찍고 사진 밑에 멘트를 하나씩 남겨 두었었다. 그런데 앨범 속 둘째는 누워있다 갑자기 보행기에 앉았다 서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둘째로 절대 서운함이 없게 하겠다 결심했는데....
아들이 네 살 때 나는 딸을 낳았다. 아이가 갑자기 동생에게 쏠린 관심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실어증에 걸려 소아정신과를 다녔다.
선생님은 큰 아이를 안고 얼마나 사랑하는지 수시로 얘기해 주느라 조언해 주셨다.
나는 하는 수 없이 4살임에도 7살같이 덩치가 컸던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갓난 딸아이는 항상 눕혀놓을 수밖에 없었다. 큰아이가 아기 우는소리에 엄마 아가 안아주라는 손짓을 해야 하는 수 없다는 듯 안아주는 등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 간신히 예전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에구.... 결국 우리 딸에게도 예쁜 뒤통수를 만들어주지 못했고 지금 같은 핸드폰 시대가 아니어서 예쁜 사진도 많이 남기지 못했다.
이제야 엄마의 사정이 모두 이해된다.
그래서 둘째는 늘 서럽다. 하지만 첫째도 동생에게 사랑을 뺏기고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 버겁다는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