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제비 던지기
어느 봄날이었다. 친구들과 집으로 하교하는 길에는 모를 심기 위해서 잘 삶아 물까지 가둬놓은 논이 있었다. 일렁이는 물결 속에는 파란 하늘이 손짓했다. 걷기에 지루한 우리는 수제비 던지기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한마을에 사는 선머슴 같은 친구가 납작한 돌멩이를 집어서 던지니까 수제비가 하나, 둘, 셋, 넷 통통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뒤이어 다른 친구들도 하나씩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누가 더 많은 숫자의 수제비를 던질지 헤아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쩌다 숫자가 하나씩 늘어갈 때면 우리는 환호성을 질러댔다. 퐁당퐁당 돌멩이는 몇 번인가를 뛰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는 했다.
네 명이 정신없이 돌멩이를 던져대는데 저쪽 마을에서 웬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고 있었다. 우린 직감적으로 논 주인인 것을 알아챘다. 멀리서 봐도 아주머니는 화가 엄청난 것 같았고, 덩치는 황소만 하게 컸다. 큰일 났구나 싶었다. 황급히 책가방을 들고 자리를 떴다. 바로 앞이 산모퉁이라 이젠 그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생각 끝에 잔꾀를 부린 것이 옷을 바꿔 입자는 제안이었다. 참 어리석기 짝이 없었지만 옷만 바꿔 입으면 아주머니가 우리를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속내였다. 나와 내 친구는 급히 옷을 벗어서 바꿔 입었다. 친구는 어느 친척 집에서 가져다줬는지 빨간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 금실까지 섞인 재킷을 입고 있었다. 학생이 입기에는 지나치게 반짝거리고 눈에 띄었다. 아마 도회지의 어느 부잣집 아들이 발표회에 입었던 옷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논에 돌 던진 것이 우리가 아니라고 우기기로 의견을 모았다. 옷까지 바꿔 입었는데 아주머니가 알아볼 리가 없다고 확신까지 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산모퉁이를 돌고 있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딴전을 피웠다. 그게 아주머니의 화를 돋웠나 보았다. 황소 한 마리와 싸워도 이길 것처럼 큰 덩치의 아주머니는 우리를 쥐 잡듯 나무라셨다. 다음부터 안 그러겠다, 잘못했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옷까지 바꿔 입고 시치미 뗀다고 모르겠냐며 펄쩍 뛰셨다. 학교에 알려 퇴학당하도록 하겠다며 우리를 윽박질렀다. 우린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만 밑으로 처박았다. 순간적으로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정말 퇴학을 당하면 끝장이라는 낭패감이 들었다.
아주머니는 주눅 들어 아무 말도 못 하는 우리에게 다음에 또 그럴 거냐고 다그쳤다. 우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죄송하다고 겨우 말했다. 한참을 그렇게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었나 보다. 그만하면 알아들었거니 여긴 아주머니가 자신도 우리 같은 자식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거짓말만 안 했어도 화가 덜 났을 텐데 학생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번에는 봐주겠다고 하는 말에 우린 기가 죽은 채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의 발걸음을 서둘렀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모두 아무런 말이 없었다. ‘퇴학’이라는 한 마디에 모두 얼어붙은 것이다. 아주머니가 우리를 그냥 보내주긴 했지만 혹시 마음이 바뀌어 내일이라도 학교에 알리는 날이면 우린 죽은 목숨이었다. 동네 어귀에 이르러 다들 한마디씩 했다. “우리 괜찮겠지.” 그러다가 나와 옷을 갈아입은 친구와 눈이 마주쳤고, 우린 배꼽이 빠지도록 웃어댔다. 서로 상대가 옷을 갈아입자고 제안했다고 손짓하며 깔깔거렸다. 한참을 웃고 나자 본래의 우리로 돌아왔다.
다음날부터 그 논을 지나칠 때면 우리는 유독 발걸음을 빨리했다. 혹시라도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다가 또 우리를 혼낼까 해서였다. 나중에 아주머니를 마주친 우리는 공손히 인사를 드렸고, 아주머니는 큰 몸집만큼이나 후덕한 웃음으로 우리를 바라봐줬다.
나는 친구들과 여전히 자주 어울렸지만 남의 논에서는 절대로 수제비 던지기를 하지 않았다. 냇가나 저수지에서만 그 놀이를 했다. 누가 더 많이 던지나 내기는 계속되었고, 순위는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통통통통 뛰어오르는 돌멩이에 우리의 천진함과 알 수 없는 설렘까지 함께 띄웠다.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는 상큼한 소녀의 얼굴이었다. 돌멩이 하나에 우리의 꿈을 실었다. 우리만큼이나 조그만 수제비는 우리가 팔매질함에 따라 몇 번인가를 뛰어오르다가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물결도 수제비 따라 잠시 춤을 추었다. 소녀들의 재잘거림도 물결 너머로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