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골방

상상의 원시림

by 글마루

골방은 은밀하다. 큰방 뒤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방. 뭔가 수많은 비밀을 내포하고 있을 것만 같은 공간. 그러면서도 엄청난 비밀을 시치미 뚝 떼고 지켜줄 것만 같은 방이 바로 깊숙하고 어두침침한 골방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의 골방에서 꼭꼭 숨기고 싶은 사연 하나쯤 있지 않을까. 엄청난 비밀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그런 사연 하나면 충분하다. 미궁처럼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나의 골방으로 한 발짝 걸음을 옮겨본다.



초등 5학년 무렵 우리 가족은 기와집으로 이사 갔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막살이 초가집에서 번듯한 기와집은 대궐처럼 웅장하고 넓게 다가왔다. 안방, 건넌방, 골방까지 자그마치 방이 세 개나 되었다. 아래채에는 광, 뒤주까지 있었다. 나는 노비가 면천된 것도 모자라서 벼슬자리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을 만큼 기뻤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가정실태 조사할 때 전기 들어오지 않는 집에 끼이지 않아서 좋았다. 그날은 호롱불만 밝히다가 환한 전등불이 들어오는 것이 마냥 신기해 잠도 오지 않았다. 온 식구가 안방에 모여 대낮처럼 밝은 신세계에 온 것이 들떠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우리 세 자매는 넓은 집 구석구석을 살피며 다니기 바빴다. 당시는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이기도 했고, 재래식이지만 부엌도 넓었고 아궁이도 세 개에 커다란 가마솥까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흙으로 된 부뚜막에 찬장조차 갖추지 못하고 살던 서글프고 옹색한 살림에서 전 주인이 쓰던 찬장까지 있으니 갑자기 부자가 된 듯 들떴다. 게다가 상수도까지 설치돼 수도꼭지만 돌리면 시원한 물이 시도 때도 없이 콸콸 흐르니 집안 분위기가 한동안은 잔칫집같이 흥성거렸다.


온 식구가 손바닥만 한 집에서 복닥대다가 우리 세 자매만의 방이 생기니 마냥 신났다. 거기다 부모님은 앉은뱅이책상에 책꽂이까지 얻어다 놓았다. 엎드려서 하던 숙제도 책상이 생기니 공부가 절로 될 것 같았다. 우리가 기거하는 방 앞 마루에는 난간까지 있어서 제법 운치가 있었다. 나무를 깎아 짜 맞춤해 사극에나 나올 법한 난간은 우리의 신분을 상승시켜주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안방 옆에는 골방으로 통하는 쪽문이 하나 있었다. 어른들은 고개를 많이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작았다. 안방 건넌방과 달리 그 방은 사면이 신문지와 잡지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천장은 흙과 서까래가 알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였다. 서까래에는 시커먼 전기선이 연결되었고 알전구가 추처럼 대롱거렸다. 알전구는 호롱불보다 밝았지만 완전한 밝음은 아니었다. 후미진 골방에 어울리는 희붐한 밝음이었다. 정교한 무늬로 깔끔하게 도배된 다른 방과 달리 어둡고 좁은 공간. 벽도 매끈한 게 아니라 울퉁불퉁한 흙으로 된 그 방이 왠지 내게는 편안하고 아늑하게 다가왔고 그 방에서는 보물이라도 나올 것처럼 호기심이 일었다.


읽을 책이라곤 교과서가 전부나 마찬가지일 때, 그 방은 얼마 안 있어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나는 십 촉짜리 전구가 희미하게 불을 밝히는 어두침침한 골방에서 벽에 발려진 신문의 활자를 하나씩 더듬어갔다. 엄청난 비밀을 밝히듯, 숨겨진 유물을 찾아내듯 나의 신문 읽기는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울퉁불퉁한 벽면에 발려진 신문을 읽던 중 주간지 <선데이 서울>과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가 나의 시선을 붙들었다.


신기하기만 한 남녀 배우들의 이름과 사진을 보고 또 봤다. 티브이에서 봤던 인기 여배우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기사, 미국 대통령에 관한 기사와 사진을 짚어가며 당치도 않게 나는 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가르기도 했다. 비밀이 감춰진 미로를 탐험하듯 골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영화가 뭔지 궁금해하는 내게 서울에서 시집온 엄마는 서울에 가면 극장이 많다고 했다. 극장에는 영화를 보러온 사람들로 와글와글하다는 것이다. 문득 서울이라는 곳이 궁금했다. 딱 한 번 서울에 가서는 차멀미가 너무 심해 구경도 못 하고 내려왔기에 서울이라는 곳에 미련이 남았다. 그 아쉬움과 호기심을 골방 벽에 발려진 기사들을 좇으며 내 상상의 나래는 은하수처럼 넓고도 멀리 퍼졌다.


골방을 동경했던 것은 한 집안이면서 마을 친구의 집에 있는 방을 만나면서부터다. 안채 외에 아래채가 두 채나 있는 친구네 집은 바지런한 어머니 덕에 매우 정갈했다. 그의 어머니는 늘 걸레로 방이며 마루를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닦았다. 친구는 형제 서열상 끝에서 두 번째라 위의 오빠들과는 나이 차이가 컸다.


우리는 오빠들의 시선을 피해 둘만의 공간을 찾았고 그것은 미로처럼 방과 방 사이에 있는 사람 하나 누우면 딱 맞을 골방이었다. 그 방에는 친구의 할아버지가 왕골로 손수 짠 자리가 깔려 있었고 친구와 나는 볕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공간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굴속 같은 그곳에서 우리는 숙제도 하고 나란히 누워 이야기도 나눴다.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는 것은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신비로움이다. 집안의 가장 중심, 사방이 방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여성의 몸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자궁과 닮았다.


한 살 터울로 동생을 본 나는 엄마의 품을 일찍 벗어나야 했다. 내가 차지할 수 있는 엄마의 공간은 없어 보였다. 늘 엄마의 비릿한 젖과 살냄새가 그리웠다. 엄마를 일찍 놓쳐버린 허기진 마음 때문인지 골방은 엄마의 자궁 속처럼 혹은 엄마의 늘어진 젖가슴처럼 아늑하기만 했다. 골방은 안방으로 통하는 문 외에 뒤꼍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 더 있었다.


비가 내리는 봄에는 방문을 열고 처마 아래로 떨어져 원형의 파문을 일으키는 빗방울을 하나, 둘 세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뒤란의 장독대와 그 옆에 피어나는 옥잠화와 참나리꽃은 늘 한결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줬다. 골방은 안의 공간뿐 아니라 문을 열면 보이는 풀잎과 봄볕과 소복이 쌓인 눈 등 모든 것이 친구처럼 정겨웠다.


골방문 바로 옆에는 옹기를 얹은 굴뚝이 있었다. 안방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안방, 골방의 구들을 거쳐 굴뚝으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때로 굴뚝에 손을 대보면 아궁이의 불길이 굴뚝까지 날아들었는지 언저리가 따뜻해서 나는 그을음이 묻은 기둥을 안고 얼굴을 파묻고는 했다. 굴뚝에서 나는 연기 냄새는 매캐함보다 구수함이 내 후각을 자극했다. 신기하게도 연기 냄새를 맡으면 파고들고 싶은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고 편안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을 골방에서 신문 속의 활자들과 마주하면서 나는 무언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글의 의미를 다 파악하지 못할 만큼 어렸지만 글은 늘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내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내가 활자를 읽으며 궁금한 것을 추측했다면 활자는 그런 내 모습을 마주 보며 내 생각까지 훤히 들여다보는 듯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꾸중을 들은 날은 야속한 마음에 혼자 골방에서 늦도록 훌쩍거리기도 했다.


삶의 무게에 찌들어 사는 엄마는 따뜻하고 자애롭기보다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내 유년 시절은 천진난만함보다 구석진 골방과 닮았다. 어둡고 캄캄한 방에서 한참을 훌쩍거리고 나면 신기하게도 누가 달래주기라도 하듯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활자들이 살포시 날아와 마치 나를 토닥여주는 감촉. 수많은 글이 있는 골방은 나와 가장 잘 소통하는 친구 같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기와집도 골방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 골방은 사라졌지만 내 마음의 골방은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 삶에 부대끼고 지칠 때면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내 마음의 골방으로 찾아든다. 따뜻하고 폭신한 솜이불을 덮은 것 같은 푸근함은 여전히 그 시절의 공간으로 나로 이끌어 준다. 내게 엄마의 품속 같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던 골방. 어린 날의 나와 무한의 대화를 나눴던 그곳은 상상의 원시림을 탐험하게 하는 나만의 보물섬이었다. 굴뚝에서 피어나는 매캐한 연기 냄새, 컴컴한 골방에서 바라보던 하얀 빗소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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