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친구
삶이 힘들거나 무료할 때면 사람들은 추억에 의지해 마음을 추스르고는 한다. 가난하고 아팠던 기억조차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의 대상으로 치환되듯. 길가에 한들거리며 손 흔드는 코스모스도, 친구들과 가위바위보 하며 손을 튕겨 떼어낸 아카시아 잎도 평범했던 일상이 삽화처럼 눈앞에 나타나듯. 유년 시절 내 시린 가슴과 곱은 손을 감싸주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버들강아지다.
고뿔에 걸려 코에 불이 나도 나는 앞 도랑으로 내달았다. 동네 아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음질치는 걸음이 가벼웠다. 아직은 겨울, 응달에는 겨우내 쌓인 눈이 뭉쳐져 얼음덩어리가 돌부처처럼 굳어 있었다. 입춘이 지나고 얼어붙은 냇물이 시나브로 녹기 시작하면 버들강아지가 발 빠르게 봄소식을 알렸다. 여전히 아린 바람을 견디며 그나마 명 짧은 햇살이 감질나게 비추는 오후에 내 손에는 꺾은 버들강아지가 한 줌이었다. 엄마의 숨결 같은 보드라운 촉감. 버들강아지를 살짝 얼굴에 대보면 가느다랗고 고운 솜털이 내 콧등과 볼을 간지럽혔다. 하얀 바탕에 연한 회색빛이 도는 몽우리의 감촉이 어린 내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도랑 가에 즐비하게 돋아나는 몽우리는 엄마의 늘어진 젖가슴처럼 말랑하고 포근했다.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엄마의 품이 그리워서인지 난 유독 버들강아지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마음의 허기로 인해 피어오르는 버들강아지만 내 손에 여지없이 떨어져 나갔다. 식물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나. 버들강아지를 한 움큼 따 내 볼에 대면 엄마의 포근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보드라운 솜털은 봄이 무르익으면 강아지 꼬리 같은 꽃을 피운다. 그럴 때면 내 가슴도 왠지 모를 설렘으로 발갛게 피어났다.
앞 도랑에는 빨래터가 있었다. 빨래하러 간 엄마를 따라나선 동네 아이들은 도랑둑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빨래터 주변으로 냇가에는 사열하듯 버들강아지가 늘어서 있었다. 겨울 매운바람을 먼저 맞고 봄을 열어주는 버들강아지는 보드라운 얼굴이 또한 매력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미처 피지 않은 봄을 먼저 맞느라 인고의 시간을 보냈으리라. 시련을 겪고도 부드러움과 온화함을 유지하는 자태.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잡아채도 노하지 않은 채 언제나 부드러운 얼굴로 서 있는 버들강아지.
버들강아지가 시들어 떨어지고 나면 버드나무는 냇가에서 물기를 먹어 더 힘차고 굳세게 성장한다. 버들강아지가 여리고 수줍은 소녀 같다면, 꽃이 떨어지고 난 후의 버드나무는 씩씩하고 늠름한 청년의 기상이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버드나무 줄기를 동네 오빠들이 한 토막씩 자른 다음 그 줄기를 비틀면 속 줄기와 겉껍질이 분리된다. 쏙 빠진 겉껍질을 한쪽 면만 칼로 살짝 긁어내면 이름도 정겨운 호뜨기(버들피리)가 완성된다. 그것을 힘주어 불면 뿌-뿌하기도 하고 삑-삑 소리가 났다.
남자아이들은 봄만 되면 버들피리를 불며 방천을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신기해 나도 만들어 달라고 해 불어 봐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부는 요령이 필요했는데 힘주어 제대로 불어야지 버들피리 특유의 소리가 났다. 나는 만들기도 어렵고, 불기도 어려워 그저 부는 소리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도랑 가를 헤매고 다니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버들피리 소리는 내게 묘한 전율과 동경심을 일으키게 했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의 신비로움이랄까. 버들피리 부는 소년은 내게 만화 속 혹은 명작동화 속 소년처럼 신비감을 부여했다. 버들피리 소리가 유난히 울리면 그것은 곧 봄이 무르익었다는 증거였다.
여름이 되어 장마가 지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려오는 황토물이 모두를 삼킬 듯 사나웠다. 나는 냇가 둑에 달린 개복숭을 따먹으러 비가 내리는 날에 우산도 쓰지 않고 찾으러 다녔다. 약을 치지 않고 내버려 둔 복숭아는 이름값 하느라 먹을 게 없었다. 몇 개 달린 중에도 시퍼렇게 다 여물지도 않은 것을 먹을라치면 과육 속에 벌레가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먹을 게 귀하다 보니 놀이라는 것도, 그런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무서운 줄 몰랐다. 때론 물살이 빠른 도랑을 건너뛰다 급류에 휩쓸릴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는 냇가에 자리 잡은 버들가지가 구세주 역할을 해줬다. 잘 휘어지고 질긴 버들가지가 내 손을 잡아준 것이다.
유년기가 지나고부터는 예전처럼 버들강아지를 따러 다니지는 않았다. 앞 도랑에 빨래하러 갈 때면 바라보는 정도였다. 찬 바람이 부는 도랑에서 빨래하다가도 버들강아지를 바라보면 추운 느낌이 한결 덜했다. 보송보송한 버들강아지를 만지지 않아도 내 볼에 대고 있는 듯 보드랍고 따뜻한 감촉이 전해졌다. 나는 도랑 가에 올라온 버들강아지를 눈으로 좇다가 살며시 다가가 손으로 쓰다듬기만 했다. 늘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지켜봐 주는 것 같았기에.
버들강아지에 대한 추억과 연민은 깊고도 깊어 날씨가 춥거나 내 마음이 허전할 때면 떠오르고는 한다. 특히나 봄이 오는 길목에 들어서면 그때의 보드라운 감촉이 되살아난다. 엄마에게 따뜻하게 안긴 기억이 없는 내가 꾸중이라도 듣는 날이면 서러움만 한 아름 부둥켜안은 적이 있다. 어린 내게 버들강아지는 친구이자 엄마였다. 버들강아지의 보드랍고 포근한 감촉처럼 나는 늘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다. 엄마가 따뜻하게 나를 안아 주면 분명히 버들강아지처럼 보드랍고 따뜻하리라고 여겼다.
몇 해 전 찬 바람이 아주 매섭게 불던 날이었다. 낙동강 수변공원에 산책을 나섰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걸음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밝은 햇살이 비춰주기에 맞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바람은 나를 거부하고 싶은 것일까. 시어머니 시집살이보다도 더 매서운 바람 때문에 눈을 뜨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냥 돌아가기는 왠지 아쉬워 걷고 있는데 강가에 드문드문 버들강아지가 올라온 게 아닌가. 그것도 아주 자그마한 것이 팥알처럼 가지에 붙어 있었다. 예전의 기억과는 사뭇 다르게 자그마했지만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버들강아지가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내 허전함을 달래주었던 아이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버들강아지는 강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는데도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떤 사명이라도 부여받은 것일까. 오직 홀로 봄을 알리는 듯 칼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유년기의 내 모습을 보는 듯 그리 안쓰러울 수가 없다. 이 추운 날씨에 홀로 피어 있는 게 가엾고도 대견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갈 곳 없는 아이처럼 보이기에 팔을 벌려 안아 주었다. 그리고 낮게 속삭였다. “곧 봄이 올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