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체
좌석이 모두 해운대를 바라보는 해변열차를 탔다. 소나무숲 사이로 보이던 바다가 일순간에 창 전체에 담겼다. 액자 속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바다 위 윤슬처럼 반짝이는 일행들의 눈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매주 글쓰기를 함께 하는 멤버들과 글감을 찾아 떠난 부산여행이었다. 비록 글감보다는 체지방을 더 담아왔지만, 그녀들의 생생한 그림체를 찾은 여행이었다.
“저 바다를 보며 해운대에 처음 소나무를 심은 사람이 누구였을까?” M이 말했다. “글쎄, 모르긴 몰라도 사람은 아닐 거예요!” 라며 J가 받아쳤다. J는” 반짝이는 바다 표면아래에 얼마나 많은 시체가 있을지 궁금하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그게 왜 궁금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바다를 바리봤다. 같은곳을 보며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이 흥미로웠다. S는 그녀들의 대화를 BGM으로 여기며, 우리들의 모습과 바다풍경 번갈아 가며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유난히 사람에 관심이 많고 관찰력이 좋은 M이었지만, 수 백 년 전 소나무를 심은 사람까지 궁금해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화려한 밤바다의 낭만 가득한 광안리 요트투어보다 작은 벤치에 앉아 심리테스트 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했다. M은 부산에 와서도 바다가 아닌 사람을 보고 있었다. J는 반짝이는 바다 표면아래에 얼마나 많은 시체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이 묘하게 편안했다. 사진을 찍히는 걸 안 좋아한다던 J는 카메라가 그녀를 향하면 조용히 안경을 벗고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J는 항상 그랬다. 반전의 순간이 어색하지 않았다. S는 바다를 세 개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각기 다른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녀는 우리가 이 공간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내려고 마음먹은 듯 모든 순간을 담고 있었다. 이른 새벽 기차에서 같이 먹을 간식을 손수 챙겨 온 그녀는 여행일정과 경비처리를 발 빠르게 하며 우리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은 배려였다.
나는 바다를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다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소나무와 바다를 떠올리면 해운대가 생각이 나듯 '누군가 나를 생각하면 어떤 그림이 떠오를까?'라는 생각을 했다. 스치듯 한 생각이라고 여겼는데, 여행 내내 풀지 못한 숙제처럼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다 알게 됐다. 우리의 행동과 무심코 하는 말 모두가 글로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같은 풍경을 보고도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저마다의 글이 서로 다른 그림처럼 느껴졌다.
M의 글은 투명 수채화 같다. 그녀의 글에는 등장인물의 배경을 차곡차곡 물기 가득한 붓으로 바탕을 칠한다. 물기가 종이에 머금고 나면 적당한 물기의 붓으로 조금씩 농도와 색감을 올려가며 사람들의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을 덧칠한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숨은 감정을 세밀하게 붓 터치한다. 차곡차곡 쌓인 색감은 농밀하게 채워지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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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글은 수묵화를 닮았다. 수묵화는 오직 먹 한 가지 색의 짙고 옅음만으로 완성되는 그림이다. 번짐과 여백이 유독 아름답다. 그녀의 글도 그렇다.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읽고 난 뒤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면서 A4용지 열 장이 넘는 단편소설을 뚝딱 써내는 모습이 담백한 한 획 속에 깊이를 품은 수묵화와 같았다.
S의 글은 크로키 같다. 그녀는 모든 순간을 캡처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일상의 스쳐가는 모든 순간을 글에 담는다. 그녀가 읽는 책, 아이에게 해준 간식, 간단한 요리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지나칠법한 순간들을 생동감 있게 써낸다.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장면을 포착하는 형태와 리듬감이 뛰어난 그녀는 글에서도 찰나의 순간을 클로즈업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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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쓸 때 소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자신의 감정에 맞춰 글을 쓰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글을 쓰기도 하지만, 나는 흥미로운 소재가 떠오르면 글을 쓰게 된다. 조각조각의 각기 다른 소재들을 연결하며 흥미로운 조합을 찾아내는 글을 좋아한다. 내 글은 콜라주와 닮았다. 서로 다른 재료나 이미지를 한 화면에 담으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기법이다. 이는 구조적이거나 계획적이기보다. 즉흥적이거나 비계획적으로 작품이 탄생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내 글은 조금 불안하고 정돈이 안된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 또한 내 그림체라고 생각하니 좀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나는 부산여행에서 멋진 풍경들보다, 함께한 이들의 시선과 행동들이 더 흥미로웠다. 누군가는 바다를, 누군가는 사람을, 또 누군가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각기 다른 그림을 품은 ‘부산 컬렉션’을 보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