킁킁, 시드니

감각으로 떠난 여행

by soojin



한국은 초겨울날씨의 11월, 고교입학을 앞둔 첫째의 바람으로 10시간을 날아 지구 반대편 시드니에 왔다. 현재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이곳은 낮 기온이 27도~31도를 오갔다. 이곳이 따뜻해서 너무 좋다며 두 팔을 벌려 온몸으로 햇볕을 쬐던 첫째는 매고 있던 백팩을 공원 한가운데 내동댕이치고 이를 베개 삼아 누워 버렸다. 파크 주변에 많은 시드니 사이더 (Sydneysiders :시드니 지역에 사는 사람들)들이 눕거나 모여 앉아 조용히 그들 만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자연스레 하이드 파크 잔디 한가운데에 가족모두 나란히 누웠다. 누워서 나뭇잎이 일렁이는 사이로 살짝씩 보이는 햇살이 온몸을 간지럼 태우는 것 같아 나는 계속 웃고 있었다. 첫째가 물었다.

하이드파크
엄마, 시드니가 뭔 줄 알아요?
글쎄, 도시이름의 유래에 대해 묻는 거야?
엄마, 시드니는 행복이에요! 따라 해봐요.
시드니는 행복이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깔깔깔 웃으며 외쳤다.
시드니는 행복이다!

그렇게 웃는 사이 초등학교 6학년 둘째는 무언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엄마! 분명히 비행기를 타고 멀리 왔는데, 이상해요. 왜 외국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거죠? 왜 그럴까요?”

이국적인 가로수와 건물들과 풍경이 모두 다른데 왜 그런 생각인지 의아했다. 둘째는 여행 내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맸다. 지나다니는 사람을 유심히 보기도 하고,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브리지, 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쯤 되면 외국이라 느껴졌겠다 싶어서 다시 물어보았다.

“음, 분명 한국에 없는 곳이긴 한데, 꼭 그림 속에 들어온 거 같아요. 다른 나라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세 번의 식사가 끝나고 나서 아이가 비장하게 말을 꺼냈다.

엄마, 이 나라는 이상하게 냄새가 나지 않는 거 같아요!

듣고 보니 그랬다. 거리는 항상 청결했고, 기분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았을뿐더러, 해안가를 거닐 때조차 그 흔한 바다의 짠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이는 나라를 냄새로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태국을 여행할 땐 시큼하고 쿰쿰한 향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스트리트 푸드가 발달된 태국은 습한 공기 때문인지 약간의 눅눅한 향과 향신료가 어우러진 태국만의 냄새가 있었다. 일본에 갔을 땐 일본 숙소나 건축에서 나는 편백나무향처럼 은은한 수목향과 사찰에서의 향냄새 등을 일본 냄새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호주는 영국의 지배권아래 오래 있어서 인지 대표하는 음식이라곤 피쉬 앤 칩스 말곤 없었다. 여행동안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이 아시안 푸드였으니 호주만의 맛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실제로 호주의 바다는 남극 빙하가 녹아 흐르는 남극해로 해류가 강하고 조류활동이 활발하다. 순환이 잘 되기 때문에 정체된 곳이 적어 비린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냄새가 나지 않는 건 호주가 가진 환경 때문이었다.

파도가 거칠게 몰려오던 호주 바닷가


둘째는 후각과 미각으로 이 도시 전체를 느끼고 있었다. 냄새 없는 이 도시를 그림처럼 평면적이라 여겼다.


첫인상을 보고 3초 안에 상대에 호감을 느낀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인지할 때 시각적인 것에 가장 크게 반응한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호감이 계속 관계로 이어지기 위해선 다 감각이 필요하다. 말투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청각,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후각, 가벼운 터치에도 짜릿함이 느껴지는 촉각까지. 세상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분명히 수많은 감각이다.


내게 시드니는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 같은 느낌이었다. 공원마다 가지런히 드리워진 오래된 나무들과 쾌적한 2층짜리 트레인은 먼지나 주름하나 없는 새 옷처럼 깔끔했다.

오페라 하우스 옆 로얄보타닉 가든
숙소가 있었던 Erskineville 역_ 역무원의 V

그리고 시드니에서 만난이들의 친절하고 멘트들은 새 옷을 입을 때처럼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멜버른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표 검사원은 가족끼리 탑승했냐고 묻더니 고개를 40도 정도 기울이며 “오 러블리!,”라며 활짝 웃어줬다. 간단한 감탄사 정도로 쓰는 멘트였겠지만, 러블리라는 단어를 타지에서 들으니 우리 가족이 사랑의 끈으로 똘똘 묶인 것처럼 따스함이 밀려왔다. 여행 마지막날 갔던 스테이크 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주문한 레모네이드가 사이다로 잘못 나와서 스텝에게 항의했더니, 멋쩍게 웃으며 호주에선 레모네이드가 스프라이트라며 미리 말 못 해줘서 미안하다 했다. 영수증 주문내역을 보여달라고 정색했던 내게 되려 미안하단다. 제대로 모르고 주문한 내가 더 미안한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배가 고팠던 두 아들들은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스프라이트를 단번에 마셔버렸다. 식사예절은 아무리 가르쳐도 그들의 배고픔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빈 유리잔에 거의 녹지 않은 얼음컵을 돌리고 있던 아들들에게 아까 주문받았던 스텝이 논 알코올 모히또 두 잔을 서비스로 줬다.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레몬에이드를 마시고 싶었던 아이들이 실망했을까 봐 배려해 준 스텝의 마음이 뽀송뽀송하게 느껴졌다, 나는 시각과 청각으로 이 도시를 읽고 들었다.

스테이크, 분위기, 서비스 맛집 _The Meet &Wine co Circular Quay


둘째에게 호주만의 맛을 보여주겠다며, 캥거루 고기를 먹으러 갔다. 하지만 결국 고기에 손도 안 댔다. 나는 질긴 캥거루 고기를 뜯으며 생각했다. 킁킁거리던 둘째 덕분에 좀 입체적으로 시드니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부산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