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채식주의자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흔들리는 잣대

by 어둠의 흔적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당연한 것이었을까? 애써 외면하고 있던 내면 속 추동의 본질을 조금의 포장도 없이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 영혜는 정말 정신을 놓은 것인가.


온갖 해를 끼치는 행위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순수함과 용기, 피식자의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려 깊음. 아버지로부터 포식당하며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포식하도록 자라온 탓에, 피식자의 내면을 그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깊이 느낄수록 그 고통이 더해져, 더 이상 두 눈을 감고 살아가기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해를 입히는 행위와 사회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외면시해 왔던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 했던 정말로 살아있고 싶다는 그 울부짖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자 나이 서른, SNS 속에서는 한 때 시간을 공유했던 지인들이 매우 낯선 모습으로 나를 응시한다.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에서, 이제는 결혼이라는 울타리에서 그녀를 보호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등장한다. 거기에 더해서 그들을 닮은 조그마한 아기. '입시를 위한 교육, 취업, 연애, 결혼, 출산'. 이것은 자연스러운 생애 주기이다. 하지만 정말 자연스러운 것일까? 그게 정말 나를 위한 최선일지에 대해 되묻게 된다. 물론 사회를 위해서 이바지하는 숭고한 모습이지만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인지 의문이 든다. 아직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가지는 생의 단계는 나와는 이질적인, 자연스러운 과정에 따라가고픈 마음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아직은 머나먼 그저 꿈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이질감은 나의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 이외에도, 결혼이나 자녀 교육에 실패할 수 있다는 무의식 속 두려움에서 나오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를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도 든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평범함’을 바랐다. 평범하기를 바랐지만 그렇지 못했던 어린 시절. 어린 나이와 그저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웠던 현실. 겉으로 보이는 밝은 미소 속에 숨겨둔 괴로운 현실. 즐거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계속 잠들려고 애써 현재가 꿈인지 현실인지 몰랐던 순간도 솔직한 현실이다.


불편하지만 한편으로 갈망하고 있는 결혼에 대한 욕구는, 미처 누리지 못했던 평범에서 오는 자연스러움과 안정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내가 바라는 삶인가? 그저 힘든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밧줄을 잡으려는, 사회의 규범 속에서 그것을 성공이라고 여기고 모순됨 안정감을 누리려는 모범 답안인지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다.



< 마음건강 TIP: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


삶의 목적에 대해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 상담이론으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로저스는 인간은 '자아실현'을 추구하고자 하는 존재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치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수용하지 않고,

부모의 가치관에 맞는 조건적인 모습을 요구하는 경우,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가치보다는

부여된 부모에게 수용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 '가치의 조건화'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긍정적 존중을 받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겉으로 최선을 다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실제 자신'과 '이상적 자신'의 모습 간에 괴리가 생겨 자아실현이 어렵게 되어, 불안 등 심리적 문제와 다양한 문제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 우리는 어떨까? 저 자신도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도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네요. 이것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일치하고 노력으로 이상적인 모습이 될 수 있으면 큰 문제는 없을 수 있지만, 과연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나의 모습, 다른 사람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도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고 여겨집니다. 시간은 빠르게 흐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이는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나의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도 더 잘 빌어줄 수 있게 되어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