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여 영접하였거늘(누가복음 19:5-6)
"쓰레기와 같았던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거듭났다."라고 고백하는 사역자가 있다.
그는 십자가가 없는 곳에 십자가를 전하는 청소년 사역자 서종현 선교사다. 그는 학창 시절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징계를 받은 후부터 삐뚤어진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어른들과의 싸움에 휘말려 칼에 찔리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는 그때부터 어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게 되었고. 망가진 삶을 살던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되었다. 힙합음악을 통해 자신과 같이 방황하며 좌절하는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선교사님은 지금도 절망의 자리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로하며 세워주는 사명자로 쓰임 받고 있다.
오늘 본문도 벌레와 같은 취급을 받던 인생에서 예수님을 만나 새롭게 변화된 삭개오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여 유대인들에게 많은 미움을 받았던 자였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를 받아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눠주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영혼이 살아나고 참된 기쁨을 얻고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게 된다. 나는 주님을 만난 후 어떤 변화가 있는가?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되도록 어제와 다르게 살아가자
<감사QT365> 중에서
믿음 좋았던 아빠엄마의 부재는 나에게 믿음의 큰 위기였다.
그래서 "내 믿음은 내가 지킨다!"를 위해 교회에 찾아갔더니,
뜬금없이 감당하기 힘든 직분들이 차근차근 나에게 안겨졌다.
처음 직분 하나를 받았을 때는 엄청 기뻤다.
그런데 그 직분의 박스들이 하나씩 하나씩 내 손과 팔과 어깨 그리고 머리에 올려지더니
급기야 이제는 너무 무거워서... 또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 주저앉을 위기다.
그 역할들을 차근차근해 나가다 보니, 시간과 물질을 희생해야 했다.
또 여기저기 쫓아다니다 보니, 체력은 바닥이 되고 살은 빠지고 교회 일 하느라 너무 분주하다.
나에게 맡겨진 지체들이 어떻게 사는지, 도울 것은 없는지
또 교회에 나오도록 자주 찾아가고 연락하고 선물을 챙기기 위해 발품을 팔다 보니,
해도 해도 일이 끝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일을 감사하기로 했다.
내 믿음의 그릇은 작고 초라하지만
아마도 "주님의 일에 쓰임 받는 딸이 되게 해 주세요"라는 엄마아빠가 쌓아놓은 기도 덕분에
많은 분들의 중보덕에
감당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벌써부터 중보기도해 달라는 문의가 많아졌다는 거는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 아닐까?
성심성의껏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진정성"이란 녀석도 커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과묵함"도 생겼고,
두루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니, 가장 갖고 싶던 "통찰력"도 슬금슬금 생기는 것 같다.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의 일을 하면서
나의 모난 부분은 다듬어지고, 나에게 필요한 부분은 채워지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이다.
감추고 싶었던 단점을, 리더로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법이니
늘 깨어서 고치려고 노력도 하게 됐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나를 바꾸시는 과정임을...
그래서 하나부터 열까지 기도하면서
감사함으로 고백하는
나의 신앙성장의 과정이라고 여기고 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