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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스 Mar 01. 2023

해외에서 아파보니

열로 고생한 후 느낀 것

 열심히 산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 느낌을 스스로 받으면 뿌듯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자투리 시간까지 잘 활용하려고 했다. 심지어 구글 캘린더에 5분 단위로 내가 할 일을 기록하며 내 시간을 관리해 봤던 적도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평소에 무심코 새어 나갔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시간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나서부터는 짧다고 생각했던 하루라는 시간에도 참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영국에 와서도 이런 식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했다. 나는 영국에 오기 전부터 영국에 놀러 간다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물론 여행을 하는 날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저 몇 안 되는 특별한 나날 중 하나일 뿐이다. 영국에 와서도 일상은 계속되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사람의 변화는 65일의 특별한 나날이 아니라 300일의 열심히 사는 매우 평범한 하루에서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록 영국에 와서 고시나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그런 공부가 아니더라도 나는 내 삶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 기간 동안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새로운 습관을 가져보기로 했다. 12시부터 7시까지 취침, 매일 공원에서 러닝 하기, 뉴스 보기, 매일 독서하기, 글쓰기 등. 남는 시간에는 유튜브를 보며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공부했다. 그리고 건강 관리를 위해 요리도 열심히 해 먹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영국에 와서 실제로 내가 계획했던 걸 잘 실천하며 살았다. 심지어 도착하고 나서 꽤 바빴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살기로 했는데 막상 가보니 침대와 책상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모든 걸 다 사야 했다. 그래서 기숙사에 들어갔던 당일 밤에 급하게 셰필드 교외에 있는 이케아에 가서 혼자 끙끙거리면서 이불과 베개를 사 오기도 했고, 걸어서 15분 정도 가면 나오는 시내에는 밥 먹듯이 가서 내가 필요한 것을 사 왔다. 그리고 장도 참 많이 봤다. 건강을 위해 끼니를 대충 때우기 싫었고 요리도 제대로 해보고 싶어 각종 식재료를 많이 샀다. 혼자 살기 때문에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까지 모두 다 했다. 게다가 개강까지 맞이했다. 영국의 학기는 한국처럼 6월에 종강한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4월 초에 3주간 부활절 방학이 있어 2월 첫 주에 시작됐다. 영국의 파업 때문에 몇몇 수업은 취소되기도 했지만 생소한 학교에서 수업을 듣게 되어 정신이 없었다.


 이렇듯 바쁜 와중에 내가 계획한 걸 모두 해내려고 해서 그런가. 기어이 일이 터졌다. 어느 날 오전 학교 옆 공원에서 러닝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왔다. 실내에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한파가 밀려왔다. 밖에서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옷을 잔뜩 껴입고 이불까지 덮고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은 계속 춥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이마는 매우 뜨거웠다.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나 열나는구나.


 타지에서 아파보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몸이 안 좋으니 도저히 요리를 해 먹을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영국에서는 한국처럼 죽을 배달해 주는 식당도 없다. 몸이 안 좋아지니 한국 생각이 계속 났다. 입맛도 전혀 없던 탓에 영국의 빵이나 밀가루 음식은 먹고 싶지 않았고, 여러 끼를 그냥 굶었다. 그러다가 열이 조금 내려간 후 정신을 차렸을 때 유튜브에서 닭죽 레시피를 검색해서 해 먹었다. 혼자서 죽을 해 먹은 적은 살면서 처음이다. 내가 먹을 죽을 천천히 휘젓고 있을 때 타지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그저 일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영국에서도 일상은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으면서 왜 나는 영국에 와서 아플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건데. 해외 생활의 환상은 깨졌고, 현실을 체감했다.


 열에서 회복되고 나서는 열이 났던 당시를 회상해 봤다. 이제는 내 시간을 엄격히 통제하는 방식의 삶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열심히 사는 것도 물론 좋지만 건강하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나는 적당히 사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열로 인해 아팠던 시간은 나에게 휴식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해 줬다. 가끔은 공원에 앉아서 멍 때리기도 하면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제는 그런 시간들 역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열이 나기 전 러닝했던 공원. 가끔은 벤치에 앉아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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