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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로예 Aug 05. 2021

어느날 '개념'을 도둑맞는다면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 리뷰

어느날 '개념'을 도둑맞는다면?


'개념'이란 세상을 보는 창구다. 예컨대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교류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쁨을 누린다. 그런데 어느날 누군가 이 기쁨이라는 개념 자체를 뺏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애석하게도 행위는 그대로지만 개념에 대한 도식과 감정은 말끔히 사라질 것이다. 평생 쌓아온 기쁨이라는 감정과 경험도 재처럼 사라질테다. 기쁨을 느껴야 할 순간에는 고장난 기계, 아니 외계인처럼 이 세계를 두리번거릴 것이다. 반면 기쁨을 뺏은 자는 삶의 재미를 이제서야 알게된 듯, 사소한 일에도 즐거움이 넘친다.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가.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는 위와 같이 '개념'을 뺏고 뺏기는 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로부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심도깊게 논했다.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희곡 <산책하는 침략자>는 인간의 몸에 영혼처럼 침투한 외계인들이 한 마을에서 '개념'을 수집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발상과 소재는 SF적이지만 소재를 풀어내는 인물과 배경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수집한 개념을 통해 '인간'에 대해 배워가는 외계인들과 개념을 빼앗기며 점차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조시키며 관객들에게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 출처 : 창작집단 LAS


개념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전에 따르면 개념이란 '특정한 사물, 사건이나 상징적인 대상들의 공통된 속상을 추상화하여 종합화한 보편적 관념'으로 정의된다. 한편 개념은 구체적 개념과 추상적 개념으로 구분되는데, 구체적 개념은 '대상의 물리적 속성'에 따라 구별하는 개념이다. 반면 추상적 개념은 '관찰될 수 없는 현상'을 나타내는 공통적인 속상을 정의함으로써 구별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런 개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본 순간부터 끊임없이 외부 세상과 사물, 타인에게 노출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세계와 상호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특정한 사람과 사물, 현상에 대한 감정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는다. 이것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머릿 속에서 '무엇'이라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개념'이 형성된다. 예컨대 혈연,인연,입양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을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 물건을 전면적으로 지배하거나 가지고 있는 것을 '소유'라는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아동 심리학자 피아제는 위와 같이 개념을 형성하는 것을 '도식'이라는 인지구조로 보았다. 인간의 사고나 행동을 조직하게 하며, 환경에 적응하게 하는 심리적 구조이다. 쉽게 말해서 사건 또는 자극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기본적인 이해의 틀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인지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산책하는 침략자는 왜 개념을 빼앗는가

 


해안가의 작은 항구 마을에 3일간 실종되었다가 돌아온 '신지'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상식적이지 않은, 그러나 상식적인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는 사람같지 않은 굳은 표정과 딱딱한 어조로 일관했다. 그는 무언가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과 개념들을 '모른다'고 하며. 이윽고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모르는 개념들을 물어보며, 허락도 없이 개념을 뺏었다. 개념을 뺏긴 사람들은 잠시 그들의 속에서 둔탁한 무언가가 빠져나간듯 고통을 호소했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신지가 돌아온 후부터 마을에는 원인을 알 수없는 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개념을 뺏긴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윽고 마을이 아수라장이 되자, 신지는 아내 나루미에게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동시에 지구 정복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 개념을 빼앗았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주장하는 신지는 지구 정복을 위해 왜 사람들의 '개념'을 빼앗았을까. 아마 이 질문을 던진 순간부터 '산책하는 침략자'라는 극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개념이란 세상을 보는 창구로서, 이것이 어느날 사라진다면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세계는 이전과 다른 세계가 되고 만다. 극단적으로 따지면 누군가는 한 세계가 송두리째 사라질 수도 있다. 가족을 끔찍히 사랑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개념을 뺏기게 되면 그는 세계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니.


아무튼, 이처럼 개념은 삶 또는 사람 속에 없으면 안 되는 필수 요소인 것이다. 신체가 기능하기 위해 오장육부가 있는 것처럼, 정신이 기능하기 위해서는 수만 가지의 개념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답이 나왔다. 외계인은 이 인간 정신의 근본을 이루는 '개념'을 빼앗음으로써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요소를 제거하고자 했다.



'산책하는 침략자'의 관전 포인트는 개념을 뺏긴 자와 개념을 뺏은 자의 상반된 모습이다. 사람다움에서 멀어지는 '뺏긴 자'와, 사람다움에 가까워지는 '뺏은 자'다.


뺏긴 자는 어딘지 이 세계와는 동떨어진 인식을 지닌 느낌을 강하게 풍기기 시작했다. 무언가 고장이 난 것만 같다. 동생을 지극히 아끼던 나루미의 언니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뺏긴 후, 동생을 보는 것조차 거부한다. 가족을 등한시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반면 어떤 이는 "삶의 해방감을 느꼈다"고 흥분에 휩싸인다. 신지를 만난 후 "삶이 너무나도 개운해져서" 마치 "사슬을 끊은 느낌"이라며. 그는 세속적인 가치로 고뇌하는 후배에게 "제발 신지를 만나보라"며 그를 등떠밀기까지 했다.


개념을 뺏은 자, '신지'는 어떨까. 지구를 정복하려는 목적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를 통해 수많은 개념을 얻는다. 개념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는 점점 더 사람다워진다. 굳었던 표정은 점차 부드러운 미소로 바뀌고, 딱딱했던 어조는 높낮이가 분명히 구분되는 톤으로 변화한다.  



침략자가 가장 마지막으로 뺏은 개념, '사랑'에 대해서



쉬지 않고 산책을 하며 사람들에게 '개념'을 빼앗는 침략자 '신지'. 그는 아주 많은 개념을 획득함으로써 그 스스로도 이젠 괜찮아졌다고 표현하는 경지에 달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뺏지 못한 개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사랑'이었다. 신지는 "사랑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말을 해주지 않았다"라고 그의 아내 나루미에게 전한다. 그녀는 말한다. "사랑? 그거 부끄러워서 말 못 할걸." 그리고 덧붙인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서는 사랑을 찾을 수 없다고. 그에게 사랑이란 개념을 줄 수 있는 자는 오직 그녀 본인임을 밝힌다.

 

필자는 신지가 그의 아내 '나루미'에게 사랑을 논하는 장면이 시작되자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신지를 사랑하는 나루미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줄 것이기 때문이다. 준다는 것은, 그의 남편에 대한 모든 사랑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지운다는 일이다. 이는 한 삶의 깊은 줄기와도 마찬가지였던 사랑이라는 세계를 자발적으로 없애는 일이다. 미치도록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나루미는 사랑하는 그를 위해 "얼른 가져가라"고 외친다.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필자는 아직 사랑이라는 개념을 보존하고 있는 지라 나루미를 따라 함께 울었다. 내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우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마침내 신지는 그의 아내에게서 '사랑'이라는 개념을 뺏고 만다. 그러자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 일어난다. 개념을 뺏고도 언제나 태연하게 당당했던 신지가, 가슴을 치며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그를 오랫동안 마음 속에서, 기억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속에서 품었던 나루미의 사랑이 그의 가슴 속에서 폭탄처럼 터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철학적 질문이다. 개념을 뺏고, 뺏기는 과정 속에서 고스란히 남은 질문이다. 필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거부할 수 없는 깊은 공감과 연민을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바로,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개념을 빼앗길지라도 사랑을 빼앗긴다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잃는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사랑이라는 개념을 빼앗는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송두리째 앗아간다.


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필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대상은 사물이 될 수도, 자연이 될 수도, 현상이 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사람'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사랑, 조건없이 나를 사랑해준 사랑이 떠올랐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져도, 일확천금의 기쁨을 누려도 이 사람들의 '사랑'과 맞바꾸겠냐면 나는 못 하겠더라.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움과 자극만을 추구했던 지난 날의 본인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과 삶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과연, 내가 살아가면 뺏긴 개념이 있을까? 혹은 방심하는 사이에 뺏길 지도 모르는 개념이 있을까? 또는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뺏었던 개념이 있었나? 와 같은 생각을 하며. 어느날 산책하는 침략자를 만나게 되면 정신똑바로 붙들고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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