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파우치로 책의 소중함을 드높이다
내 학창시절의 주 특기는 '교과서에 물 흘리기', '책에 커피 쏟기'와 같은 것이었다. 분명 새 책을 처음 받을 때는 백옥처럼 예쁘게 가꿔 써야지, 다짐을 하다가도 눈만 감았다 뜨면 어느새 낡아진 책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런 관습들은 아무런 대안없이 십몇 년간 지속되었다.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실수에 의해', 혹은 '어쩔 수 없이' 책들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너덜너덜 해진 상태가 될 때까지 교과서(책)이 망가지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증거가 되기도 했으니.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다루지 못한 합리화가 꽤나 오래 지속된 것이다. '교과서가 찢어질 정도로 공부해야 제대로 한 거지.' '책이 휘어질 정도로 읽어야 깊이 읽은거지'. 그런 근거없는 자부심에 취해 살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다. 10년 전만 해도 지하철에는 책 또는 신문을 펼쳐들고 유심히 읽어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허나 지금은 대부분이 온 정신과 영혼을 스마트폰 또는 태블릿 PC에 빼앗긴 듯하다.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막상 책을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은 손에 꼽는 사람이다.
신기한 건 그들의 손 또는 내 손에 들려있는 그 전자기기에는 반드시 '케이스'가 있다는 사실. 나와 이들에게 과연 전자기기는 절대로 깨지거나 훼손되면 안 되는 그런 소중한 것인가보다. 물론 소중한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소중함'의 이유는 전자 기기가 고가품이면서, 훼손되면 수리비나 서비스비로 내야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비롯됨을 추측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케이스'로 물건을 보호하고 감싸는 것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느꼈다. 기껏해봐야 고가의 전가기기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세상에 그 가치를 보호하고 지켜줄 만한 것이 오직 '전자기기' 뿐인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둥둥 떠다니는 채로 매일의 지하철은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런 일상의 풍경과 문화에 무감각해졌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고 무심코 책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유난히 책장 속의 책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들이 살아있는 무엇이 아니라 잠자고 있는, 혹은 죽어있는 상태로 보였다. '뭐지? 왜 가만히 있던 책들이 생명력이 없어보이는 걸까.'
그제서야 자각하고 말았다. 책과 너무 멀어져 살아온 것이다.
잊고 있었다. 텍스트를 읽어내고, 그 텍스트를 곱씹으며 나의 것으로 소화하는 일은 '책' 속에서 더 깊이 이뤄진다는 것을.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트렌드를 바꿔도 '책'의 가치와 영향력은 도저히 후퇴할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쩐지 책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생각은 굳어버렸다. 인터넷을 통해 아는 정보는 많아지는 데 도저히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없었다. 책의 부재는 주체성의 부재와도 같다고 느꼈다.
책을 통해서라면 디지털 세상의 허공 속을 떠다니던 생각의 부산물들을 빼낼 수 있다. 엉킨 생각과 느낌을 단정하게 정돈할 수 있다. 한 장 한 장의 종이를 넘기면서, 또 그 종이의 은은한 냄새를 맡으면서 후각과 촉각 본연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온전히 '나만의 속도'와 '호흡'으로 세상의 해상도를 높이는 것, 책이 아니면 무엇이 대체할 수 있겠는가?
디지털 시대에서 책의 가치를 더 깊이 알게 된 뜻깊은 날, 마침 이 깨달음을 더 소중히 가꿔갈 수 있는 선물을 받게 되었다. 나의 책들을 '가치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그 가치를 보호하고 실현할 수 있게 하는 무엇이었다.
바로 '북 파우치'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파우치'를 검색해본 적이 있는가? 연관 검색어 첫번째로 뜨는 단어는 '화장품 파우치'다. 검색 키워드가 보여주듯이 파우치의 쓰임과 용도중에 도서와 관련된 것은 세상에 드러난 적이 거의 없는 영역이었다. 잡동사니 또는 화장품 더미를 들고 다닐 때나 쓰는 파우치를 어떻게 책을 가지고 다니는 용도로 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관습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누군가 덕분에, 질감도 좋을 뿐더러 사용감도 너무나 포근한 북 파우치를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북 파우치 하단에 달려있는 아기자기하고 작은 택에 '코코의 하루'라는 브랜드 네임이 적혀있다. 자세히 보면 북파우치 하단의 실밥이 튀어나온 곳도 전혀 없을 뿐더러, 마감처리도 완벽하게 되어있다. 선물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책들을 포근하고 완벽하게 감싸 안아줄 것만 같은 연상을 일으켰고, 실제로 그랬다. 북파우치의 퀄리티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북 파우치 안에 책을 담으면, 위와 같이 돼지 코 모양의 단추에 고리를 걸어준다. 단단한 끈의 탄력과 돼지코 단추의 고급진 나무 재질은 '안전'과 '디자인'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완성의 콜라보였다. 저 단추고리를 풀고 걸 때 마다 책을 아껴 읽었다는 징표가 된다. 터치 하나로 화면을 껐다 키는 전자 기기의 사용성에 비해서는 비효율적인 동작이라 할 지라도, 책을 존중하는 충분히 '아름다운' 행동을 지속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의 소중한 책에 보금자리를 만들어준 기분이었다. 차디찬 책장 안에 꽂혀있을 때 책을 꺼내면 조금은 차갑고 허한 촉감이 먼저 느껴졌지만 북 파우치에서 책을 꺼낸 후부터는 마치 따뜻한 '집'에서 막 나온 소중한 책으로 느껴졌다. 소중한 사람을 더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대하면 그가 더욱 사랑스럽고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책들도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으면 더욱더 우리에게 그런 사랑스럽고 고마운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디지털 시대에 책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잊고 있었던 본연의 '읽는 즐거움'을 일깨우고, 소중한 무언가를 더 아름다운 것으로 가꾸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 사실 이 북 파우치는 책만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엇이든 따뜻하고 예쁘게 보관할 수 있는 장점이 무궁무진하다. 앞서 소개한 전자기기들 뿐만 아니라, 학용품이나 생활용품 등등 크기 내에서 보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요점은 소중한 것들을 향해 관심을 갖고 가꾸려는 마음을 실현하는 것이다. 단지 파우치 하나만으로 소중한 무언가를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나아가 제로웨이스트를 이루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제로웨이스트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의 물건을 오래,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행동으로도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냄새와 천의 촉감을 듬뿍 느끼며 오늘도 '북 파우치'에 손을 가져간다. 잊고 있던 가치들을 되살리고, 그것들에 따뜻한 집을 지어주는 일에 푹 빠진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