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를 통해 이벤트에 당첨되어 무료 티켓으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관람하고 왔다. 공연이 끝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지금, 필자는 카타르시스에 휩싸여 황홀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이 공연을 볼 때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안할 정도였다. 본 뮤지컬을 홍보하는 문구 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이 시대 최고의 뮤지컬'인데 필자는 이것이 절대 과장되지 않은 표현임을 깨닫는다.
확신에 차 외치고 싶다.
빌리 엘리어트는 이 시대 최고의 뮤지컬이다!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꿈만 꾸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비현실적이지만 손에 가닿을듯 눈 앞이 선명한 꿈을 말해본 적이 있었나? 놀랍지만 우리 모두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어린 시절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이미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명작이다. 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여, 탄광촌의 소년이 발레의 꿈으로 날아오르는 이야기다. 복싱 수업을 계기로 우연히 만나게 된 발레 수업을 통해 소년 '빌리'는 발레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날아다니는 꿈을 위해 역경에 당당히 맞선다.
뮤지컬로 만난 <빌리 엘리어트>는 영화로 보았을 때와 그 느낌이 180도 달랐다. 소박한듯 분명히 웅장하고 환상적인 무대 연출, 환상적인 음악과 춤이 합쳐져 탄성을 지를 만한 아름다움, 어른과 청소년 배우들이 함께 무대를 이끌어나가는 장악력. 이 모든 것은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러닝 타임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본 공연은 감동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필자가 감동한 포인트들을 3가지로 요약해 소개하고자 한다.
놀랍게도 본 공연은 원작인 영화 빌리엘리어트의 러닝 타임 110분보다 훨씬 긴, 175분의 러닝타임을 지닌다. 물론 인터미션까지 포함했기에 시간이 더욱 길어지겠지만, 영화라는 매체 특성과 달리 러닝 타임 내내 끊임없이 관객에게 완벽한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 뮤지컬은 어린이 배우에게 그 긴장감과 부담감이 더 클 것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 출연한 어린이 배우들은 성인인 필자가 보았을 때 오열을 야기할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연기와 끼를 뽐내주었다. '어떻게 저 어린 아이들이 끝까지 방긋방긋 웃으면서 최고의 춤과 노래를 선보일까?'라는 감동이 온 몸을 휘감았다. 오늘 공연에서 빌리 역할을 맡은 김시훈 배우는 147cm에 33kg의 정말 아담한 체구를 가진 12살 소년이었다. 하지만 이 소년이 보여준 힘과 열정, 무대를 장악하는 압도적인 능력은 어린이라는 존재 자체를 떠나 '프로'였다는걸 깨닫는다.
이 소년에 대해 관심이 생겨 어머님께서 직접 운영하시는 인스타그램에 방문해보았다. 김시훈 배우가 한국에서 빌리로 모습을 보이기까지는 1만 3488시간, 562일, 약 18개월의 시간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현재 12살이라는 나이도 너무나 어리지만, 훨씬 오래 전부터 어린 이 소년은 누구보다 더 큰 각고의 노력을 해 온 것이다. 발레에 재능이 타고난 '빌리'를 표현하고자 소년이 땀흘리며 노력한 시간을 떠올려보면, 무대에서 보여준 무결점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첫 어린이다.
극 속에서 '빌리'와 각별한 관계를 맺은 친구 '마이클'을 연기한 성주환 배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김시훈 배우보다 더 작은 키와 체구였지만 성주환 배우가 뿜어내는 에너지와 열정은 디큐브아트센터를 집어삼킬 정도였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그 자체라는 느낌일까. 소년 스스로도 이 무대 위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와 영향력을 뿜어내는지 완벽히 아는 느낌이었다.
어린이,청소년 배우들 중에서는 특히 발레단을 연기한 소녀들의 활약 또한 대단했다. 자칫 잘못하면 대형이 꼬여버려 큰 실수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현란한 단체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발레단 특유의 통통 튀는 어여쁜 모습과 서툴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그 기특한 모습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잘 표현해주었다. 특히 어른 배우들과 함께하는 콜라보 무대가 많았는데, 어른들의 노련미와 어린이 배우들의 작고 귀여운 모습이 대비되어 보는 즐거움이 더 극대화됐다.
본 공연이 끝나고 필자는 동행한 친구와 함께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공연의 여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충격과 느낌표가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공연을 보는 내내 필자의 어린 시절이 끊임없이 소환되는 느낌에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간 것만은 분명했다.
함께 공연한 마냥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소모감을 느꼈다. 짧지만 깊은 잠을 청했고 꽤나 인상적인 꿈을 꾸었다. 11-12살 때 필자가 키웠던 햄스터가 출산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마치 그 장면 거의 그대로 꿈 속에서 펼쳐진 것이다. 다만 햄스터 케이지 여러 개가 널브러져 있거나 햄스터들이 대거 탈출을 시도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나왔다. 혼란과 당황스러움으로 가득한 한 편의 꿈이었다. 꿈을 깨고 나니 이상하게도 전과 달리 차분해짐을 느꼈다.
이 꿈을 꾸고 필자는 다음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 제6장 비극의 정의(定義) 가운데에 나오는 표현으로서, '비극을 봄으로써 마음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고 마음이 정화되는 일'을 뜻한다. 필자가 위와 같이 매우 혼란스러운 장면을 꿈꿨다는 것은 어린이였던 10년전의 12살과 달리, 역경 그 자체에 직면한 22살의 '현실'을 자각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머릿 속에 온갖 고민들이 널브러져 있는 지금의 상황이 꿈 속에서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꿈을 깨자마자 맑은 정신으로 방 청소를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전과는 달리 '가벼움', '경쾌함', '희망' 같은 것들이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눈으로 보았던 어린이들의 순수함, 열정같은 것들이 마음 속의 응어리를 녹여낸 것이 아닐까.
필자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 것은 <빌리 엘리어트>의 '스토리'였다.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은 빌리와 필자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춤이다.
필자 또한 극 속의 소년 '빌리'의 나이인 12살 때 '춤'을 추었던 사람이었다. 실제로 빌리 역할을 맡은 주인공 배우가 1년 8개월의 긴 시간을 준비한 것처럼, 필자도 초등학교 100주년 기념공연에서 선보일 스포츠 댄스 무대를 위해 긴 시간 동안 춤에 빠졌었다. 난생 처음 접해보는 '차차차'라는 스포츠 댄스를 배우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연습부터 시작했던 2010년 12월이 생생히 기억난다. 스포츠 댄스의 스텝조차도 익히지 못해 혼나기를 반복했지만 정직한 땀과 눈물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5분 가량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약 7개월의 시간을 준비했고, 100주년 기념 공연에서 후회없는 완벽한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어린이 배우들이 보여준 그 열정과 땀방울을 이해할 수 있음은 같은 '스토리'를 공유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보며 필자 또한 10년 전 함께 춤췄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함께 쏟았던 땀방울의 생생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내서, 그 기억을 꺼내보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차오를 수밖에. 어린 시절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지금의 고뇌들을 찬란하게 덮어주는 느낌이랄까. 그 누구도 아닌 필자 스스로의 스토리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이야기와 완벽히 결합해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빌리는 꿈꿔왔던 영국 왕립발레학교에 합격을 했다. 극의 끝에서 빌리는 우정했던 친구 '마이클'과 작별을 하고,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앞으로 전진한다. 그리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막을 내린다.
영화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빌리의 뒷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이 스토리는 빌리라는 열정 가득한 소년이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만을 그릴 뿐이다. 어른이 되어서 여전히 춤을 추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열심히 노력해 왕립 발레학교에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갔을 수도 있고, 영국 탄광촌에 다시 돌아갔을 수도 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극이 막을 내리며, 우리가 빌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분명할 것이다. 빌리에게 "꿈을 계속 꿔 나가길 바래", 또는 "역경이 있더라도 희망을 잃지 마"와 같은 응원을 퍼붓고 싶지 않은가? 여기서 그 누구도 "현실과 타협해" 라는 말을 던지지 못할 것이다.
12살 빌리가 꿈꿨던 희망과 꿈의 이야기도 실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닌가?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쉬이 포기할 수 없었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빌리의 뒷 이야기를 모르지만, 어린이 시절이었던 우리의 '뒷 이야기'를 지금, 현재를 살아내면서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꿈꾸었던 스스로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격려하고 응원해줄 타당한 근거가 있다.
순수함과 열정을 되찾고 싶다면, 지금 당장 춤을 춰보자. 빌리 엘리어트처럼!
ps. Thanks to 국내 유일 연극/뮤지컬 리뷰 플랫폼 '플레이덕',
좋은 관람 기회를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