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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로예 Aug 21. 2023

세발의 총성, 갈 수 없는 나라 - 뮤지컬 곤 투모로우

뮤지컬 <곤 투모로우> 솔직 후기



극장을 퇴장했는데도 배우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눈가와 귓가에 아른거리는 마법에 걸렸다. 2023년 삼연으로 뜨겁게 재회한 뮤지컬 <곤 투모로우>를 관람한 뒤 한동안 작품의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탓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8월 11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로 찾아가 <곤 투모로우>를 만났다. 역사책과 교과서에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그 시대'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고 온 느낌이다. 갑신정변을 일으킨 조선 최초의 혁명가 김옥균과 그를 둘러싼 관계들을 마주하며 한 명의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고뇌와 두려움, 용기와 결단을 연이어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갑신정변부터 한일합병까지 소용돌이치는 역사를 빠른 속도로 만날 수 있어 인물들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간절한 심정으로 작품과 조우했다.   




믿고 보는 실력파 배우들의 무대  


 

극 중 '김옥균'을 연기한 조형균 배우는 뚝심있으면서도 젊은 김옥균의 모습을 잘 드러냈다. 단단하고 올곧은 김옥균을 연기하면서도 한정훈에게 때로 의지하는 모습을 통해 김옥균의 다양한 감정과 심리를 투명하게 보여줬다. 
 

또한 '한정훈'을 맡은 김재범 배우는 암살자로서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과 내적 갈등을 진정성 있게 표현했다. 김옥균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계속해서 그를 떠올리고 생각하며 결국 김옥균이 선택한 길을 동행하는 결단력이 돋보였다. 뿐만 아니라 앙상블들과 호흡을 통해 만드는 현란한 액션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날렵하고 묵직하게 김재범 배우만의 스타일로 완벽히 소화했다.  


'고종'이 된 고영빈 배우는 무능하면서도 욕심이 많은 왕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채 등장했다. 자신의 무능함과 세상의 위태로움에 완전히 미쳐버린 고종을 깊이감 있게 드러냈다고 느낀다. 매 넘버마다 인상적인 분위기로 극의 흐름을 이어가며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시대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섬세한 연출 



<곤 투모로우>의 무대는 마치 19세기 후반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 아름답고 섬세한 연출이 돋보였다. 위태롭고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투박하게 그리기보다 애절함과 간절함이 더 깊이 있게 드러나는 아름다운 연출을 선보인 것이다. 


특히 한정훈이 고종에게 김옥균을 암살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현재 시점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사건을 표현할 때도 마치 무대 전체에 전기가 도는 듯 시각적인 효과와 청각적인 충격을 동시에 자아냈다. 뮤지컬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연출 덕분에 관객의 입장에서 마치 시공간이 변화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뿐만 아니라 불란서로 유학을 간 한정훈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보여줄 때도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세련되게 표현했다. 


검은색 모자를 쓴 앙상블이 수트를 입고 다같이 춤을 추는 모습에서 아주 여유있고 위트있는 프랑스 사람들이 그려졌달까. 지구 반대편에 유학을 간 한정훈이 조선을 애틋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계기를 더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또한 원형 무대를 설치해 회전을 했던 연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속에서 항해하는 커다란 배를 표현하고, 파도가 치는 배경 장면도 큰 화면에 띄웠다. 대극장 프로덕션이기에 큼지막한 설치물들이 관객의 몰입을 돕는 데도 한 몫을 했다.   




공연이 끝나도 계속 생각나는 <곤 투모로우>의 넘버들

 



주연 배우들과 앙상블들의 조화를 바탕으로 완성한 <곤 투모로우>의 음악들은 모두 신성한 느낌을 자아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슬퍼하며 울부짖는 한정훈의 넘버,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라면 생을 떠나서도 빛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김옥균의 넘버. 무능과 분노, 그리움과 체념을 모두 흡수한 고종의 넘버까지 모두 빠짐없이 아프고도 아름다웠다. 


고뇌의 순간, 갈등의 순간, 결단의 순간, 절망의 순간. 어두웠던 시대를 온 몸으로 맞선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한 마디로 애처로웠다. 기쁨과 행복의 그 날을 기약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 모습에서 존경심이 들기도 했다. 


노래 가사 한 마디에, 각 음정에 모든 감정과 분위기가 함축되었다.


 


찬란하고도 뜨거웠던 그 시대의 기억들.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사라진 내일을 향해 달려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곤 투모로우>를 본다면 우리 역사의 가치와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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