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라는 분야는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동시에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는다. 비난의 이유는 이 분야가 비현실적인 허영에서 시작해 결과적으로 겉모습을 중요시하며 추구하게 만든다는 두려움 때문이고 찬사의 (진정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가진 예술성, 예술의 결과에 필연적으로 담겨야 할 복잡성을 가진 철학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패션이 비현실의 관성만 벗어도 비난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패션 산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명품 패션 쇼의 깡마른 모델에 우리가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와 같다. 다비드와 비너스의 몸매를 사랑한 고대의 많은 예술작품들이 그리거나 조각해 낸, 인체의 '이상(ideal)'의 역사적 내러티브의 산물이라는 점. 그 관념의 역사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패션 산업 스스로가 말하는 가치는 그것을 뛰어넘는다. 패션은 외모가 최고냐 내면이 최고냐 하는 논란의 중심에 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Devil Wears Prada>의 주인공 안드레아의 직장 동료와 친구들 사이에 그 가치관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패션 잡지 '런 웨이' 편집장 미란다는, 신입 사원 안드레아가 매대에서 사 입은 스웨터의 블루 컬러가 얼마나 오랜 고민 끝에 대중화된 색채인지를 역설하며, 그저 편안해서 입었을 뿐인 안드레아를 비난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Devil Wears Prada>의 갈등은, 패션에 가치를 둔 부류와 아닌 부류가 서로를 바꾸지 않고 '각자의 삶'을 찾아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콜린 퍼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조지의 강의 장면은 싱글맨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다. 비주얼은 영화의 감독이자 구찌 수석 디자이너 출신 톰포드의 스타일링과 콜린 퍼스의 호리호리한 몸매가 어우러져 완성됐다. 가방-안경-구두 책상과 포즈까지 감독이자 스타일리스트인 톰포드의 손이 거쳐가지 않았을 리가 없을. 이를 위해 톰 포드는 콜린 퍼스에게 다이어트를 제안하며 트레이너까지 보내겠다 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장면은 안목이 없는 사람에게도 세련되고 감각적인 비주얼을 보여준다.
조지는 대학 교수다. 강의 주제인 책 <여러 해 지나고 백조 죽다>의 저자 토마스 헉슬리는 과학을 신봉하고, 특히 진화론에 집중한 작가였다. 그가 신봉한 찰스 다윈의 '생명의 나무' 한 켠에는 생물학적 소수자도 존재한다. 그 소수자의 존재도 진화론의 결과일까? 조지는 나치가 박해한 유대인을 혐오 대상으로서의 '소수자'로 지목한 학생의 질문에 반문한다. 백인 중 금발도 소수이지만 백인이라는 이유로 배쳑하지 않는다. 혐오의 이유는 결국 두려움이며 그들이 나쁠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다.
구찌 Gucci, 톰포드 Tomford 이 이름을 안다면 많은 사람이 입고 싶어할 것이고, 입은 사람이라면 누군가 내가 이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원하는 패션 브랜드이다. 이 옷을 입은 콜린 퍼스는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내면을 연기해야 했을 것이다. 섣불리 도전했다면 폭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배우는 그가 출연한 많은 작품 중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하다. 그는 선망의 대상인 “명품 패션 브랜드”와 기피 대상이 되기 십상인 “성 소수자"의 존재적 간극을 다 이해했을까? 그 자신이 조지였다 해도 불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모르는 것을 연기한다는 건 어떤 걸까?
결국 톱 디자이너 톰 포드의 스타일링은 사회 통념에 반하는 비밀을 어쩔 수 없이 숨겨야만 하는 한 인간의 복잡다단한 내면의 이면이다. 톰 포드 감독, 아니 디자이너 톰 포드가 종사하는 패션 분야는 단순한 허영의 세계 아닌, 그야 말로 '표현의 미학'으로 승부하는 산업이자 예술 분야인 것이다.
이제는 예술임을 누구나 인정하는 고흐가, 클림트가 당시에는 그 본질을 인정받지 못했거나 비난을 받았던 것은 대중의 이해 때문이다. 미래는 과거의 많은 것을 아우른다. 대중이 역사를 통해 더 많은 간접 경험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영화 <싱글맨>이 남긴 결정적인 한 장면은 그와 같은 오늘날의 고민을 아우르게 되지 않을까? 패션, 모두가 향유하는 대중문화, 결국은 그것이 시간과 융합하여 이해를 낳고, 예술임을 인정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