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멀지만 가까운
30대에 접어들면서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더니 이제 학창 시절 친구들은 모두 유부녀가 됐다. 예전 직장동료들만 절반 정도 미혼인 상태. 친구들은 결혼하면서 점점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신혼 1~2년 빼고는 거의 못 보게 될 줄이야.
보자고 하면 주말 가족일정이 있다, 남편과 스케줄이 있다, 경조사가 있다며 약속은 미뤄지거나 취소됐다. 그게 여러 번 반복되면서 갑자기 친구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새로운 가족, 새로운 소속이 생긴 거니까. 상황이 바뀐 걸 어쩌겠어. 이해해'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런데 마음이 뻥 뚫린 느낌이 들었다. 대부분 이해했지만 이따금씩 서운한 마음이 밀려 올라왔다.
'아니 그래도 가끔은 내가 보고 싶지 않나? 난 이제 뒷전이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가 스스로가 흡사 전 연인에게 질척대는 사람같이 느껴져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하나둘 친구들에게 아이가 생겼다.
이때부터는 더더욱 보기 힘들다. 초반엔 아기를 보러 집에 놀러 가고 아기와 놀아주고 했지만 친구가 육아로 인해 24시간 정신없어지면서 외출 자체가 불가했다. 밖에서 밥을 먹는 것은 언감생심.
수시로 잠드는 아기가 깰 새라 집에 찾아가 수다 떠는 것조차 쉽사리 허락되지 않았다. 보고 싶어 미리 약속 잡고 놀러 갔건만 정신없는 친구를 찾아온 불청객이 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육아에 지친 친구가 안쓰러워 간 김에 일일 베이비시터가 돼주기로 한다.
하지만 친구는 기껏 놀러 온 내가 베이비시터가 돼주는 것에 미안해하고, 나는 피곤한 친구를 찾아온 것에 미안해한다. 친구 편하라고 배달음식을 시켰지만 마주 보고 밥 먹는 것조차 쉽지 않다. 친구는 아기를 재우고 나는 혼밥을 하게 된 상황. 나는 나만 먹는 것에 미안해하고 친구는 혼자 밥 먹게 해서 미안해한다.
아무래도 내가 괜히 온 걸까.
어느 정도 친구 아기가 자란 후에 친구가 아기를 데리고 만나자고 했다. 이제 친구도 숨통이 좀 트인 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친구와 모처럼 맛난 음식을 곁들여 대화를 하려는데 1시간이나 됐을까. 아이들이 교대로 칭얼대기 시작한다.
"엄마 나 힘들어"
책과 장난감을 주며 관심사를 돌리는 친구.
안도감에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나 다시 30분이 지났을까.
"엄마 나 집에 갈래"
이번엔 장난감도, 훈육도 통하질 않는다.
친구는 사과하며 아이를 데리고 서둘러 운전대를 잡는다. 그렇게 대화는 급 종료됐다.
얼마 후, 친구의 편의를 고려해 친구네 동네에서, 가까운 데서 보자고 연락해 본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약속 보류. 평일은 오후 내내 아이들 학원 라이딩으로 시간이 아예 없고 주말엔 아이들과 같이 시간 보내느라 시간이 없단다.
이것이 엄마의 숙명인 건가.
이젠 서운함이 아닌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엄마에게 휴일이란 없는 걸까.
게다가 결혼한 친구들의 대화주제는 이제 기승전 남편, 아이, 시댁이다. 자신들의 취미, 취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당연히 나의 직장 얘기, 사적인 얘기는 친구들에겐 먼 얘기가 됐다.
카톡창 속 대화는 매번 육아 상담, 시댁 상담.
친구를 위해 상담처가 되어 주고 싶지만 미혼인 나의 답안은 늘 고갈되기 일쑤다. 몇 년째 만나진 않고 쌓여가는 대화창들. 이쯤 되면 랜선친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로 시시콜콜한 고민을 나누고 함께 추억을 만들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요즘.
친구들과 예전처럼 만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래도 서로 가장 잘 아는 사이인 건 분명하니까. 서로를 아껴주는 건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