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성범 Jul 04. 2017

시향

서쪽 하늘에서도 해가 뜹니다 

                                                                                                                              

서쪽 하늘에서도 해가 뜹니다/ 조성범

火르륵 花라락 
길고 길었던 어둠 속에
가로로 세로로 
우물 井 자로 기록되었던 슬픔들 
숫햇살 불쏘시개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서편 하늘에 
간 밤 내 칭얼대던 바람 아래
아침 여섯 시 삼십이 분 
서쪽으로 해 뜨고
동쪽으로 달 질 때
오대양 육대주 떠돌던 지친 영혼들이
저마다 사연 가득한 보따리 하나씩 질질 끌며
가지 떠난 성급한 이파리가 섬에 닿듯이
흐르고 흐르던 빗물이 하늘에 닿듯이 
하나 둘 찾아듭니다
눈이 부셔오는 창밖으로는 
오래 묵은 먼지가 풀풀 거리고 있습니다
구멍이 숭숭 날 듯 얇아진 가슴팍엔 새겨질 말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火르륵 花라락 타오르는 
아침 여섯 시 삼십이 분에서 삼십삼 분 사이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 여섯 시 삼십이 분에 
서쪽 하늘에서도 해가 뜹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