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성범 Jul 13. 2017

시향

길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길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조성범 


석양에 길게 누운 미루나무 그림자 위 
길은 시작 된다 
바람 한점 없는 한낮에도 풀들이 일렁이는 들길에 
무성한 풀잎 끝 끝마다 뚝 뚝 떨어진 
하루의 핏방울 방울들 
마른 길을 적신다 
아침, 한낮, 밤, 새벽 언제고 좋다 
그대 길을 나서 보라 
그대 앞에 톡 톡 떨어지는 빗줄기 아래 
갈래 머리 먼 기억 속에 
섧디 설던 별빛 아래 
타는 불볕 아래 헉헉거리고 
휘몰아치는 눈바람 속 웅크리고 
노란 나비 날갯짓에 나른 해보기도 하고 
이끼 푸른 돌담을 끼고 돌아가면 
흰 구름 사이 새들의 길이 있고 
거친 파도 아래 물고기의 길이 있다 
얽히고설킨 칡넝쿨 속 산짐승의 길이 있고 
속절없는 시간 속에 그대의 길이 있다 
나른한 햇볕 아래 
미소를 짓는 달빛 아래 
동그랗게 동그랗게 마주 보는 길들이 있다 
길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안개에 싸인 아침해 따스한 기운 아래 
길은 시작된다 
발길 하나 없는 한밤에도 웅크리고 찬 바람을 맞는 가로등 아래 
네모진 블록 네 귀퉁이 귀퉁이 마다 꼭꼭 숨어든 
세월의 눈물방울 방울들 
마른 길을 적신다 
아침, 한낮, 밤, 새벽 언제고 좋다 
그대 길을 나서 보라            

매거진의 이전글 시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