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은 유목한다>
오전 일곱 시. 공항 직원 식당의 된장국은 여전히 심심하다. 매일 같이 오가는 사람들과 똑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익숙한 동선대로 걷는다. 수하물장으로 들어서는 문을 열면 훅 하고 들이치는 눅눅한 바람 냄새. 기체 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마다 전 세계에서 떠밀려온 공기가 작은 틈 사이로 스며든다. 그 바람엔 낯선 향이 있다. 땀 냄새, 향수, 여행용 샴푸, 견고하게 접힌 의지 같은 것들.
나는 공항에서 짐을 옮긴다. 사람들은 떠나고, 나는 남는다. 벨트 위를 흐르는 가방들이 하나씩 모여 컨테이너 쌓일 때마다 마음 한쪽이 묘하게 기운다. 저 안엔 누군가의 일상이, 누군가의 기다림과 무게가 들어 있다. 어떤 가방은 단단하고, 어떤 가방은 흐물거리며 기운다. 삶이란 원래 그렇게 포장되지 않은 채로 이리저리 던져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이유도 없이 떠나고 싶었다.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내가 옮겨온 수만 개의 짐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어깨에 무게를 싣지 않고, 어디론가 실려가고 싶었다. 멀지 않은 곳.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비좁지도 않은 곳. 그렇게 고른 곳이 변산이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름. 그 낯섦이 이상하게 다정하게 느껴졌다.
차에 올랐다. 잠시 들른 휴게소에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가벼운 식사들을 하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운전을 하는 동안. 갈대밭이 스쳐 지나가고, 논 사이로 바람이 흔들렸다. 창문을 살짝 열자 풀 냄새가 났다. 어릴 적, 나무 그늘 아래서 땀에 절은 옷을 벗어 말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오래된 기억이었다. 아니, 어쩌면 기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어떤 상상. 전생에 나는 유목민이었을지도 모른다. 초원을 떠돌며 물이 있는 곳을 찾고, 천막을 걷고, 밤이 오면 별을 세던 사람. 낙타를 이끌고, 가끔은 모래 위에 손을 얹고 길을 재던 사람.
변산은 조용했다. 첫날은 해가 길었다. 바닷길을 따라 걸었다. 사람들이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게에 들어가 복숭아맛 음료수를 샀다. 벤치에 앉아 그것을 마시는데, 여름이 입 안에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낀, 어떤 사소한 기쁨. 허기진 것도 아닌데 배가 불렀다.
바닷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꽃게탕을 시켰는데, 국물은 시원하고 밥은 눌어붙은 솥밥처럼 고슬거렸다. 주인 아주머니는 조용한 사람이었고, 내가 혼자 앉아 있다는 사실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고마웠다. 낯선 식당에서 낯선 밥을 먹는 동안, 나는 누군가의 짐이 된 기분이었다. 목적지도 없이 배달된 어떤 짐.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바닷가 모텔은 작고, 단정했다. 텔레비전도 켜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창밖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나무 틈새로 스며든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고, 그날 밤 나는 자정이 되기 전에 깊은 잠에 빠졌다. 몇 년 만이었다.
이튿날 아침, 정자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햇살이 이마와 손등을 따뜻하게 덮었다. 개미 한 마리가 바닥을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그 작은 생명이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이동 중일지도 모른다고. 짐을 나르지 않아도, 낙타를 몰지 않아도, 내 안의 시간은 여전히 천천히 길을 걷고 있다고. 단지 방향을 묻지 않을 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무 노래도 듣지 않았다. 핸들 위에 손을 올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논밭이 다시 나타났고, 전봇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하루 전 내가 지나왔던 길.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같은 길인데도, 조금은 여유롭고, 조금은 가벼웠다. 그것은 여행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짧은 며칠 동안 나를 짊어졌던 또 다른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행은 장소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나를 옮겨보는 일이라는 걸 그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공항에 있다. 여전히 수하물은 흐르고, 여전히 사람들은 떠나고 돌아온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서 있다. 컨테이너를 옮기고 또 옮겼다. 하지만 왼쪽 어깨쯤엔 아직도 변산의 햇살이 남아 있는 듯하다. 아주 작게, 하지만 분명하게. 나는 그것을 전생이라 부른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그 전생을 닮아 살아가는 ‘유목민’이라 부른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안에 낡은 천막 하나쯤 지고 살아가는 것 아닐까. 머물고 싶지만, 동시에 떠나고 싶은 마음. 그 두 마음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유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