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밭 추억
숲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솔밭이 생각난다.
바람에 스치는 솔잎 소리,
여름날 가지에서 흘러내리던 송진 냄새,
발밑을 덮은 솔잎의 부드러운 감촉.
어린 나는 그 위에서 자주 넘어지고,
웃다가 울기도 했다.
솔밭에는 햇빛보다 바람이 먼저 닿았다.
햇살은 가지 사이로 부서져 바닥에 흩어지고,
바람은 낮게 숲을 스쳤다.
나는 그 속에서 몸을 느릿하게 늘이며,
가만히 나무를 바라보았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솔밭으로 갔다.
솔잎을 모아 작은 둔덕을 만들고,
그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흔들리는 듯 보일 때,
까슬한 솔잎과 송진 냄새가 옷에 스며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솔잎이 옷자락마다 붙어 있었고,
어머니는 웃으며 물었다.
“숲 속에서 또 굴렀구나.”
가을, 솔밭은 다른 얼굴을 보였다.
추석이 다가오면 우리는 솔잎을 조심스레 모았다.
낮은 가지에서 따온 솔잎 위에 올려진 반달 송편이 김을 올릴 때,
부엌에는 솔잎 향과 햇살, 숲과 가족의 숨결이 섞였다.
손끝에 남은 솔잎 감촉이
햇살과 바람, 어머니의 숨소리까지 마음에 붙었다.
겨울, 솔밭은 깊은 고요에 잠겼다.
눈이 가지 위에 내려앉으면 나무는 무게를 참으며 몸을 낮췄다.
우리는 가지를 흔들어 눈송이를 흩뿌리며 웃었다.
차가운 손끝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 순간의 웃음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세월이 흘러, 숲을 찾을 틈 없이 살게 되었다.
아스팔트와 빌딩 사이에서도
마음은 솔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기억했다.
눈을 감으면 어린 날 술래잡던 웃음과
추석 솔잎을 고르던 손끝의 떨림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감각은 내 마음 한켠에 작은 온기를 남겼다.
얼마 전, 어릴 적 놀던 솔밭을 찾아갔다.
많은 나무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숲의 일부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아래 서자 어린 날 장면들이 밀려왔다.
친구들, 어머니의 목소리, 아버지의 등,
추석날 솔잎을 고르던 손끝, 겨울날 눈.
모든 기억이 뒤섞여 마음을 살짝 흔들었다.
솔밭에서 뛰놀던 기억은
단순한 놀이터의 기억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계절의 색과 바람, 햇살,
가족과 친구의 숨결, 작은 웃음들이 담겨 있었다.
세상은 변하고 나무는 사라져도
기억 속 솔밭은 내 안에서 여전히 자란다.
솔밭은 이제 놀이터가 아니다.
삶을 견디게 하는 근원이다.
삶이 모래바람처럼 눈앞을 가릴 때도
솔밭의 바람은 늘 맑았다.
햇살, 송진, 솔잎 향과 바람이
내 안에서 쉼이 되어 주었다.
솔밭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도시를 지나 다시 기억의 숲으로 돌아오는
나의 길이다.
나무처럼 곧게 늙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솔밭이 남겨준 유산일 것이다.
바람이 불면 솔잎은 흔들린다.
그러나 그 울림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