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

흐리고 비

by 조성범

흐리고 비 /조성범

흐리고 비가 오겠습니다.
하늘이 맑은데
고양이 눈 닮은 기상 캐스터가 흐리고 비가 소곤거린다
갈 곳도 없는데 흐리고 비가 와도
괜찮아
나 혼자 쉬는 날에는
한없이 너그러워져 보기로 하자
하늘이 대체로 맑아도 흐리고 비가 온다는데
빗방울 모아 그림이나 그리지
뒹굴대던 방바닥에 겹겹이 덧칠해가며 그림이나
그리지
고양이 눈도 그리고
맑은 하늘도 그리고
아무리 내달려도 그대로인 구름도 그리고
잘박 잘박 차오르는 빗길도 그리고
야윈 어깻죽지에 덧댈 날개도 하나도 그려보고
종일 오줌 한 번 누지 말고 이리저리
뒹굴 뒹굴
북태평양 기단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이 한반도를 지난다
흐릿하게 선 하나 긋고 선위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 그리자
나무에 내려앉는 새도 한 마리 그릴까
쉬는 날
흐리고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