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

바래봉 가는 길

by 조성범


바래봉 가는 길/ 조성범

지리산 바래봉 가는 길

햇살은 여전히 간질거리고

불길처럼 대륙으로부터 부는 바람에

붉은 동백 뚝뚝 떨어지는

감당할 수 없는 안식의 시간에

나는 봄을 향한 주기적인 공전을 원망하며

석판 깔린 오르막길을 올랐다

내가 가는 길 반대편으로

빠르게 날은 저물어 가고

내일이면 돌아가리라고 다짐하며

속살거리는 작은 물소리

간들거리는 이파리 소리 하나씩 주워 담아 가며

보이지 않는 이정표를 찾아 가쁜 숨 몰아쉬었다

찬란했던 봄날을 깊이 새긴 비문을 찾아가는 길

거칠게 몰아치는 폭풍을 뚫고

폭풍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알바트로스되어 날 수 있다면

낯선 소년병의 젖은 눈망울 같은

이 슬픔 활활 불 싸지르고

차오르는 달 보고 엉엉 울어라도 보련만



매거진의 이전글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