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하워드 감독. 하트 오브 더 씨
괴물만큼 인간 중심적인 단어도 없다.
세상의 모든 단어들이 그러하지만 괴물은 특히 그러하다.
'괴상하게 생긴 물체'라니.
인간의 무지와 이해력의 한계를 드러낸다.
오랜 경험과 연구 끝에 모두가 부를 수 있는 공식적인 명칭이 붙을 때까지
괴물은 어둠과 공포와 죽음이 뒤섞인 미지의 존재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존재하지 않아도 마치 존재하는 듯
존재에 대한 믿음이 괴물을 존재하게 했다
실제 봤다는 사람의 말을 들었다는 사람의
말을 들었다는 사람의 말이
퍼지고 퍼지고 퍼져 괴물을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괴물 중의 괴물로 만들었다.
거나하게 술이나 마시며 껄껄거리며
이야기하는 소재에 그친다면
괴물은 접시에 담기지 않아도 훌륭한 안주가 되었겠지만
괴물과 마주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태로운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고래를 사냥해 배를 갈라 기름을 퍼내어 팔아야 했다.
고래는 먼 바다에 있었고 고래잡이배 또한 거기까지 당도해야 했다.
선장과 선원은 명예와 생존 욕구로 무장한 채 돛을 펼친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배에 올랐지만
괴물과 마주해야 한다는 운명에 조금씩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경험하지 못한 공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하지만 혼자의 삶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가족과 가문에게
의기양양하며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대양 한가운데로 파도를 뚫고 들어가
작살을 던져야 했다.
두꺼운 피부를 뚫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노를 저어야 했다.
1년이 더 걸리는 여정이었다.
확실한 보상을 싣고 돌아가야 했다.
기대에 벅차 있었다.
그들의 굳센 작살이 괴물의 새끼를 건드리기 전까진.
애초 바다는 인간에게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었다.
인간이 닿기 전에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죽는 원시 종족이 있었고
하여 바다는 그들에게 훨씬 자유로운 영역이자 터전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날을 들이대어 새끼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
인간은 침입자가 되었고 제거 대상이 되었다.
괴물이 그들의 보트와 배를 덮친 것은
괴물이 괴물이어서가 아니었다.
괴물이 어미였기 때문에
자식을 건드린 적들에게 응당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었다.
분노는 바다를 일으켰다.
인간의 배는 부서졌다.
선원들은 배를 잃었고 목숨을 잃었고
그때까지 모아둔 고래기름을 잃었다.
괴물에게 완파된 배에서 숨만 붙어 빠져나온 선원들이
작은 보트에 옮겨 탔지만
진짜 재난은 그때부터였다.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바다와 하늘, 태양뿐이었다.
피와 살과 뼈가 말라가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서 아득히 보이는 산봉우리나 해변,
지나가는 배는 없었다.
죽어가는 사람들과
죽어가는 배,
죽어가는 희망
죽어가는 모든 것외에
어떤 가능성도 그 배에 옮겨오지 못 했다.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없었다.
죽음을 기다리다 죽는 것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괴물에게 인간이 가까이 갔고
괴물을 인간이 자극했으며
괴물을 반응하게 하여 비롯된
인간이 자초한 절명의 비극이었다.
동료가 시체가 되었을 때
남은 자들의 눈이 반짝였다
시체는 육류가 되어 남은 자들의
입과 배를 채웠다.
심적 고통이 뒤따랐지만
육적 고통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제비뽑기를 했고
스스로 죽어 식량이 될 자를 정했다.
괴물과 맞서려 했던 인간은 그렇게
스스로의 선택으로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괴물이라 이름 지은 것도
괴물에게 다가간 것도
괴물이 된 것도 인간이었다.
바다는 평온했다.
어미는 자식들과 사라졌다.